바야흐로 시간은 6월 중순을 넘어 3주째를 맞고 있다.
밤마다 올뺴미처럼 짐을 싸느라 손이 무르도록 테입질을 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빼낼 짐을 정리하느라 아침이 되면 그야말로 삭신이 쑤셔왔다.
3주쨰 들어서부터는 2개 손가락에 보호대를 하고 손목에도 보호대를 착용하고 짐을 싸려니 속도는 더 더딘 모양새였다.
웬만큼 짐을 쌌다 싶었는데, 밤마다 쉬지 않고 짐을 싸는데도 도대체가 속도가 나질 않는것이었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15년전에 이 집으로 이사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급작스럽게 집이 팔리는 바람에, 제대로 짐을 정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치듯 나오는 모양새였다.
2주만에 짐을 싸고 준비된 박스들을 밤에 새로 이사하는 이집에 옮겨놓고 하는 진행은 그나마 나쁘지 않았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죄다 박스에 넣어 포장만 하면 되는것이었기에. 그리고 지불한 새집의 입주날자와 이사를 나와야 하는 날자가 어느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풀방구리마냥 밤에 오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이사는 달랐다.
방 3칸에서 2칸으로 줄여야 하는것은 물론, 15년전에 정리하지 못한 짐들을 어느정도 정리하지 않으면 이 짐들을 넣을 공간이 없을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헤어진 전남편과의 결혼 사진도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었던 처지였다. 아이들이 행여나 볼까, 조심 조심 한밤중에 들여다보니, 웨딩 드레스를 입고 곱게 화장까지 한 낯설은 내얼굴에 곰팡이가 피어 마치 호러무비 주인공 마냥 괴기스럽기만 했다. 작은 아들이 행여 들을까봐 소리내지 않게 찢느라 손가락에 더 무리가 생겼던것 같긴
하다.ㅎㅎ
나조차도 낯설은 몇십년전의 결혼사진을 들추고 아들들이 유치원에 다닐때 엄마에게 선물해준 어리숙한 종이 꽃송이를 들척이는 밤이 이어졌다. 슬프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에 젖을때마다 한숨과 한동안 잊었던 아들들의 어린 모습에 감탄사가 연발 나오기도 하였다. 이름하여 추억놀이 또는 우울함의 소환이 뒤섞이면서 감정의 동요도 꽤나 깊었다.
물론 닥친 이사의 일정에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는것은 분명했지만, 구석에 처박혀 있는 상자나 파일들을 꺼내어 정리하는 시간은 오롯이 나의 감정을 다스리고 다독이는 시간이 되었슴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느날 부터인가 짐을 싸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몸이 더이상 따라주지 않아서였던 것이다. 시작된 무릎통증과 점점더 심해지는 손가락과 손목통증에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일을 진행하다보니 부비동증세가 심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름 요량을 부리기 시작했다.
알코올 분해능력이 남다른(ㅎㅎ) 나는 웬만큼 알코올이 몸에 흡수되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이조차 설득력이 떨어지는 점은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보기엔 취한게 분명한데도 본인은 절대 문제없다라고 느끼기에 운전대를 잡고 고집을 부리는일이 흔한 풍경.
오해하지 마시라. 그정도 마시면 그냥 대자로 뻗어 자는게 맞다.
하지만, 할일이 엄연히 남아있고 갈길이 멀고, 나 아니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현실에서 생각없이 잔을 들이키는 우를 범할정도로 미련하지는 않다.
소주2잔, 혹은 3잔.. 아니면 와인 잔을 2/3정도만 채운 한잔, 또는 맥주 1~2캔. 딱 고만큼.
그 이상 마신적은 없다. 먹고 서둘러 설겆이를 하고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보통 밤 8시. 그때부터 짐을 싸기 시작하면 자정을 살짝 넘기던가 하는 정도로 마무리하였다.
아~ 어릴적 시골에 살때 아버지를 따라 모내기 하는 동네 어르신들 새참에 낀적이 간혹 있었다. 어르신들은 김치국물에 국수를 말아 드시거나, 찐고구마나 감자, 간혹 부추전을 드시기도 했고 거한날은 호박잎에 싸드시는 보쌈 고기가 있던적도 있었다. 그런데 절대 빠지지 않는 메뉴항목이 하나있었다라고 기억한다. 막걸리....
보통 너댓분들이 함꼐 모내기를 하시고 막걸리는 2병정도가 늘 함께 내어왔던것으로 기악된다. 아니, 막걸리병이 아니고 사실, 양은으로 만든 주전에 받아내오는 탁주였을것으로...ㅎㅎ.
한밤중에 양은주전자 탁주는 아니지만, 간단히 목을 축이고 살짝은 노곤해지는 육체로 전환되면, 몸은 더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아주 아주 오래된 기억속 풍경, 무려 50년전 기억을 더듬어 나는 햇빛 내리쬐는 논두덩에 털부덕 주저앉아 몸에 힘을빼고 쭈욱 한잔을 들이킨다. 캬~ !! 그리고 입술을 훔치고 버걱대는 무릎을 일으켜 허리를 편다.
또 일해야지...영차 영차 ~~ 힘내자 마징가 아줌마.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