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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고 쓰고 사랑하라!

자화상 그리듯이 글쓰기

by 김주미


어제 오후, 제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으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십수 년 전, 대학에서 제 수업을 듣던 학생인데요. 이제는 남편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제게 특별한 이유는 대학 생활 중에도 진로 고민을 공유했고 졸업 후엔 방송작가 후배가 되었으며, 강의를 같이 듣던 당시 남자친구는 지금의 남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아니, 이젠 여섯 명이 된 이 가족의 성장서사를 제가 흐뭇하게 지켜봐 왔기에 남다를 수밖에 없죠.


그런 제자와 오랜만에 만나니 저도 기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수다를 떨었습니다. 함께 온 아이들의 재롱에 내내 웃으면서 밝게 보내던 중 저를 울컥하게 한 제자의 한 마디가 있었어요.


“선생님이 제 롤모델인 거 아시죠? 제가 무언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마다 선생님 소식을 들으면 길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지나고 보니 선생님이 걸어가는 방향이 저에게도 줄곧 힘이 됐어요."


그러고 보면 전 인생의 선택길에서 늘 주위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운전대를 틀곤 했습니다. 경제학과를 나와 금융계 취업을 앞두고는 갑자기 방송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방송작가 일을 하며 상도 받고 입지를 굳히다가 돌연 대학원에 들어갔죠. 대학에서 10년을 공들여 연구하고 강의해 놓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저만의 이야기를 찾고 싶다며 학교 담장밖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대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네요. 다시 창작자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했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묻던 말이 있어요. “박사 학위 딴 거 아깝지 않겠어?", " 학교에서 자리 잡으려고 10년을 애썼는데, 허무하지 않아?”와 같은 질문들이었죠.


학교를 떠날 때 제 나이는 서른아홉이었어요. 어릴 때는 고생한 엄마에게 착한 딸이어야 한다는 다짐이, 20대에는 경쟁이 치열한 방송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가, 30대에는 결혼 후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결핍을 학생을 가르치고 학위를 취득하는 일로 채워야 한다는 부담이 레일 위 기차처럼 저를 앞만 보고 달리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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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방송작가, 현재는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로 살며 읽고 쓰는 자유를 누린다. <망한 글 심폐소생술>,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OTT 보는 청소년 괜찮을까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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