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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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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25. 2024

발끝만 보고 계속 걷기

120% 노력으로 100% 결과를 간신히 얻을 수 있더라도

산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산에 오른 것이 10월 첫날이었니, 거의 두 달만의 등산이다. 어렵지 않게 오르고 내렸던 산이었지만, 오래간만에 찾은 탓에 초입부터 약간 긴장됐다. 정상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확실했다. 그러나 정상을 향하는 걸음걸음이 지나치게 무겁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산을 오르는 내내 내려가고 싶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됐다. 시선을 멀리 두지 않고, 두세 걸음 앞만 보고 한참을 걸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한 발씩 차곡차곡 쌓아 정상에 숨을 가쁘게 몰아쉬지 않고서도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탁 트인 시야 저 멀리 다른 산의 봉우리가 들어왔다. 탐이 났다. 그리 힘 들이지 않고 정상에 올랐기 때문에 더 가볼 수 있는 힘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힘이 더 멀리 가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정상에 몇 분 머물지 않고, 다음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서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한 발짝씩 정상을 위해 채워야 할 걸음을 쌓았다. 정상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저 멀리 정상에서 내려와 이곳에 오르는 동안 걸어온 길을 복기하듯이 돌아보았다.


지난여름 부지런히 달리고, 이따금씩 산을 올른 덕에 다음 봉우리를 오를 만큼 충분한 힘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오를만한 산이 있었다. 그러나 여름에 내린 비로 인해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막혔고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산의 정상에 오르기 전에 잠시 머물던 정상에 다시 오르기로 마음먹고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산의 정상에 다시 오른 후에 일요일의 등산을 마무리했다.



산을 오르내리며, 얼마 전에 본 어느 정치학자의 영상이 떠올랐다. 성공적인 경력을 쌓으며 인정받고 있는 그는 자신은 100%를 해내기 위해서는 120%를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운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운을 기대하며 방심한 순간 "망했다"라고 할 만큼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와 같은 삶의 양상 때문에 성실하게, 또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의 태도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 지금에 와서는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의 태도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산을 오를 때, 힘들지 않으려면 평소에 체력을 길러서 피로에 대한 저항력과 공기를 한껏 머금을 수 있는 심폐능력을 길러두어야 한다. 어떤 이는 산에 잘 오르기 위해서 더 오랫동안 힘을 길러야만 한다. 물론 약간의 행운이 현재의 등산을 수월하게 한다. 선선한 바람이 산을 오르는 사람의 몸을 가볍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선선한 바람이 산을 오를 때마다 불어오지만, 어떤 다른 이에게 그 바람이 아주 귀한 것이라면, 두 사람의 운은 등산 자체를 다른 것으로 만들기도 할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서 조금은 더 힘을 써야 하더라도,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다소 느리더라도 언젠가 정상에 닿게 되고, 흘린 땀만큼 정상에서 맞는 공기는 더 상쾌하게 느껴진다. 바람이 땀을 식혀주지 않는다면 산을 오르는 동안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은 때가 더 많아진다. 그러나 더위와 더위에 더 거칠어질 호흡을 견뎌낸다면 정상에서 더 큰 성취감과 즐거움을 보탤 수도 있는 것이다.



노력해도 참 잘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떻게든 잘 풀어가려고 노력해도, 그 노력들이 삶을 더 복잡하게 꼬아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잘못된 선택 때문일 수도, 운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고단한 일상에서 돌이켜 보는 내가 살아온 삶은 고단해 보였다. 고된 삶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지금 포기하고, 달리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고민은 길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앞을 보지 않고, 발끝만 바라보며 한 발짝씩 발을 옮기며 걸어야 할 시점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여전히 산중에 있고, 땀에 흠뻑 젖어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내려갈 것인지, 올라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고 몸에 힘이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려가 버리면 먼 훗날 잘한 선택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짙은 아쉬움으로 기억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견뎌내야지, 버텨야지 하고 다짐한다.



일요일 오후 나는 산을 거듭해서 올랐다, 숨이 차올라서 더 이상 가지 못할 때까지 오르고 내리며 더 멀리, 더 높이 가보기로 했다. 산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에 시선과 마음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없어 건조한 산행이지만, 정상을 탐하며 부지런히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며,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오르는 날이 내게도 올지 모르겠다 작은 기대를 품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아직이다. 지금은 걷고 또 걸으며 포기하지 않고 걷는 것이 오직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순간순간 즐거움마저 찾으며 완주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걷기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정상에 닿을 때까지 걸었다.



안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11:50


인왕산 정상의 풍경. 오를 수 없는 북악산 정상. 12:33.


다시 안산 정상. 13:14.


산을 오르며 여전히 산의 풍경을 즐기듯이 아직 일상을 즐기며 삶을 살아갈 수는 없지만, 고되다 느끼더라도 앞을 향한 진로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잘 해내기 위해서 몇 곱절 더 해야만 하는 운 없는 삶이 피곤하지만,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에 연연하여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살아가기보다는 피곤하고 지치더라도 내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라도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해소되지 않는 어려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며 쉬운 길은 없는 내 삶을 어렵게라도 살아내자고 나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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