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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관계일수록 멀리서 쓰기

애증에 거리를 두는 법

by 김주미


며칠 전 속상한 일이 있었어요. 지난해 엄마에게 큰 맘먹고 명품 점퍼를 선물했는데 엄마가 그걸 이모에게 줬다는 겁니다. 어찌나 당황스럽고 화가 나던지요. 하루 종일 씩씩거리다 밤에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마음이 불편한 일이 생길 때면 일기를 씁니다. 남들은 '감사 일기'를 쓰며 자신을 위로한다는데, 저는 괴롭거나 언짢은 마음을 풀기 위해 일기장을 열게 되더군요. 이른바 '분노 일기'라고나 할까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모르는 척하거나 별일 아니라고 업신여기다 답답함이 쌓여 탈이 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일기를 쓰면서는 부정적 감정을 피하지도, 상황에서 도망치지도 않고 똑바로 쳐다보며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물어봅니다. 먼저 제 안의 두 자아가 티격태격 대화를 이어가도록 내버려 두는데요. 마치 토크쇼처럼 하나의 자아는 인터뷰어(interviewer; Q)가 되어 질문을 하고, 다른 자아는 인터뷰이(interviewee; A)가 되어 솔직한 답변을 이어가는 형식이죠.


Q: “엄마한테 왜 그렇게 화가 났어?"
A: “그냥 화가 난 게 아니라 진심으로 서운한 거야!"
Q: “그러니까 뭐가?"
A: “난 엄마를 생각해서 사준 건데, 어떻게 이모한테 그 옷을 줄 수가 있어?"
Q: “엄마에게 선물한 이상 엄마 마음대로 하는 게 잘못된 거야?"
A: “일평생 명품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한 엄마가 안쓰러워서 나도 무리해서 사드린 거야. 엄마가 안 입을 줄 알았다면 애초에 사주지도 않았고, 아니면 내가 도로 가져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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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방송작가, 현재는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로 살며 읽고 쓰는 자유를 누린다. <망한 글 심폐소생술>,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OTT 보는 청소년 괜찮을까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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