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은
12월이 됐다. 써두었던 시를 고쳐 몇 군데 보내보겠다는 생각을 지난달 마무리하지 못하고 12월을 맞았다. 관조할 수 없이 바쁘게만 살아서 언어를 기계적으로 다루는 동안에 시를 불러오지 못한 탓이었다. 계획이 자꾸만 틀어져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약간 지치는 느낌이다. 그러나 끝을 보아야 하는 것의 끝을 보아야지만 시계가 똑바로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아 버티고 버티고 있다.
11월 말 절친한 대학원 동학을 만났고, 오래간만에 학부 친구들도 만났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들으며 가끔 웃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의 노력마저 하지 않으면 출구를 잃을 것 같아 마음에 무리가 되더라도 괜찮은 것처럼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다.
고되고 가끔은 아주 지루한 일상의 연속과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으로 만들어지는 삶을 어떻게든 이고 지며 시간의 정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쯤 되면 인생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아주 먼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헛헛한 새벽을 종종 맞았다. 그러나 결코 쉬운 적 없었던 순간순간을 버텨낸 덕에 힘들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된 자신을 또한 그 순간에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해야 할 것들을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은 여전히 생각했다.
목표와 꿈을 향해서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딛는 것이 삶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만나는 어려움들을 견디며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고난의 크기를, 그 고난을 버틸 힘을 알아두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자신, 혹은 자신다움을 의미하는 정체성은 때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다면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또 다른 나의 정체성이다.
점점 사람은 그 사람의 생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렇다면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어."라는 말과 함께, 얻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들을 향한 여정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봄이 오기 전까지 견디기로 했으니 견뎌내기만 하면 된다. 인내심을 갖고 버텨야 하는 시기이다. 12월은 여전히 내게 축적의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