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책읽기
판사님의 생각들을 모아놓은 책. 법조계의 실무 영역(특히 법원의 문화)을 엿볼 수 있다. 타인의 삶을 법의 잣대로 평가해야 하는 판사 직업의 특성상, 유쾌하고 솔직한 글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권위의 상실은 본인의 직무 영역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유석 판사님은 그런 부분에서 존경심이 느껴질 정도다. 법에 대한 생각은 적고, 법관들의 문화, 우리 시대의 조직 문화, 서울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의 차이 등 대부분 사람들이 덩어리로 뭉쳐졌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한 시선으로 담았으니, 아주 가볍게 읽으면서도 묵직한 고민거리가 남는 책이다.
부의 분배는 불평등해도 행복은 평등할 수도 있습니다. ... 최소한의 기본 전제만 충족시켜 준다면 말이죠. 중국집 짜장면이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외식하러 갈 수 있어야 하고, 싸구려 카세트로라도 아름다운 음악을 느낄 줄 아는 감성을 교육받아야 하고, 기차 삼등석을 타고라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가가 주어져야 합니다.
- 신은 말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대학 시절 교육철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향연』을 교재로 소크라테스의 회상술, 산파술에 대하여 논하는 강의였는데, 사실 저는 이 과목이 시험을 보지 않고 리포트로 대체하는 널널한 강의라는 소문만 듣고 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소크라테스의 회상술을 비판해 보라는 리포트 과제를 내주면서 리포트를 작성할 때 자신이 ‘그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언어’만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100퍼센트 자신 있게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언어만을 사용하라는 말씀이었죠.
이 말을 곱씹을수록 ‘언어’와 ‘지식’의 무게라는 것이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책 좀 읽었다고 소싯적부터 꽤나 유식한 척하는 글을 쓰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던 저였기에, 제가 쓰거나 누구에게 말했던 지식 중 그 밑바닥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있기는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던 것입니다.
- 지성과 반지성
그런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시스템의 차이, 학문 풍토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차이는 이곳에서는 ‘정성’, ‘성실’ 같은 평범해 보이는 가치를 우리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당연한 문화인 것이죠. 교수들도, 학사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도서관의 사서들도,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도 다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것 같습니다. 밥벌이하려고 마지못해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 서울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 3
우리는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지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라고 잘 묻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뭐가 되고, 어느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어느 대학에 들어가고, 뭐가 되는 것까지가 아니라 무엇이 된 이후 그 좋은 방편을 활용해서 무슨 일을 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있습니까?
- 서울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 4
눈높이에 맞게 재판을 하려면 역설적이지만 야근할 시간이 없습니다. TV를 10년간 안 보기는커녕 가능만 하다면 신문도 편향되지 않게 서로 다른 입장의 신문을 같이 보고, 인터넷 여론의 흐름도 살피고, 세계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관심을 갖고,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에 관한 시대정신을 담은 좋은 책들도 읽고,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갖고 고민해야 겨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재판하기 위해서는 야근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