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뭘 할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소설을 응모해 보려고 했는데,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후련함과 평화를 얻었다!
조금 뒤늦게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한번 내 보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썼던 글들을 다듬어 10편을 채워 응모하려고 했다. 그렇게 발행 스케줄도 짜고, 잡혀 있던 약속도 미루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 계획한 스케줄대로 맞춰 보다가, 피로가 겹쳐 쓰러지듯 잠든 날이 생겼다. 내일은 두 배로.. 하는 생각에 자면서도 편히 쉬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 하고 싶은 운동(=요가), 그리고 싶은 그림과 함께 브런치북용 글쓰기를 계획해서 퇴근 후 스케줄에 빼곡히 채워 넣었다.
마음이 계속 부담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이건 아닌데, 이게 정말 내가 바라는 게 맞나?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무엇을 할래?
내 마음에 물었다. 마음은 브런치북 응모로 향해 있지 않았다. 읽고 있던 <로마인 이야기 3권>을 마저 읽고, 거북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라고 마음이 답했다.
성인이라도 자기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보살펴 주며 돌볼 필요가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내면 아이를 돌봐 주라고.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내 자아를 둘로 분리해 봤다. 어른 자아와 아이 자아로. 그리고 그 아이 자아를 내 자식처럼 바라보았다.
“난 지금 이거 하기 싫어! 놀고 싶어! 쉬고 싶어!”
하며 버둥대고 떼쓰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참고 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다면 지금 네 마음을 더 설레게 하는 일을 하렴. 힘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즐거운 걸 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이가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나의 내면 아이에게도 그러지 않기로 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를 포기하니, 잔잔한 평화와 함께 행복감이 찾아왔다. 이렇게 좋은걸!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조용히 침잠해서 글쓰기를 좋아한다. 쓰기에 푹 빠져서 그 시간을 만끽하고 싶어한다. 마감에 쫓겨 되는 대로 어설프게 마무리한다면 스스로 만족스럽지도 않을 듯했다. 그러니 마감일을 정해 두고 타이트하게 글을 쳐내며 수정하는 일이 답답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을밖에…. 천천히 곱씹으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느리게 고쳐 가더라도 그 편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응모를 관둔 이날은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었다. 또 엄마와 함께 찜질방에 가서 마음껏 뒹굴거렸다. 맥반석 구운 계란 세 알과 함께! 물론 식혜도 빠질 수 없다.
나의 깨달음을 반려에게 전했다. 작게라도 깨닫는 게 생기면 늘 그렇게 입이 근질근질하다. 그가 내 생각을 지지해 줄 걸 알아서. 내 안의 내면 아이가 인정 욕구와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살랑거린다.
“응모하려다가 안 하기로 결심하니까 마음이 너무 편해. 세상 행복해. 거북이나 백 마리 그리면서 행복하게 살겠어.“
“맞아요.”
“내가 오늘 죽는다면 브런치북을 쓸 것인가 고민했는데 아니더라고. 매일 지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행복한 최선을 택할 수 있을 것 같아.“
“맞아, 자기는 거북이를 그리는 게 더욱 좋지.”
거북이 연금을 만들어서 치킨을 사 주겠다는 나의 장난기 어린 호언장담을 자주 듣는 그는 또 이렇게도 얘기했다.
“브런치북보다 나는 자기가 꼬우북키 컬렉션을 책으로 내면 좋겠어.“
오…! 생각해 보지 못한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은 상상만 해도 황홀했다. 단 한 명, 나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돈을 쓸 만한 아이템이었다! 왜냐면 내가 좋아하고, 내가 갖고 싶으니까!
정말 존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림을 쌓아 가 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내가 즐거울 수 있는 한에서. 컬렉션북 만들기 자체가 부담이 되어서 그림 그리기에 흥미가 떨어지면 안 되니까. 그래서 컬렉션북 아이디어는 일단 저 멀리 던져 두었다. 어떤 결과물로 결실을 맺지 않더라도, 과정이 행복하다면 내게는 그 무엇보다 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