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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와 유학을 고민하는 과거의 나에게

by 엄지

과거의 나에게, 또는 과거의 나와 같은 오늘의 누군가에게.


나는 결국 그 모든 걱정을 짊어지고, 2025년 3월 18일에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어. 그리고 오늘은 그로부터 딱 4개월이 지난날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짊어지고 왔다고 생각했던 모든 걱정들이 무색하게 잘 지내고 있어. 역시 나는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는 사람이더라. 걱정은 늘 특정한 공간과 시절 속에 엉겨 붙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어.


4년 전인 2021년의 나는 한국에서 어렵게 취업을 했지. 그리고 조금 후에 누구나 겪는 사회 초년생의 권태를 겪었어. 그 권태 속에서 인생이라는 것을 두고 아주 냉정한 계산을 하기 바빴고, 애썼던 노력들은 그 계산 앞에서 언제나 초라해지고 말았지.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삶을 계산하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결국 또 다른 선택을 했어. 무지와 불확실함 속으로 나 자신을 용기 있게 밀어 넣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 안에도 나름의 치열한 계산이 있었음을 이제는 인정해.


나는 여기에서 아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내고 있어. 이 작은 교실만 둘러보더라도 중국, 대만, 일본, 콜롬비아, 페루, 동티모르, 방글라데시 이란 등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이 있어. 그들의 삶을 마주하다 보면, 그토록 ‘특별한 서사’라 여겼던 내 이야기가 수많은 인생들 속으로 아주 다정히도 스며들어 버리고 말아.

삶을 재단하려 들던 과거의 낡은 잣대를 습관처럼 치켜들다가도, 금세 멋쩍게 내려놓게 돼. 이렇게 조금씩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은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나를 마주하고 있는 거 같아.


잣대를 거두고 나서야, 시야가 조금은 넓어지는 걸 느끼고 있어. 내 나름의 계산법으로는 행복과 불행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마주한 세계 안에서 그 모든 계산법이 너무도 쉽게 무력해져. 네가 품던 삶의 기댓값은, 무한한 시공간과 각기 다른 우주를 삼킨 개인이 만들어 낸 분산 속에서 종종 일그러지고, 왜곡되고, 다시 쓰이곤 할 거야. '나다운 삶'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공간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굳게 믿던 네 시절이, 지금의 나에게는 정말 '과거'가 되었어.


한국에서의 삶처럼, 네가 찾는 새로운 공간 역시 결국 다시 익숙해지고 말 거야. '내 안의 나'가 바뀌지 않으면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불행을 느끼고, 또 똑같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말기 때문이야. '더 나은' 것이 있겠거니 하며 내디딘 그곳이 더 애쓰며 살아야 하는 곳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주어졌던 그 어떤 것도 편히 누리지 못하는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어. 삶이 더 나아지기는커녕 '의식주' 마저 걱정해야 는 날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너의 결정에 깊게 감사해.


한국에서 잃기 두려웠던 속성들 역시 그 시간과 공간을 떠나고 나니까 허망할 만큼 너무 쉽게 놓아지고 말더라. 그러고 나니 삶이 한결 더 가벼워졌어. 네가 하고 있는 우려는 대부분 현실이 되는데,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왜냐하면 세상은 네 걱정만큼 '견뎌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야. 세상은 생각보다 네 편임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스스로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생각만큼 매일 행복하지는 않고, 예전과는 다른 걱정이 생겨도, '쥐고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을 놓아버리고 나니까, 이게 진짜 살고 있다는 느낌이지 싶어. 행복과 불행은 삶의 어느 순간에도 공존하며, 그 경계는 아주 불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 중요한 것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임을 느껴.


중요한 것은 계속 마음을 따라 도전하는 것, 그리고 삶을 즐기면서 더 명랑하게 살아가는 거야.


앞으로의 너는 스스로와 많은 대화를 하며 삶의 의미를 찾게 될 테니, 그리고 결핍과 불만족이 아닌 의미와 균형 속에서 삶을 살게 될 테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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