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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 Spring Jan 11. 2017

반년차 워킹맘, 그 고단함에 대하여

질문이 아닌, '응원'을 주세요

대한민국에서 임신한, 그리고 일하는 여성은 3개월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정부는 여성의 임신과 회사생활의 병행을 돕기 위해 그리고 출산과 양육, 복직을 돕기 위해 나름의 정책들로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올해부터는 육아휴직을 최대 2년까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회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곳은 3개월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또 이를 사용하는 데에 압박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주변의 일하는 많은 여성은 대부분 3개월 출산휴가를 마치고 사직서를 쓰더라. 지역 커뮤니티에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가는데, 배가 불러있으면(임신 티가 나면) 거절되기도 하느냐'는 마음 아픈 질문들이 많았다. 정말, 정말 많은 능력있는 여성들이 소중한 아이를 돌보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었다. 


엄마에게만 하는 질문들


나는 임신했을 때부터, 출산하기 직전까지 같은 질문을 몇번이고 받았다. "아이낳으면 일은 어떡해? 복직할 수 있어?" 그렇다고 하면 그 다음 질문은, "그럼 아이는 누가 봐줘? 어린이집에 보내?"


임신과 출산으로 몸이 많이 지쳐있을 때, 이런 질문들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다보면 마음까지 잘게잘게 찢기고 너덜너덜해진다. 1시간마다 깨서 배가 고프다고 우는 신생아시절을 보내고, 24시간 내내 내 의지대로 무언가 할 수 없는 빡센 육아의 길에 접어들면 더더욱 미쳐버릴 것 같다. 이렇게 말해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1시간마다 깨서 젖을 줘야되는구나. 잠을 잘 못자서 힘들겠네~ 라고 말했던 내 친구는, 그 시간을 보내며 내게 톡을 보내왔다. "그 때 네가 정말 힘들었겠구나. 좀 더 응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예비 엄마 또는 지금 막 엄마가 된 그녀들에게는 질문이 아닌, 응원의 말이 더 필요하다.


새봄이랑, 아빠랑, 엄마랑 @어떤 가을


나는 임신 초기에, 출산 후 90%의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을 겪는다고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에이 무슨 우울증이야. 나는 10%에 속할거야. 개뿔. 한 달 동안 친정에서 몸조리와 신생아 돌보기를 경험하고, 눈물의 모유수유와 단유에 이르기까지 나는 매일 밤 울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면 나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어느 날은 출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소리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지. "나도 출근하고 싶어. 나도 밖에 나가고 싶어. 도망가고 싶어."


아이는 혼자 만든 것이 아닌데, 임신 - 출산 - 육아는 모두 엄마의 몫인 것만 같다. 



2016년 7월 1일,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


3개월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했다. 나는 운이 정말 좋은 케이스였다. 법적으로 이 모든 것은 보장되어있지만, 알다시피 법을 잘 지키는 기업들은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 나름 고군분투하며 지낸 15개월... 아기의 돌이 있는 달인 4월쯤, 회사에서는 복직을 하는 게 확실하냐고 재차 확인 연락이 왔다. 이제 막 돌을 지난 아기가 뭘 할 수 있는지 아는가? '엄마, 아빠' 정도의 말을 하고, 걸을 수 있다. 그들에겐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안전하게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엄마의 직장과 집까지의 거리, 엄마의 평균 퇴근 시간이나 야근의 빈도에 따라... 그녀들은 또 한번 퇴사의 결정 앞에 서게 된다.


친구네 집에 놀러왔는데, 잠이 들어버렸네 @쿨쿨


우리가 자란 뒤, 경력이 단절된 엄마가 다시 할 수 있는 건 마트 캐셔를 하거나, 파출부 또는 청소부를 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일 뿐이었다. 늘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이 한이셨던 나의 엄마는 서른의 끝자락에 교육학을 전공하시고, 어린이집 교사직을 몇 년 하셨다. 내가 중학생, 동생이 초등학생 때 쯤 이었는데.. 엄마는 교육학을 공부하시면서, 엄마가 기른 우리가 많이 생각이 났었나보다. 어떤 날은 뜬금없이 미안하다고 하신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본인의 유년기를 생각하며 오열하신 적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첫손녀를 보면서 재차 재차 말씀하셨다. 어린이집을 보내기엔 아직 일러, 내가 돌봐줄게. 내가 열심히 키워볼게.


복직하기 두 달 전부터 친정엄마가 자주 집으로 오시며 아이와 애착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신기하게도, 새봄이는 엄마의 장난들에 열광했다. 엄마는 귀여운 손녀 앞에서 더 귀여운 할머니가 되셨다. 우리를 키우며 후회스러웠던 것들을 만회하시려는 듯이.. 덕분에 나는 무사히 복직하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시부모님 또는 친정부모님께서 황혼육아를 부담스러워하시거나 힘들어하신다면.. 혹은 양가와의 거리가 너무 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엄마가 일을 계속할 수 있으려면,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이 너무나도 많다.


세상에는 고단한 엄마들이 참 많다.


새벽같은 7시 반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부랴부랴 출근하는 워킹맘. 야근하고 어린이집에 들러, 아직 퇴근하지 못한 보육교사 선생님의 눈치를 받으면서 아이를 데려오는 워킹맘. 또는... 티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몰아치는 집안일과 육아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전업맘. 가끔은 내 일상에 아이만 있고, 나 자신이 없어지는 기분이 드는 전업맘. 누가 더 힘들다고 할 것 없이, 엄마들은 각각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복직 후 만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회사를 다니게되면, 내 모든 육아우울증의 원인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육아휴직 기간동안 자유에 대한 갈망 + 독박 육아 스트레스로 힘들었다면, 워킹맘이 된 지금은 직장인 스트레스 + 퇴근 후 육아/집안일 스트레스 + 주말이 평일보다 더 힘들어...랄까. 그래도 내 의지대로 바깥 공기를 쐬고 걸을 수 있고, 동료와 커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딸에 대한 애틋함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 직전 일어난 새봄이를 안아주니 베개를 가리키며 코~ 하자고 하는데 얼마나 찡하던지. 그리고 곧, 나의 자아실현이 아이에게 공허함을 주는 것은 아닌지하는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내가, 우리가 이렇다는 걸 한번쯤 마음 깊이 공감해주길. 그리고 더 이상 질문이 아닌,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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