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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립 Jun 19. 2018

북경 동도구장성~수장성 산행!

--운무속 만리장성을 걸으며--

북경 주변에는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적지 않은 만리장성이 있다. 어떤 곳은 무너지고 헤어져 겨우 유지되는 곳도 있고, 제대로 보수 되어 관광 자원으로 활용 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아름다움은 세월에 순응하며 조금씩 내려 앉은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만든 것이 오랜 시간을 거쳐주변 경관과 어울려 천연의 모습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봄 꽃과 함께 소녀처럼 발랄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특징인 곳이 있는가 하면,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울려 깊어 가는 계절과 삶을 생각게 하는 장성도 있다. 또 수십 기통의 내연기관처럼 주변을 하얗게 평정하며 산맥 속으로 겨울 여행을 떠나는 것도 있다. 이렇게 계절에 최적화 된 곳을 찾아 가면 담장 같은 단조로움은 사라지고 다양한 감동이 밀려 온다.

가볍게 시작한봄비는 출발 직전 폭우로 변해 노변에는 도랑 같은 물이 흐른다. 하지만 걱정이 없다. 멀지 않은 곳에 길 좋은 산도 많아 선택만 잘 한다면 여전히 등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녕 하늘이 말린다면 촌락에서 운영 하는 농가원이 있지 않은가! 그곳에서내리는 봄비를 보며, 술과 함께 떠들썩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언뜻 세상사 도통한 것 같아 좀 거시기 한 기분도 든다.

징청 고속도로를지나 수장성 가는 길 중간 동도구 장성 마을 입구에 내리니 어느덧 비는 그쳤다. 앞에서 예고 한대로오늘은 봄과 함께 하는 장성을 타는 것이다. 입구에서 아주머니가 야매로 인당 10원을 요구하길래 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다시 불러 그냥 들어 가라 한다. 엿장수 맘대로다. 봄비오는 어제 저녁 그저 아름다운 밤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아직 잠자리에 있는 그의 부군에게 감사하며 경쾌하게 발길을 옮긴다. 옆에 늘어선 밤나무는 순 틔울 생각도 않지만, 다른 가지에는 아기손 같이 귀여운 새싹들이 꽃처럼 조롱조롱하다. 그런 길을 따라 잠시 올랐는데 눈앞에 긴 장성이 떡 하니서 있다. 왼쪽으로 가면 수장성, 오른쪽으로 가면 황화장성으로가는 분기점이다.

초반부터 장성을타면 지루하다는 알거 고문님의 제안에 따라 옆으로 난 흙 길을 따랐다. 처음에 눈앞에 들어온 경치는소나무다. 작은 잡목 위로 쭉 뻗은 몇 안 되는 나무는 고풍스런 자태다. 먼 산까지 볼 수 있게 높이를 한껏 키우고 잎은 정수리 부분에만 소복이 나 있다. 마치 잠망경 같이 올라와 낮은 숲 속 답답함을 해결 한다. 그러면서남쪽에서 불어 오는 꽃 내음 소식을 뿌리로 보내 새순 돋을 시기를 가늠하는 것 같다.

이렇게 노송과망루가 각자 지나온 세월의 길이를 자랑하는 풍경 속에 서니, 주책없는 아재 감성이 발동한다. 먼산에 걸친운무와 그 사이에 드러난 봉오리 섬, 그리고 하얗게 꽃 몸살을 앓던 산은 이제 생기 넘치는 연녹색으로가득하다. 이러한 경치가 장성과 함께 만리까지 뻗어 있다. 그위에 연분홍 치마 휘날리는 수줍은 봄 처녀를 세우니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선 등산객은 표현의 장애 되어 그저 멋지다는 말만 되 뇌일 뿐이다.

이 또한 길게허락하지 않는다. 갑자기 한바탕의 운무가 밀려와 오리무중 같은 시간이 지나간다. 해발 500정도 밖에 되지 않은 곳에 2,000미터 이상의 경치가 넘나 든다. 이러한 자연을 보며 오르막과내리막을 걸으며 우뚝한 망루가 나오면 정거장처럼 쉬어가거나 꼭대기에 올라 한 개의 봄도 놓치지 않았다.

다시 먼산에는밝은 빛과 구름이 쟁탈전을 벌이며 또 다른 풍경을 자아 낸다. 가까운 곳에는 낮게 깔린 비안개가 장성을숨기지만, 우뚝 솟은 망루는 호위만 할 뿐 우리의 눈을 위해 남겨 놓았다. 가끔씩 밀려 오는 구름은 길게 뻗은 만리장성을 보일 듯 말 듯 휘감는다. 이모습은 봄 기운에 주체 못하는 거대한 용이 초록 속에서 뒹구는 듯하다. 산천에는 연두빛 카펫이 깔렸고그 아래에는 헤프지 않은 야생화가 무늬처럼 피었다. 이러한 자연은 더 큰 용의 몸부림도 염려 없이 받아낼 듯 하다. 적지 않게 만리장성을 다녔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처음이다.

계속해서 고사목이외롭게 성벽을 지키는 오르막과 지난 가을 밤송이를 새처럼 달고 있는 평지를 지난다. 멋진 풍경을 놓칠세라가끔씩 뒤돌아 보며 앞으로 나아가니 어느 순간 본대가 멈추었다. 어떤 이는 망루 위에서 경관을 살피고다른 사람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담소를 즐긴다. 그곳은 주변 산으로 비 안개를 쫓아낸 수장성 호수가살가운 봄바람에 물결을 접는 곳이다. “아~~! 이곳이 거기구나!” 하며 곤두박질 칠 듯 아래로 떨어지는 성벽에 시선을 보낸 후 인증 사진을 찍으니 건너편에 펼쳐진 안개 낀산과 호수가 통째로 빨려 든다.

발길을 돌려자연이 주인인 망루 하나를 빌려 한 살림을 차리니 라면 끓이는 소리와 달래 다듬는 소리 그리고 운무 속 신선 같은 대화가 조화를 이룬다. 망루 밖에는 더욱 푸르러지는 초목이 있고 그 사이로 빗방울이 오락가락한다. 힘받은 봄날은 더욱 높은 곳을 향한다.

식후 이도관마을을 향해 하산하니 바람 부는 산길에는 달래와 둥굴래가 탐스럽게 모여 있다. 구미 당기는 식탁이 떠올라 천천히 뽑으니 뿌리까지 올라 온다. 군데 군데 서 있는 돌배 나무는 바람에 날리는 하얀 꽃잎을땅에다 붙이고 나머지 반은 나무에 매달아 더 없이 아름다운 봄 경치를 그려 낸다. 부족한 등산을 메우기위해 얼따오관 뒷산 망루를 다시 40분 정도 오르니 다리에는 힘이 오르고 등줄기에는 땀이 흥건하다. 3급의 바람이 장성을 돌아 나가는 곳에서 등을 말리고 하산 했다. 왕징으로돌아와 둥굴래와 달래를 곁들인 양씨에즈로 뒷풀이까지 마치니 봄으로 꽉 채워진 멋진 산행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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