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신작 <퍼펙트 페어링 Perfect Pairing>를 보고
로맨틱 코미디가 좋은 이유
나이가 들수록 왜 저는 로맨틱 코미디가 좋을까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뻔해서에요. 롬콤(Rom-Com)이라 불리는 장르의 역사는 깁니다. 할리우드의 역사는 남녀 사이의 업치락 뒤치락하는 감정싸움과 종국의 화해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가 불변하는 흥행의 문법임을 증명합니다. 특히 세계 대공황 이후, 로코는 갈등하는 계층 간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장르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죠. 로맨틱 코미디의 주요 서사는 몇몇 갈래가 있지만, 그중 상당히 반복되는 종류 중 하나가 '여행을 떠나는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권력관계가 존재합니다. 여자가 잘났거나, 남자가 잘났거나죠. 결코 엇비슷한 경제 수준의 사람이 만나는 일은 잘 없어요. 특히 여행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덤으로 남자도 얻고, 정신적 각성까지 얻는 것. 그래서 좀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 딱 여기까지가 여행과 결합된 로코가 보여주는 서사의 스펙트럼입니다. 문제는 항상 여성의 각성에 '남성'이 촉매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이겠죠. 그 역의 상황은 잘 없어요.
로코, 지역 마케팅을 만나다
영화 <퍼펙트 페어링>은 LA에서 대형 와인 수입상의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여자, 롤라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진급기회도 놓칩니다. 이후 자신이 원하는 와이너리'를 수입하기 위한 회사를 차리고 판권을 따낼 욕심에 브랜드의 와이너리로 왔다가 근처 양 떼 목장에서 일꾼으로 일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습니다. 지역을 보는 데 눈에 익숙하더군요. 호주 여행으로 골드 코스트를 한 번씩은 다 가실 텐데요. 저도 그랬고요. 예전 뉴질랜드에 있을 때, 꽤 긴 호주 여행을 했습니다. 이번 <퍼펙트 페어링>의 로케이션 장소는 바로 해안도시 골드 코스트의 외곽의 시골지역인 누민바 밸리(Numinbah Valley)에요.
고산지역에선 양 떼를 키우고, 저지대에선 대형 와이너리가 있는 곳이죠. 특히 누민바 밸리의 멋진 폭포가 영화에도 나와서 잘 보았습니다. 농업국가인 호주는 항상 영화를 통해 천연 상태의 자연, 도시 물을 덜 먹은 순수함 같은 걸 너무 자주 포장합니다. 영화 속에서 양 떼 목장에서 털깍이 일을 하는 이들이 여주인공을 가리켜 깍쟁이라고 부르는데요. 영어로 Big Smoke라고 하죠. 한 마디로 대도시에 사는 여자들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건, 제목을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뜻하는 퍼펙트 페어링이라고 지었다면, 이 페어링 부분을 와인으로 좀 더 섬세하게 풀어내는 장면이 늘었어도 좋았을 텐데요. 약간 변죽만 울리는 수준에서 끝나버리고 말아요.
새 술은 새 부대에 vs. 새로운 사랑은 새로운 남자와
이 영화의 명대사는 I would never have expected that you throw me for a loop 였습니다. '내가 당신과 사랑에 빠질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요. 로코는 이 대사가 없이는 성립이 안 되는 장르다 보니, 그 표현법만 다를 뿐, 엇비슷한 대사가 나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치열함이나, 고민, 엉뚱한 인과에 묶여있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이 영화의 목적은 호주의 와이너 리르 멋지게 포장하기 위해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서사를 빌려왔을 뿐, 스토리 자체가 가진 긴장감 같은 건 1도 없어요. 양 떼 목장에서의 일상은 어찌나 구김살 하나 없이 예쁘게 그려지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 호주는 역시 한 번쯤 가볼 만해'라는 환상을 품고 싶다면,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그다지 나쁠 것 같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와인 비즈니스를 다루다보니, 관련된 영어표현들을 익히기에도 아주 좋습니다. 아! 하나 더 있네요. 남주가 툭하면 핀터레스트에서 베껴온 듯한 '영감 넘치는 근사한 말'을 자주 합니다. 익혀두면 꽤 쓸모있을 말들이죠. 그걸 공부하자고 영화를 봐야 하냐고 묻는다면, 굳이 추천하진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