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을 해나가고 싶다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20대 시절, 작고 혼자서 운영해야 하는 개인 카페에서 주로 일하며 지내왔다.
주인 아주머니가 취미 삼아 하는 카페도 있었고 하루 매출이 0원인 적도 있었다. 커피를 뽑는 일보다 파스타를 만들거나 스테이크를 굽는 일이 많았던 카페도 있었다. 또 어딘가는 18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팔면서도 아르바이트 친구 1명이랑 둘이서 한 시간에 25만 원을 팔아야만 했던 카페도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가게들을 전전하면서 시시콜콜하게 8년을 넘도록 바리스타로 일했었다. 나와 동갑인 다른 바리스타는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카페를 차렸지만 나는 무엇 하나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운 좋게 20대 말미에 서울에 규모가 큰,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어째선지 잘 적응할 수 없었다.
무엇 하나 잘 할 수 없었다. 지금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전부 나의 잘못이었다. 내 행동부터 말투 전부 어딘가 뒤틀려 있었다. 그만두기 직전에도 동료들한테 다신 카페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느니 하는 말도 심심치 않게 꺼냈었다.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지 한치도 모르는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스스로 자초했다 하더라도 어쨌든 큰 카페에 잘 적응하지 못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는지 일본에 와선 카페에서 일하는 것 말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저것 시도해보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 커피 일 뿐이었고 커피 말고는 이력에 쓸만한 것이 없었다.
그깟 커피, 그래도 커피..
그렇게 이력서를 뿌린 여러 카페 중 블루보틀이 있었다. 당시에는 한국에도 오픈을 하네 마네 소문만 무성했던 시절이었다.
일본의 블루보틀은 채용 공고를 올리는게 아니라 채용 세미나라는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블루보틀에 관심이 있고 입사하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해 음료를 제공하며 블루보틀이 어떤 회사이며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이야기하고 나서 면접을 보는 방식이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면접을 보았던 카페가 블루보틀이었고 그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면접 내용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수긍할 수 있는 결과였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클레임이 무엇이었고 그 클레임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했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일본어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내가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함께 면접을 본 사람은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훌륭한 대답을 꺼내놓은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도 다른 유명한 카페에도 지원했지만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 흐르고 난 뒤 다시 블루보틀 채용 세미나 이벤트 알림이 뜨길래 다시 한 번 신청을 했다. 아마 반년 만이었던가? 이미 한 번 떨어졌던 곳이고 어떤 식으로 면접이 진행되는지는 아니까 그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었지만, 되리라는 마음 없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커피를 얻어마실 생각에 갔던 세미나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면접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질문에 대한 대답도 잘 해냈기 때문에 '혹시 되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되어 왔던 거절의 경험으로 '에이, 설마 되겠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채용 세미나가 끝나고 3일이 지났는데 메일 한 통이 띠롱, 하고 왔다.
블루보틀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안타깝게도, '라는 말과 '아쉽지만, '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메일만 받아왔던 나에게 '함께 일을 해나가고 싶다'는 제목의 메일은 엄청나게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렇게 나는 블루보틀에 채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