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동 Feb 10. 2024

맥락없는 사랑

미국대학원 동기들과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운전하던 중국인 동기가 중국어로 친구와 통화를 하자 뒤쪽에 앉은 인도인 동기가 

"하나라도 알아듣는 게 있어?" 라고 물었다. 


당연히 모르지. 

그러자 그는 갑자기 모국어로 말을 했고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벙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한국어로 아무 말이나 해봐."

3초 간의 두뇌회전 끝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사랑하면 할수록 보고 싶어진다." 였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영화 <클래식>의 주제곡 '사랑하면 할수록'을 떠올리며 한 말이었다. 

"역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다시 동기가 말했다.

만약 죽기 전에 최후의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사랑'이란 단어를 꼭 넣을 것이다.


*


추측건대 중3에서 고1 사이의 어느 날.

신문에서 흥미로운 박스기사를 발견했다. 


[한국인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 1위]

"사랑"


- 그 기사는 먼지 쌓인 내 스크랩북에 있을 것이다. 


팍팍하고 서글픈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이 아름다운 줄을 안다. 


가면 갈수록 혹독해지는 것 같은 삶이지만

여전히 사랑이란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떤 곳은 오직 사랑 때문에 향하게 된다.

어떤 곳은 사랑 때문에 떠나버린다. 


허나 사랑이 삶을 놀라게 하는 이유는

우연한 발견의 기쁨, 경계의 확장, 혹은 고통의 미학 때문이 아니다. 

그 규모감.


세상의 그 어떤 폭포보다도 우렁차고 파도보다도 거센 포근함으로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은 것, 안겨보이고 싶은 것 

그것만으로 사랑은 삶 그 자체에 숨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아무런 맥락은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나의 20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