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 2
수희와 민아를 떠올리자, 갑작스레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의 귓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오직 그의 귓속에서만 울려 퍼지는 소리.
아까의 흙냄새라든지, 안개처럼 바깥에서 들어오는 감각이 아니다.
이 빗소리는, 정우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소리다. 귓속을 가득 채워 오는 소리 탓에 조금 어지럽다. 이따금 너무 견디지 못해 병원에 찾아가면, 의사는 충분히 자면 나아질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잠을 충분히 자도 이 증상은 깨끗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면, 의사는 수면의 시작과 끝을 문제삼았다.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시간에 자고 깨려고 노력해 보라고.
밤 열 시부터 여섯 시.
열한 시부터 일곱 시.
한 시부터 아홉 시.
그래서 정우는, 적어도 더 이상 해가 뜰 무렵에는 자지 않으려고 해 봤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빗소리는 어김없이, 또 어느 날엔가 그의 귓속을 울리곤 했다.
이제 의사는 수면의 질이 문제라고 했다.
의사 앞에서 정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네, 그렇군요.’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렇게 수긍했지만 사실 정우는 잘 자고 있었다.
다만 잠들기 전까지도, 잠에서 깬 뒤에도 계속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자는 시간 만큼은 유일한 해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충분히 자신이 잘 자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멈추어 서서, 귓속의 빗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다. 알고 있다. 잠시 호흡을 고르면 조금씩 나아지기는 한다는 걸. 주의를 돌려 본다.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공기로, 찬 바람으로, 콧속을 파고드는 흙냄새로.
어느덧 그 소리가 멈춘다. 발끝만 내려다보던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돌린다.
그의 앞쪽으로 야트막한 언덕 길이 펼쳐져 있다. 길은 살짝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그 오른쪽 부근에 노란 천으로 막힌 공사장이 보인다. 허술하고 위태로운 가림막, 혹은 칸막이.
아까부터 안개에 섞여 나던 흙냄새는 그 공사장에서 불어온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고 그는 생각한다.
정우는 공사장 안쪽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 자신도, 그의 부모도, 그의 조부모나 외조부모도 공사장 안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협소한 인간관계를 뒤져 보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대학 친구들 모두, 저 안쪽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말이다.
그래서 공사장 안쪽이란, 늘상 그 옆을 지나곤 하는데도 미지의 영역이다.
안쪽에 있을 사람들의 목소리, 표정, 옷차림, 은어와 전문어를, 그는 알지 못한다. 어느 정도의 연령대가 많은지, 어느 국가의 사람이 많은지도 모른다. 이 겨울에도 땀이 흐르는지조차 알 수 없다. 본 적이 없고, 경험한 적이 없기에.
그렇다.
마치 그때와 같다.
그때로부터 그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고, 나아지지 못했다. 수희가 공장에 취업해서 일을 시작하고, 그러다 병에 걸리고, 앓다가, 끝내는 죽었던 그때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