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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곡기를 끊다, 단식 1

운동으로 만들어졌던 탄탄한 근육들이 퇴화되어 갔다.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 것이라도 이렇게 사라져갔다. 그래도 남아 있는 근육들을 보고 친구들은  "살이 좀 빠지긴 했지만 여자가 근육이 이렇게 많은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근육을 빼고 마른 몸을 가지려면 안먹는 수밖에는 없다고 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다이어트 고민을 하는 나에게 어깨가 넓기 때문에 덩치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여전히 그 때의 나는 친구들의 말이 법이고, 친구들이 다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학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갑자기 개학의 공포가 다가왔다.  개학 첫날의 학교는 새 학기를 화사하게 시작하려는 대학생들의 노력이 발산하는 날이다. 친구들은 너도나도 화사한 옷을 입고 새학기를 준비한다. 알록달록한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을 발견하면 "어머~ 잘지냈어? 예뻐졌다." 또는 "살 빠졌다.", "피부 좋아졌다."와 같은 의례적인 인사를 한다.  참 짧은 순간이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순간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힘든 순간이다. 내 모든 방학을 평가받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학 동안 어학연수를 다녀왔어.", "방학 동안 인턴을 했어."와 같이 꼭 무언가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만약 이도저도 아니라면 예뻐지기라도 해야했다. 약 2개월 반의 시간동안 많은 친구들이 성형을 했고 살을 많이 빼오기도 했다. 뭔가가 변해있어야 했다. 친구들은 어디선가 보던 이미지로 변해왔다. 드라마 속에서 보던 직장인의 모습을 닮아갔고 예능 프로에서 보던 특정 연예인의 눈과 비슷해져 오기도 했다. 개학은 그래서 부담이었다. 뭔가가 변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방학을 책읽기와 영어 공부, 여행 정도로 보낸 나는 더더욱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단식을 시작했다. 계획은 21일이었다. 21일만에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정보원은 인터넷이었다.  결심 후 당장 인터넷에서 단식이라고 검색했다.  포털사이트 단식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입되어 있었다. 처음 운영자가 단식 카페를 만들었을 때 분명 이렇게 다이어트 목적은 아니었을 테지만 많은 사람들의 단식일기는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피부나 호흡기 질환 등 단식을 통해서 고칠 수 있다는 많은 질병들을 간간히 보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단식의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경고 문구로 단식을 통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분명히 써있었다. 사실 말이 좋아 단식이지 그게 거식증을 원하는 사람들과 다른게 뭔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당시에 내가 생각한 단식은 분명 거식증과 달랐다. 단식은 건강을 위한 행위라는 정당성이 있었다. 이미 내 몸에 지방이 있는 것을 질병으로 취급하고 나는 치유를 하고 있는 거라고 최면을 걸었다.


단식을 하기 전 준비물인 마그밀과 회충약을 샀다. 마그밀은 몸안의 잔여 노폐물을 빼내주고 제산제 역할을 한다. 나는 누구보다 의지가 강하다고 최면을 걸었다. 

첫 날은 극심한 배고픔을 겪었다. 그만둘까 몇번이나 생각했지만 이렇게 평생을 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첫날은 실제로 몸이 힘든 것보다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더 힘들었다.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 길가에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몸을 염려했다. 단식을 21일 해도 괜찮았고 지금 역시 건강하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둘째날이 되었다. 깨어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늦게 일어났다. 평소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읽고 학교로 갔겠지만 내 몸에 힘이 없을 거란 편견이 날 지배했다. 나는 최대한 누워있으려고 했다. 그러다 이러면 근육이 빠진다는 어떤이의 글을 보고 줄넘기를 가지고 나가 운동을 했다. 평소라면 신나게 돌렸을 줄을 그날따라 넘기지 않으면 죽고야 마는 줄을 돌리는 것처럼 억지로 무겁게 돌렸다. 집에 돌아와 다시 누웠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써내려가자 금새 공책 한장을 채웠다. 이런 행동이 날 더 고통스럽게 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종이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또 잠이 들었다. 집에는 평소에 즐겨먹던 과자와 과일들이 있었는데 난 저걸 먹을지 말지를 고민했다.  나는 그 것들을모두 쓰레기통에 넣었다. 몇분 후 나는 쓰레기통에서 과자를 꺼내 씹다가 뱉기를 반복했다. 그 행동은 끊임이 없었다. 이 행동은 철저히 학습된 것이었다. 

처음 이 행동을 본 건 식이장애를 겪고 있는 여자를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 여자는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먹은 뒤 옆에 쓰레기통을 놔두고 뱉고 먹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여자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먹든지 아예 먹지 말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게 이성적인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식이장애를 직접 겪게 될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채 말이다. 


식이장애는 tv속 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있었다. 친구들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찔 것 같아서 일부러 손가락을 넣어 토한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리고 그게 살이 찌는 것보다 더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차 무뎌지고 나도 살을 빼기 위해서 음식을 토하고, 목구멍을 넘기기 전에 뱉곤 했다.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넘기지 않고 바로 뱉는 것은 더욱 힘들다. 목구멍에서는 음식을 넘기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했다. 마치 식도에 손이 있는 것 같았다. 계속 음식을 끌어 당겼다.  혹자는 음식의 맛을 느끼는 게 혀와 코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먹는 것의 완성은 음식물을 넘김에서 끝난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목구멍으로 느껴 위장에 안착하는 순간 음식을 진정으로 먹은 것이 되는 거다. 목구멍을 넘기지 않고 혀에서 끝나기를 몇번이나 반복하자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나는 나를 이겨내야만 한다는 나의 명령을 다시 불러내기 위해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의 음식을 다 꺼내 변기 속에 넣고 버렸다. 눈물이 났다. 나는 음식과의 투쟁을 넘어 나와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음식 하나 참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책을 펼쳤지만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음식에 관련된 단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책을 덮고 TV를 봤다. TV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각종 맛집 프로그램, 음식 관련 홈쇼핑도 많았다. 그와 비례해 운동, 몸매 관리에 대한 프로그램도 많았다.


