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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Dec 31. 2023

끝과 시작

이제 다시 시작할 거야.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흘러 올해의 끝날이 되었다. 시작이 나빴다. 오래된 인연을 정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무모하고, 불필요한 일로 여기게 될 만큼 너무나 고됐다. 변화를 마주하고도 변화와 그 여운 탓일까, 사이사이 견디기 힘든 날들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이토록 내 삶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날들이 있었을까, 간간이 삶을 원망하기도 했다.


복잡한 생각을 청산하기 위해서 잠시 멈춰 힘을 뺐다. 변화를 마주하며 올해 첫 번째 절반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 평소보다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감정을 소진한 후에 무리를 했던 탓인지 여름의 끝자락에 이르자 너무 지치게 됐다. 이러다 지금껏 하고 있던 일들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게 될 것 같았다. 번아웃이었고, 회복 불능의 상태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늦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짧지 않은 한 해의 절반을 힘을 빼는 시간으로 소모했다.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내게도 그렇다. 올해는 지난해 계획해 둔,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빠르게 흘러버렸으면 하는 시간도 있다. 올해가 그랬다. 나는 내게 몰려온 변화를 마주하고, 또 받아들이고, 그리고 결국에는 넘겨야 했다. 그래서 올해를 살며 이 시간들은 어느새 흘러버렸으면 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기로 다짐했던 시간을 흘러버려야 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시간을 부여잡아 무언가 하려고 애를 쓸수록 집중하지 못해 잡히지 않는 시간이 되었다. 감정이 말라서 하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뿌옇게 있었다. 잡으려고 손을 뻗으려 제대로 의욕 하지 못했다. 잡히지 않는 일상이 불안으로 찼다. 그래서일까. 애쓸수록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때로 멈춰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흘려보내기로 했던 것이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흘려보내야 했다.


힘든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너져버려서 회복하기 힘들 것 같던 삶이 내 삶이 된 것 같았다. 남루해져 버려 이제는 버려도 괜찮은 것은 아닐까, 아주 가끔 생각하고는 했다. 불행에 빠져 존재의 좌표를 잃었기 때문에 길을 찾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내게 말 걸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는 좌표를 찾을 수 있는 단서 같은 것이 되어주었다. 위치를 다시 찾게 되면서 그 덕분에 불행이랄까, 불운이랄까 막막한 생각들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관계에서 시작된 삶의 위기를 마주하며 안타까웠던 것은 관계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숱한 것들의 가능성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과 사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의 가능성을 덜 믿게 됐다. 약간은 더 염세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다만, 위기를 겪으며 내 삶을 채웠던 여러 가지 것들을 솎아내 삶을 가볍게 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어서 의미가 없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나는 오랫동안 내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위기를 계기로 해서 이제 거짓이었던 것을 털어내고 다시 삶의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접어들게 되는 삶의 모퉁이마다 고비처럼 버티고 있던 날들을 그렇게 넘었다. 그리고 여전히 오고 있는, 복잡한 날들을 넘어가고 있다. 하루와 일주일, 한 달과 일 년을 구분해 둔 덕분에 시간의 경과를 경험하며 하루와 하루, 시간과 시간마다 뒤에 두고 싶은 것이 오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23년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아 마음이 결코 좋지는 않지만, 흘려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흘려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2024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끝나버리지 않아서 다행인 202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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