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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사비맛 찹쌀떡 Sep 05. 2023

30대, 친구는 있지만 어쩌면 외로운 나이

황선우 x 김혼비 작가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를 읽고 나서


나에겐 아주 소박한 판타지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절친과 한 동네에 사는 것.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비슷한 리듬을 보인다. 예를 들어 내 하루에 비어있는 시간은 그(그녀)에게도 비어있다. 우리는 취미도 공유하고 취향의 결도 같이 한다. 새로운 기획전이 열리는 미술관에 같이 가지만, 별 대화 없이 관람을 마친다.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순간이니 굳이 방해하지 않는 암묵적인 규칙을 서로 존중한다. 퇴근 후 노을이 유난히 이쁜 날, 왠지 술 한잔이 고파 호출하면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하필 약속이나 계획이 없어 술동무가 되어 줄 수 있다. 운동도, 독서도, 여행도 그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 이런 판타지는 절친과 한 동네에 살 때 더욱 간편해진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 나 혼자 살기도 벅찬 와중에 가능성이 일절 없는 시나리오 같다. 역시 판타지는 판타지다. 심지어 소박하지도 않은.


이래 저래 얕은 사회적 관계망이 여러 겹 있던 20대, 무슨 관계인지 정의 내리기 어려운 사람들 속에서도 어울릴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던 20대에는 죽마고우에 대한 열망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30대를 살면서 살아남은 관계들, 몇 안 되는 오랜 고향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게 되면서 ‘어른의 외로움’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결혼하고 멀리 이사를 가기도 했고, 남편과 시댁과 아이들을 위해 쓰이는 시간도 빠듯해 보였다. 한 달에 겨우 4번 있는 주말에서 하루를 내어달라 말하기 눈치가 보인달까. 나도 고민이 있다고, 하고 싶은 것이 여전히 많다고 말하면 실없는 이야기로 생각하진 않을까, 괜한 염려도 당연히 되었다. ‘그래도 너는 너를 위해 시간을 다 쓸 수 있잖아. 복에 겨운 줄 알아’ 어쩌면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벌써 기가 죽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공감받지 못한다는 믿음이 더욱 강해지기 전 다행히 한 동료를 만났다.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고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대화에서 우리는 통했다.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찾으려 했다. 삶에 변화를 가져오길 원했고, 함께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그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거웠고, 함께 할 수 있을 많은 것을 상상하며 설레었다.



황선우 작가와 김혼비 작가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완성한 책을 읽었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치명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책. 타인으로 만난 성인 두 명이 이토록 ‘절친’의 향기를 담아낼 수 있구나. 내가 갖고 있는 환상처럼 같은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일상의 리듬을 공유하지도 않지만, 이 둘은 한 달에 한 번 쓰는 편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생생한 감정이 전달되었고 넉넉한 공감과 위로가 돌아왔다. 나의 외로움으로 시작한 부러움이 고요히 부유했다.


친구의 형편 - 가족과 아이들 - 도 있지만 내 편인 친구가 그 자리에 있구나.

친구들에게 무려 (카톡이 아닌!) 전화를 걸어 용건이 없는 일상을 나누는 통화가 가능하구나.



감정과 미래를 공유할 수 있다 여겼던 그 동료와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떠한 사연으로 연이 끊어졌다. 죽마고우 판타지를 버리지 못한 나는 다시 외롭다. 그러나 어쨌든 현실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지 않나. 판타지 세계에서 빠져나와 공감해 줄 사람이 없다고 믿어버리는 내 마음을 흘려보내야겠다. 황선우, 김혼비 언니(라고 불러봅니다.. 멋있으면 언니예요)의 글에 깔깔거리며 웃다가 내 외로움도 잊을 수 있으니까. 언니들의 삶에서 옅은 공감의 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무려 친필 사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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