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 - 2
지킬 수(守), 물 수(水), 나무 수(樹). 기쁠 희(喜), 바랄 희(希), 드물 희(稀). 이 중 언니의 이름에 쓰던 한자가 있을까.
알 수 없다.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 언니 이름에 어울릴 법한 한자를 발견하면 노트에 적어 간직해 두었다가, 이따금 머릿속으로 조합해 보곤 했다. 보통은 새로 태어날 사람의 이름을 지을 텐데, 나는 반대였다.
물 수(水) 자는 사람 이름에는 영 쓰지 않을 것 같은 한자지만, 언니 이름에는 어울려서 자주 언니 이름에 붙여 보고는 했다. 내게 언니는 물 같은 사람이다. 물처럼 필요하고, 어떤 형태로든 어느 곳에나 있으니까.
정우 선생님을 찾아간 때는 언니가 죽고 십 개월 정도 후였다.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정우 쌤’이라는 사람은 나타나지를 않을까. 계속 궁금했다. 장례식장에서부터 궁금했다. 장례식장에서만큼은 바로 그 정우 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내심 기대했었는데.
언니는 죽기 전까지도 그분을 은인이라고, 또는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어릴 때는 언니가 그랬듯 나도 당연히 그런 선생님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내 성장의 기준은 언제나 언니였으므로. 하지만 아니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은인이라 부를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다. 굳이 은인이라 부를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면, 가까운 사람들이 전부였다. 어쩌면 당연한 걸까.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를 전적으로 믿으며 길러 주신 할아버지. 그리고 가까운 이웃에 살던 수희 언니. 하지만 둘 다 지금은 없다. 수희 언니가 죽었을 때는 ‘착한 사람도 일찍 죽을 수 있구나.’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제 내겐 더 이상 직계 보호자가 없구나.‘를 깨달았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겨울 방학, 정우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버스를 갈아 타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은 누군가의 은인으로 불릴 만큼 반짝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을 기대했을까. 등에 날개라도 달린 사람을 바랐던 걸까?
조금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기대를 걸었다.
이 사람은 뭔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야.
언니가 왜 죽어야 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 거야.
무심하리만치 내가 벌이는 짓을 다 수용하던 할아버지는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말도 없이 서울로 왔다는 내게, 구경 잘하고 밥 든든히 먹으라는 말뿐이었다. 그 덕에 거의 오일을 선생님 집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건대, 내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동네는 그리 크지 않았고 수희 언니와 할아버지도 자주 인사를 나누곤 했다. 정우 선생님도 수희 언니네 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이미 선생님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오일 중, 도착한 날과 떠나던 날을 빼면 사흘. 그 사흘 동안 난 선생님에게 왜 수희 언니가 죽어야 했는지 거듭 물었다. 그 과정에서 푸른곰팡이병을 알게 됐다. 언니를 죽인 범인이자, 언니가 일했던 공장에서 유행한 병의 이름.
정우 선생님은 그 병을 조사했고, 실질적으로 별 도움은 안 되긴 했었겠지만 나도 함께 이것저것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 조사한 내용들은 이미 흐릿하다. 훨씬 더 생생히 기억나는 건 사실, 그때 선생님이 시켜 줬던 짜장면. 흐리고 축축한 날 집 앞 분식집에 가서 먹었던 떡볶이. 밤에 끓여 먹은 라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