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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니니 Mar 07. 2019

우연한 만남이 가득했던, 세고비아

투어듣는 것보다 더 알찬 하루.

퇴사하고 한 달 유럽여행

DAY 07. 스페인(세고비아)


#마드리드 근처의 작은 도시, 세고비아

마드리드에서 2일 차쯤 되었을 때였다. 저녁에 동행들을 구해서 식사를 하면서 서로 어디 다녀왔고, 어디가 좋았는지를 이야기하는데 한 동행이 '세고비아도 갈만해요' 라며 추천해줬다.


마드리드에서 보내는 일정도 길고, 시내는 많이 구경을 해서 7일 차에 세고비아를 다녀오기로 했다. 보통 오전에 갔다가 오후에 마드리드로 돌아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도로 작은 도시인 세고비아. 마드리드 근처의 또 다른 근교 도시인 톨레도와 더불어서 '톨레도+세고비아=똘세투어'를 많이 하곤 한다. 다만 나는 아직 3주 정도는 여행 기간이 남았고, 가난한 배낭 여행자였기 때문에 버스를 끊어서 가기로 했다.



#버스 기다리면서 먹는 스페인식 아침 식사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크로와상과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스페인은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 다고들 하는데, 그중 가장 이른 아침에 먹는 끼니를 '데사유노(Desayuno)'라고 부른다.


데사유노로 주로 간단한 빵과 커피를 마신다.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서 배고픔을 달래려고 버스 터미널에 있던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아메리카노를 샀다. 크로와상이 너무 고소하고 버터 풍미가 가득했다. 한국 크로와상에 비해 안이 약간 더 촉촉하고 살짝 더 쫄깃한 느낌. 한 입 물었을 때 더 쉽게 바스러지는 식감이었다. 맛있는데 가격도 착해서 더욱 만족!



#한국인이세요?

출발 시간 즈음해서 버스 줄을 향해 갔다. 어디가 시작 줄인지 몰라서 다른 한국인에게 물어봐서 줄에 서있을 때였다. 내 바로 앞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내게 뭔가 물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한국인이세요?"라고 해버렸다.


버스표를 보니 세고비아로 향하는 분이었고,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수다를 떨면서 너무 재밌게 세고비아로 향했다. 사실 그전에 유랑 카페를 통해 현지 학생을 세고비아에서 보기로 했었다. 원래 만나기로 한 동행에게 한 명 더 같이 다녀도 되겠냐고 물어봤고, 흔쾌히 괜찮다고 해서 파티 인원이 총 3명이 됐다.



#어? 진짜 오셨네요!

수도교를 구경하고 있는데, '어????'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까 어제 점심을 같이 먹었던 동행들이 있었다. 세고비아에 올 예정이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반가움과 신기함이 교차했다. 한 번 만나는 게 끝이 아니라 이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다니. 역시 착하게 살아야 하는구나..



#수도교 봤으면 절반은 봤다고요?

 수도교를 보고, 현지 학생을 만나 수도교 바로 옆 음식점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거의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현지 학생이 유창하게 주문을 해줬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식사로는 세고비아를 오면 사람들이 꼭 먹는 새끼 돼지 통구이(코치니요 아사도)를 먹었다. 살짝 짰지만, 고기는 족발의 비계 같이 부드러웠고 껍데기는 베이징 덕 같이 바삭했다. 계속 먹으면 조금 질릴 수도 있는 맛이었지만, 배고팠기 때문에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우린 모두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다들 성격이 원만해서인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데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먼저 만난 동행과 수도교를 보고 왔다고 하니, 현지 학생이 세고비아에서 제일 중요한 걸 끝낸 거라며 절반 이상 다 본거라고 했다. 이런.. 아직 돌아갈 시간은 한참 남았는데..



#노는 게 제일 좋아

현지인의 완벽한 인솔 하에 세고비아의 주요 관광지를 순식간에 돌았다. 열심히 봤는데도 시간이 남아서, 현지 학생 집에 가서 옥상에서 노래를 틀고 맥주를 마시면서 놀았다. 처음에 연락할 때 집 옥상이 세고비아 수도교가 최고로 잘 보이는 곳이라고 했는데, 수도교를 정면에서 제대로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인정!


신나게 맥주와 안주를 먹다가, 현지 학생이 자신의 세고비아 친구들을 불렀다. 이때 처음으로 현지인과 볼 뽀뽀 인사를 했다. 정식 이름으로는 도스 베소스(Dos Besos). 서로 양쪽 뺨을 맞대면서 입으로 가볍게 쪽 소리를 내는 인사다. 개념은 알았지만 실제로 인사를 받아보니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인사를 하기 싫은 상대한테도 이렇게 인사를 해야 하면 싫을 것 같다.


타파스 집으로 이동해서 현지 학생의 친구 3명과 원래 만나서 놀던 사람 3명 이렇게 총 6명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신기하게도 이 타파스 집은 음료를 시키면 안주를 무료로 줬다.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과자가 아니라, 작은 메뉴를 무료로 줬기 때문에 음식을 따로 시킬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가격도 무척 저렴했으니까,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 날도 역시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전에 마드리드에서 들었던 쿠킹클래스 수업이 생각나서 내가 먼저 열심히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확실히 언어는 이렇게 현지인과 놀면서 배우면 일상 소통 수준의 영어는 금방 늘겠구나 싶었다.



#투어가 주지 못할 경험들

원래는 6시 반 버스를 타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너무 재밌게 놀다 보니 저녁 10시 넘어서 버스를 탔던 것 같다. 한참 시간을 넘겨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의 움직임 때문에 숙취가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눈을 잠시 붙이기 전에 아침에 만났던 동행과 서로 '세고비아에서 진짜 이렇게 놀 줄은 몰랐는데..'하고 감탄하면서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만약 투어였다면 이런 경험을 해 볼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거다. 물론 투어가 장점도 분명히 있지만, 전체 여행 중에 며칠만이라도 누군가 내게 들어올 틈을 주면 좋을 것 같다. 그 사이에 더 특별한 경험이 생겨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말만 많이 하다 보니,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카페도 두 번이나 가고 타파스 가게도 두 번 갔는데, 따라만 갔더니 내가 갔던 가게 이름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 날의 모든 것이 막연하게 좋았다고만 기억된다.




+기 억 에  남 는  순 간.

멀리서 바라본 수로교. 가까이서 찍을 때는 옆이나 아래 구도로만 찍을 수 있었는데, 정면 샷도 꽤 멋있었다.


+소소한 팁.

* 세고비아 새끼돼지 음식점 메종 데 칸디도

  - 수도교 바로 옆에 위치.

  - https://goo.gl/maps/vzRZ49BWQFR2

  - 새끼 돼지를 맛보고 싶다면,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 한 마리를 통으로 먹기보단 그냥 조금 시켜서 먹는 게 좋은 것 같다. 생각보다 돼지 누린내는 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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