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똑같은 책을 다섯 번씩 읽는다. 이렇게 읽는 이유는 이 세상을 나의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멍청하네. 시간 아깝게"
나의 독서법을 본 사람이 이야기했다.
"멍청하네. 시간 아깝게"
나는 책을 읽던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알아야 면장(免墻)이라는 말이 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담벼락 앞에 선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경우도 있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다른 사람이 힘써 일한 바를 쉽게 얻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그래서 많이 읽는다.
하지만 단순하게 많이 쌓아놓고 많이 읽는 것이 좋은 독서법일까? 내 생각엔 아니다. 독해력이 뛰어난 사람들 많이 읽는 게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독해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깊게 읽어야 한다. 내로라하는 작가도 책을 쓰고 읽는데 3개월 이상 걸린다. 그런 우리가 그 작가의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말해 아깝다. 이런 내 마음을 과거 위인들은 수백 년 전부터 알고 있었나 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 정학유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이런 글이 있다.
책을 수천 권 읽어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읽다 모르는 문장이 나오면 관련된 다른 책을 뒤져 반드시 뜻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또 그 뜻을 알게 되고 나면 여러 번 반복해 읽어 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거라.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올바르게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발췌 요약, 토론, 그룹독서처럼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나는 5 회독을 추천해주고 싶다. 똑같은 책을 다섯 번이나 읽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권의 서적을 친구처럼 곁에 두고 읽어가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음은 내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5 회독하고 나서 느낀 점들에 대해서 적었다.
1 회독: 책 제목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책에 대해 설명을 하기가 힘들고 이해하기가 힘들다.
2 회독: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다. 이제야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3 회독: 지루하다. 책을 왜 읽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평소에는 스쳐갔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4 회독: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왜 책을 썼고,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 책에는 없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5 회독: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왈가왈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책에 모난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색한 논리도 있고 불필요한 개념도 보인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명백하게 나의 주관으로 말할 수 있다.
물론 다섯 번으로 부족한 사람이 있다. 그러면 한번 더 읽으면 된다. 그래도 어려우면 더 읽어도 좋다.
실컷 놀아도 허무하거나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 놀이 또한 독서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눈앞에 있는 담벼락을 넘어가기 위해서 여러 권의 책을 쌓아 올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책을 쌓아 올려 그 너머를 보았을 때 자신의 통찰력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책을 계속해서 읽는다.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