나는 맛있는 걸 많이 먹으면서도 몸매가 좋길 원할 것이다. 마치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이 좋길 바란다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폐가 건강하길 바란다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한 개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 먹는 것의 기회 비용은 마른 몸, 마른 몸의 기회 비용은 먹는 것. 


친구가 내가 단식한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는 노발대발 하며 당장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나의 자취방으로 오셨다. 내가 방에 누워있는 동안 식탁에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친구와 엄마는 먹기를 강요했다. 친구는 이걸 먹지 않으면 나와 놀지 않겠다고 말했다. 곧이어 엄마가 나타나 밥을 먹으라고 했다. 엄마는 이런식으로 행동하는 나때문에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치킨과 밥을 먹는 척을 하려고 했다. 먹으면서 안된다는 생각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나를 먹게 한 엄마와 친구를 원망하며 먹었다. 이렇게 억지로 음식을 먹게하는 친구라면 너는 필요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를 슬프게 하고 싶진 않았다.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배가 너무 불러서 숨이 못 쉴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친구와 엄마는 계속 먹으라고 했다. 음식은 계속 계속 내 앞에 쌓여갔다. 나는 안된다고 소리질렀지만 나는 계속 먹게 되었고 결국은 나는 단식을 실패했다며 울었다. 


꿈이었다. 나는 정말 울고 있었다.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던 건 배가 정말 고팠다는 거다. 위장이 텅텅 비어있다는 게 느껴졌다. 시간은 5시였다. 늦게 잠들었는데도 잠이 깼다. 사람들의 후기에서 종종 누가 강제로 먹여 화를 냈다거나 그 순간은 즐거웠다는 글들을 종종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내가 이런 꿈을 꾸다니 사람들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꿈까지 꾼 내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단식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이 완전히 깬 상태가 되자 다리가 아프다는 것이 느껴졌다.  


근육통이었다. 지구를 한바퀴 정도 걸은 듯이 온 다리가 아팠다. 이게 단식을 하면 흔히들 나타난다고 하는 명현현상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제 줄넘기를 무리하게 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자려고 했지만 다리가 아파서 잠도 오지 않았다. 그 때부터 컴퓨터를 하고 과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만나자는 문자가 와있었지만 몸이 안좋아서 못만난다고 거절했다. 다이어트 때문에 친구들에게 못만난다고 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했던 약속들도 어기기 일쑤였다. 친구들과 만나 무엇을 먹는 다는게 부담이었다. 


나는 체중을 쟀고 삼일 째에는 2.5kg이 빠져있었다. 사람들이 삼일동안은 몸안의 수분만 빠진다고 했다. 비록 이게 체수분이라도 체중이 이틀만에 이렇게나 많이 빠진다니 기뻤다. 집에만 있는 건 답답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혹시 굶어서 냄새가 날까봐 음식을 먹을 때보다 더 깨끗이 양치를 했다. 배가 쏙 들어가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집을 나서자 약간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평소처럼 빠른 걸음으로 가면 7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런데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걸어내려 와야 했다. 한 걸음 옮기는 게 힘들었다. 한 걸음 걷고 쉬고 다시 한 걸음 걷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빵집 앞의 벤치에 주저 앉았다. 빵냄새가 풍겨왔다. 속은 그렇게 울렁거리면서도 빵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다시 발걸음을 뗐다. 평소에 할머니들이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천천히 걸을 때 저렇게나 힘들까 했었다. 만약 지금 상태를 친구들에게 설명하라면 나는 '할머니가 된 느낌'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걸으면서 제발 앉을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옷집 앞에 벤치가 하나 있었다. 더러워 보였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빨리 지나다니느라 저런 곳에 벤치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지금은 벤치를 찾고 있는 나였다. 여기에 벤치를 설치해 둔 사람에게 감사하며 주저앉았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먹은 것도 없는데 구역질이 났고 아침에 먹은 물들을 토해냈다. 좀 안정이 되자 다시 걸었다. 물론 집에 돌아갈까도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돌아가기에는 온 게 더 많아 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만약 쓰러지더라도 학교에서 쓰러져야 될 것 같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쓰러져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학교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평소에 10분 걸리던 거리를 30분이 걸려서 도착했다. 소파에 기대 있다가 단식에 관련 된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물론 다이어트를 위해서 단식을 하라는 책은 없었다. 단식의 치유 효과를 주장한 많은 책들과 단식은 아무런 효과도 없고 일시적으로만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는 의견을 써놓은 논문이 대립을 이루고 있다.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었다. 난 살빼려고 이 무리한 행동을 하는 거였고 지금 내가 관심있는 건 살이 얼마나 빠지고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지방을 제거하냐였다. 또한 지금 내 상태로는 이게 건강에 좋을리가 없었다. 나는 계속 어지러웠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상태가 좀 나아지자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기는 훨씬 쉬었다. 난 집에 가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사일 째에는 별로 힘들지 않고 집에서 보냈다. 전날 학교가다 힘들었던 기억에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사람들의 후기를 읽었다. 더이상 배도 고프지 않았고 어지럽지도 않았다. 사람들도 대부분 삼일 째의 고비를 견디고 나면 좀 나아지고 칠일 째쯤 다시 고비가 올거라고 했고 그때부터 지방이 타기 시작 할 거라는 희망을 주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거나 인터넷을 했다. 이정도 상태라면 21일의 단식은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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