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 추억하며
며칠전부터 디즈니플러스의 추억의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보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쯤 방영한 이 고전 미드는 부촌의 가정주부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요 인물 중에 이혼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으므로 전부 가정주부는 아니지만, 대체로 결혼 후 커리어가 단절된 주부들의 이야기다. 주인공들 전부가 바비인형을 그대로 본따 만든 것 같은 마른 몸의 미인들이며, 히스페닉 계 모델 등장인물을 제외한 전원이 백인이다. 흑인이 영국 귀족도 되고 여왕도 되는 요즘의 넷플릭스 감성과는 거리가 먼 옛날 드라마랄까.
나는 어린 시절 이 드라마를 '불륜과 살인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로 알고 있었고 티비 방영분을 지나가다 몇 번 본적은 있지만 전반적인 스토리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맘잡고 본 적은 없었다. 시즌 1을 다시 보기 시작한 시점에서 조금 이른 내 감상을 말하자면, 요즘 드라마들에 비해서는 그렇게 막장도 아니고 나름 서사가 탄탄하다. 그러고보면 남성서사의 드라마들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막장'이라는 오명을 쓰지는 않는 것 같다. 사실 <오징어 게임>이야말로 막장 중의 막장이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이 목숨걸고 싸우는 이야기라고 해서 막장이 예술이 되지는 않는다. 뭐 어쨌든 오징어 게임의 리뷰를 하고자 한 게 아니니, 다시 <위기의 주부들>로 돌아가겠다. 나는 이 드라마를 틀자마자 뭐라 말할 수 없는 진득한 친숙함에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평범한 여자들도 패션과 스타일을 부르짖던 2000년대의 그 감성. 굳이 명명하자면 섹스앤더시티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대표되던 그 시절 그 분위기가 이 드라마에도 그대로 녹아있었다. 92년생이지만 사춘기 시절 또래의 아이돌 문화보다는 어른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 시절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선지 지금도 어글리슈즈보다는 뾰족한 하이힐이 더 예뻐 보이고, 배기 팬츠보다는 타이트하게 몸에 붙는 스키니진과 원피스가 예뻐 보인다.
그 시절에 페미니즘이란, 풀메이크업을 하고 타이트한 옷에 브래지어만 생략하는 '패션으로서의 노브라'에 대해 잡지 기사를 쓸 때나 쓰이는 액세서리 정도였다. 외모지상주의에 봉사한다고 해서 도덕적 부채를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 시절에는 외모지상주의가 곧 도덕이었다. 파파라치가 큰 유행이라 지구 반대편 헐리웃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인터넷 뉴스 메인을 장식했고, '잇걸'이니 '잇백'이니 하는 괴상한 용어를 들으면 여자들은 그게 누군지, 어떤 가방인지 다 알았다. 서점가에도 실용서, 에세이, 인문교양, 자기계발 할 것 없이 패션과 스타일, 꾸밈에 대한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요즘 사람들이 집 꾸미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명품백이니 구두 따위에 대한 관심이 과열돼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실례지만, 그 시절의 여자들은 뭐랄까, 공부를 한다거나 책을 읽는 등의 자기계발 행위를 할 때도 성장을 위해 한다기 보다는 매력적인 여자가 되기 위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10대였던 나는 그러한 2000년대의 분위기에 절반 정도는 매혹되었고, 절반 정도는 회의감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분명히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다.
<위기의 주부들> 시즌 1을 보며 그 시절의 분위기에 마음 속 깊이 무언가 울컥 하며 그리움이 터져나왔을 때,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뚜렷한 해상도의 화면으로 지난 시절이 그대로 재생되니 약간 소름이 끼쳤다. <패왕별희>나 <레옹>을 보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기분이었다. 그래도 90년대까지는 과거가 과거 다운데, 2000년대부터는 느낌이 다르다. 과거의 추억들이 화면이 끊기는 흑백영화나 글자가 흐릿해진 편지를 벗어난지는 너무나 오래되었는데 나는 그걸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이제 과거는 더욱 선명하고 풍부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과거의 해상도는 이제 점점 높아지겠지. 달콤하면서도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