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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레터 쓰는 마음으로

글쓰기의 막막함이 걷히는 순간

by 김주미


중학생 시절, 아침에 등교하면 제 책상 위엔 초콜릿이나 과자, 음료가 놓여있곤 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선후배나 다른 반 친구들이 작은 쪽지와 함께 올려놓고 간 것이었죠. 제가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냐고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또래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학생이었답니다. 반에서 맨 앞줄에 앉을 만큼 체구는 작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소풍이나 수학여행에서 누가 노래라도 시키면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떨구거나 그 자리를 도망쳐버리곤 했습니다. 평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도 별다른 흥미가 없어 쉬는 시간이면 혼자 책을 읽거나 워크맨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제 이름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더니 곧 유명인이 되었고 어느덧 매점을 가지 않아도 그날 간식이 저절로 해결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잔잔하던 여중생의 일상에 작은 소란을 일으킨 사건은 ‘팬레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열다섯 살 소녀의 눈에 한 편의 TV 드라마가 들어왔어요. 당시 공부를 게을리하진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은 딱히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드라마를 보고는 대학을 가야겠다는, 캠퍼스에서 주인공들처럼 싱그러운 청춘을 누려보겠노라는 소망이 생겼죠. 그뿐인가요? 첫사랑도 없던 제게 주인공 중 한 명이던 남자배우가 이상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웃으면 눈가에 주름이 예쁘게 지는 호감형 인상에 호탕한 웃음소리는 주위를 다 밝게 만드는 것 같았죠. 늘 어딘가 울적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던 저와 상반된 이미지라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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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방송작가, 현재는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로 살며 읽고 쓰는 자유를 누린다. <망한 글 심폐소생술>,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OTT 보는 청소년 괜찮을까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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