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가 정우에게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수희 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A시에 있던 B공장이나 C물질, 또는 푸른곰팡이병 그 자체를 다루고 싶은 마음이 아니에요. 오로지 수희 언니 이야기로만 채우고 싶어요.
사실은, 다큐멘터리가 뭔지도 잘 모르는 제가 이걸 만들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만들고 난 뒤에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요?
그래도 만들 수밖에 없고, 만들어야만 해요.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 기억하시는 수희 언니를 담고 싶어요.
*
정우 선생님에게 보낼 메일을 썼다. 임시 저장 버튼을 누르고 고민하다가, 그냥 인터넷 창을 닫는다. 가슴이 떨린다.
책상 위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황갈색 노트가 눈에 들어온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노트다. 그 노트와 함께 따라오는 기억.
예순을 바라보는 여성이 나를 향해 손짓한다. 이리로 오라는 듯. 그녀를 향해 간다. 잔꽃무늬의 핑크색 손수건으로 감싼 물건이 작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수희 언니의 어머니인 그 여성은,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풀어 낸다. 그 안에서 작은 노트 세 권이 나온다. 하나는 지금 내 책상 위에 있는 황갈색 노트, 다른 하나는 캐릭터가 그려진 스프링 수첩. 또 한 권은 회사 이름이 적혀 있는 작은 다이어리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수희 언니의 어머니를 찾아간 일이다. 그 여정으로 막연했던 계획이 진짜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수희 언니와 눈매가 닮았고, 입술 모양이 비슷했다. 하지만 그 입으로 말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수화를 할 줄 몰라서, 글씨를 써서 보여 주거나 입 모양을 크게 하며 천천히 말했다. 언니의 어머니는 직접 많은 이야기를 하는 대신, 내게 언니의 일기장을 보여 주었다.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던 딸이 틈틈이 써 왔던 일기장. 그 일기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드문드문 이어졌다.
내게 가져가도 된다고 하면서도, 어머님은 일기장의 겉표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부서질 것 같아 두렵지만, 쓰다듬지 않을 수는 없다는 듯이.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고운 손수건으로 싸서 간직해 왔던 모양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는 세 권을 모두 챙겨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갈색 노트 한 권만을 조심히 받아 왔다. 따지고 보면 사실 나는 전문가도 아니니까. 그분이 약간의 기대감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열성적으로 노트들을 쥐어 주지 않았다면… 아마 단 한 권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를 찍어 본 적도 없고, 관련 전공자도 아닌 내가… 자식을 앞세운 어미로부터 죽은 자식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은 물건을 수거해 오는 일이 과연 온당했을지.
온당함.
그렇다고 그분의 눈빛을 무시하고, 돌아나오는 일도 온당했을 것 같진 않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그렇세 느꼈다.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온당한 행동은 다큐멘터리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이 온당하려면 마땅히, 정우 선생님에게도 알려야만 한다. 선생님이 원하든 아니든, 도움을 줄 수 있든 아니든지간에 여쭈어야 한다. 가능한 조금이라도 함께해야 한다.
결심을 굳히고는 인터넷 창을 열어 포털 사이트에 빠르게 로그인한다. 그러고는 임시 저장된 메일을 불러와 망설임 없이 전송한다.
여전히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칠 년 전에 사용했던 이메일 주소가 기록에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