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기로 결정했어
"넌 무슨 색깔이 좋아?"
"좋아하는 공주는 누구야?"
"좋아하는 연예인 있어?"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취미생활이 뭐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게 뭔지 특정해야 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매일 보는 가족, 스쳐 지나가는 인연, 친구, 사람에게도 특별한 정과 같은 감정이 뭔지 잘 몰랐던 나에겐 좋아하는 사물과 같은 무언가를 정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고 이런 질문들은 들을 때마다 나를 곤란하게 하곤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특별히 좋아하는 걸 정하지 못한 질문을 들을 때면 여전히 식은땀이 날 때도 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해야만 할 것 같은 무언가를 정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관심이 없는 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초등교육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더 바빴던 것 같고 그 외 다른 거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넌 어떤 공주가 좋아? 혹은 가수 누구 좋아해? 와 같은 질문을 할 때면 "글쎄..."라거나 "다 좋아."와 같은 대답을 했고 결국에는 이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 더 깊은 고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좋아하는 무언가를 정하기로 결정했다.
"저는 이제 각인 같은 거예요. 이제는 내 일부가 돼서 더 이상 바꿔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냥, 좋아하려고 좋아하는 게 아니고 각인처럼 외워진 거예요."
"계상이 형한테 안무 같은 거지, 한 번도 다른 길로 가보지 않은 거지! 왼쪽으로 무조건 가는 거야."
유튜브에서 아이유의 팔레트 god 편을 보는데 이런 내용이 나왔다.
아이유가 god를 좋아하는 건 그냥 마음속에 각인돼서 바뀌지가 않는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랑하는 마음이 쌓여 지금의 아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처음 아이유를 좋아하기로 결정한 건 중학생 때 일이었다. 그 당시는 2세대 아이돌 열풍으로 친구들
모두 빅뱅,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원더걸스와 같은 좋아하는 가수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고 나도
좋아하는 가수 한 명을 정해서 그 반열에 끼고 싶었다.
예쁘장한 얼굴, 좋은 노래, 귀여운 몸짓, 성격...
이 사람이 너무너무 좋아서 좋아하기로 결정했다기 보단 싫어할 만한 결격사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유를 좋아하기로 결정했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결정하고부터 그 사람의 노래를 듣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따라 하고, 그 사람이 즐겨 읽는 책을 따라 읽고, 기부도 같이, 행복한 순간도 슬픈 순간도 함께 했다.
14년 동안 아이유는 내 삶의 일부로써 각인이 되었고, 내 삶에 좋은 기억이 그렇게 더해져 갔다.
인생이 그렇듯 매번 좋은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나는 잠만 잤고 일만 했다. 그 시간을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좋아하는 게 없었다.
사실 힘든 시간을 견디며 내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좋아하기로 결정한 무언가가 있었고, 그 무언가가 날 지탱해줬다.
일할 때는 그 작은 인형이 새겨진 귀여운 슬리퍼를 신고 일을 했고, 옷에도 작게 로고가 그려진 옷을 입었고, 차에도 인형이 새겨진 아이템들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인형을 안고 잠을 자고 쉬고 인형 캐릭터가 달려있는 귀여운 볼펜으로 일기를 썼다.
힘든 시간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무언가를 좋아하기로 결정해서였다.
우연히 시작한 등산을 좋아하기로 결정했고, 달리기를 좋아하기로 결정했고, 샤부샤부를 좋아하기로,
카레를 좋아하기로, 돈가스를 좋아하기로, 내 일기장을 좋아하기로, 사람을 좋아하기로...
난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내가 잠드는 이불이 좋고 침대를 사랑해, 빨간색을 좋아하는구나, 책 읽고 글 쓰는 걸 이렇게 좋아했었지, 나는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구나.
내 삶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고 그 작고 소박하고 소중한 것들이 나를 지탱하고 채워줬다.
좋아하는 게 뭔지 궁금해요. 좋아하는 게 뭐예요? 다섯 개만 알려 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