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곡을 걸으며!
산천을 물들이던 꽃은 열매가 되어 가지마다 다닥다닥 하다. 깊은 계곡에하얗게 웅크리던 얼음도 찾아보기 힘들다. 늦깍이 밤꽃은 힌 꽃술로 진한 향기를 뿜으며 벌들을 모은다. 양봉을 하는 사람들은 그 양기 가득한 꿀을 모으느라 바쁘다. 누런풀은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잎이 무성하다. 이렇게 계절은 여름에 바짝 다가 섰다.
비가 온다는 날이지만 구름만 낀 고속도로를 달려 경도제일폭 간판이 폭포만큼이나 크게 붙은 곳에 도착 했다. 산행 초입 돌다리는 잘 정돈 되었고, 그 사이를 지나는 물도 속세에가까워 질 수록 반듯하게 흐른다. 이에 반해 자연으로 관광 온 사람들은 제 멋대로 걸으며 시끄럽게 떠든다. 배낭을 메고 그 사이를 비켜가는 우리의 발길은 분주하다. 얼마 지나지않아 경도제일폭이 눈앞에 나타났다. 넓이와 낙차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물줄기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전립선 비대한 노인내의 오줌줄기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둘러쳐진 암석이라도 작으면 어울릴 텐데! 그렇지만 어쩌랴! 이 또한 자연인 것을!
그런 경치를 보며 지그재그로 난 계단을 오르니 오른쪽 바위는 우람하고 숨겨진 산은 조금씩 자태를 보여준다. 넓은 바위에 고인 물은 넘쳐 흘러 물줄기를 따르고 정면 산은 또 다른 경치로 시야의 끝에 있다.
잘 나있는 등산길은 계속해서 우리를 인도 한다. 돌다리가 가지런한곳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그 사이에서 가벼운 산바람이 불어와 잎을 흔든다. 이에 화답하듯 얕게 고인웅덩이도 간지러운 파장을 일으킨다. 그렇게 반듯하게 난 길을 보며 도대체 무엇을 보여 주려고 이렇게정리가 잘 되었는가! 하는 기대감으로 걸었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멋진 풍경이 펼쳐 졌는데 이름하여 비주폭(飛珠瀑)이다. 진주가 날린다는 뜻인가? 그아래에는 다랑이 같은 바위 웅덩이가 있고 뒤쪽에는 암석절벽이 보이고 가운데에 절정의 비주폭이 있다. 1단,2단,3단이 넓고 시원하게 펼쳐 졌다. 양 옆으로 가득한 녹음이 감히 이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형태이고, 바위 또한 더 이상 숲을 넘보지 않아 조화로운 경치가 되었다. 잠시아래에서 위까지 또는 위에서 아래까지 훑어 보니 또 다른 욕심이 생긴다. 즉 고요한 달빛 아래 진주물줄기를 등으로 받으며, 멋진 경치와 녹음 짙은 산천을 또 다르게 느끼고 싶어진다.
이렇게 밀려 드는 감동을 마음에 넣고, 긴 여운과 추억을 위해 여러 가지앵글로 사진을 찍으니 민망스런 모습도 나온다. 폭포를 찍을 때는 음의 기운이 넘치는 모양이 나오기도한다. 그래서 더욱 잘 해보려 애쓰니 점점 좋아져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앞사람의 발길을 따랐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계곡이 끝나고, 본격적인 등산을하려는데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나 고문님과 회장님의 내공 깊은 협상은 서희의 담판인 강동육주를넘나들었고 더디어 굳건하던 문지기가 쓰러졌다. 이때다 싶어 산우들은 보란듯이 굵은 쇠파이프를 넘었다.
이제부터 실 개울을 건너고, 로프를 타고, 절벽의 바위 길을 이으며 본격적인 산행을 한다. 이를테면 한 팀은계곡을 걷고 다른 팀은 산 옆구리를 지나며 흐린 산길을 헤친다. 얼마 후 줄을 타고 내려가는 길과 바위절벽이 있는 곳에서는 개인이 선호 하는 것을 선택해 이동했다. 그곳에는 또 다른 냇물이 넙적한 바위위로 흐른다. 유치원생 회원인 김사장(석이)는 아까부터 아빠에게 먹을게 있는데 하며 나누어 줄 기회를 찾았다. 마침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라 고사리 손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할아버지 연세까지배려한 연한 사탕으로 당을 보충한 후 발길을 이으니 곧 야영장에 이르렀다. 멋진 녹음 한 폭을 등지고점심을 먹으니 개울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보글보글 끓는 우동과 라면은 우리의 포식을 예견 한다.
오후 시간! 날씨는 어두워 지고 천둥이 친다. 이내 내리는 소나기는 등산길에 또 다른 정취를 만든다. 개울에 떨어지는빗방울은 작은 흔적으로 떠내려 가고, 녹음 짙은 숲에서 들려 오는 쏴~~!하는소리는 또 하나의 운치가 된다. 산골 외딴집에서 홀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느끼는 감성도 있고, 웃통 벗은 기개로 세차게 내리는 비에 대적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등산로에는물에 젖은 나뭇잎들이 마치 수은등을 단 듯 빛나고, 그 사이로 알록달록하게 비옷을 입은 산우들이각자의 낭만을 느끼며 걷는다.
삼거리를 지나 고개 마루에 올라서 먼 숲을 보니 잎들은 다채로운 푸름으로 더욱 생기가 있고 비는 이미 그쳤다. 우뚝 선 바위와 옆으로 기대어선 절벽을 지나 다래넝쿨이 나무를 타는 골짜기를 벗어 나니 밤꽃 향기가 밀려 온다. 멀리에는 천문산 봉오리가 구름 아래 당당하고 풀과 나무는 각자의 향기로 절정의 여름을 맞는다.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가 탐스러운 길을 따르니 어느덧 시원한 맥주가 있는 농가원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휴식하며 소나기와 녹음, 폭포와 절벽, 몇 번이고 건너 다닌 산속 개울이 어우러진 산행을 추억으로 역으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