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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생과 사의 사이에서 - 나, 죽긴 싫구나. 그러면 살아

인도의 어딜가도 한국과 크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인도도 마른 몸이 트렌드였다. 사람들이 더 쉽게 마르려고 하니 산업들은 그에 맞추어 발전한다. 어딜가나 결국 내가 마르지 않고는 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음식에 대한 갈구와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기쁨과 상관없이 사회가 날 먹지 못하게 하고 지방을 덜 축적 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울했고 날씨는 더웠다. 


모든 게 다를 것만 같았던 타국에 왔지만, 사실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인도를 보며 새삼 여기에 왜 왔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희망에 대한 일말의 실마리도 없이 가면 한국에서 날 살게 하는 원동력은 뭐가 될까 싶었다. 

나는 나이가 든다고 왜 사는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왜 사는지 물었고, 친구들은 저마다의 즐거움과 목표가 있었다. 나를 제외하곤 꽤 살만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친구들이 기쁨을 느끼는 것들 – 쇼핑, 남자친구, 맛있는 음식, 가족 등-에서 의미를 느끼기가 힘들었다. 나는 나보다 인생을 더 오래 살아온 부모님에게 삶의 원동력을 물었다. 나보다 더 오랜 산 사람들은 좀 더 삶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엄마, 아빠는 망설임없이 말했다. 

"너 때문에 살지" 

“그럼 내가 태어나기 전엔 왜 살았어요?”

“그런 질문이 어딨니? 태어났으니까 산거지.”


나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부모님보다 한 세대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는 왜 사셨어요? 전 제가 왜 사는 지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요.


-아가야,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뿐이야. 사람은 그냥 살아가는 거야. 살다보면 거기서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어.


역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삶은 이런 식으론 행복할 수 없었다.


나는 함피에 온 이후로 아침, 저녁으로 일출과 일몰을 봤다.  총 26 번을 봤다. 어느 날은 구름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빨갛게 올라오기도 했다. 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1월 1일에도 보지 않는 일출을 13번이나 본 기분은 '별거 없음'이었다. 뜨는 태양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매일 매일이 태양을 통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바뀌거나 특별한 건 없었다. 태양도 저 지겨운 일을 반복하는데 나도 그냥 살면 안되나? 지겹지만 계속 다이어트 하고, 계속 일하고, 계속 공부하면서 그렇게 지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다 보면 언젠간 이 삶이 끝나지 않을까? 이 때까지 역사 속의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태양과 같은 삶은 생각만 해도 우울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태양을 신으로 모시고 감사하기라도 했지만 이젠 아무도 태양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는다. 다들 태양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말한다. 나는 태양처럼 사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건지 생각했고 그 상상가능한 지루함에 우울해졌다. 

우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함피는 서양인들이 많이 오는 관광도시라 물가가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비싼 편이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돈 많은 서양인 관광객들과는 다르게 가난했다. 많은 사람들이 건축 유적을 집으로 삼았고 비포장도로는 화장실이었다. 문화재는 하늘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아침이 되면 길 가에서 엉덩이를 드러내고 대변을 보고 있는 개와 소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이들에게 문화재 훼손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살아야했으므로.

나는 오토바이를 빌려 함피의 도로를 달렸다. 뜨거운 태양이 날 괴롭혔고 나는 태양을 등지고 끝없이 오토바이를 몰았다. 얼굴에 닿는 바람은 따뜻했지만 등에 내리 쬐는 햇빛은 뜨거웠다. 빠르게 달리니 나를 붙잡는 거지도 없었고 치근덕대는 남자도 빨리 지나칠 수 있었다. 사람들을 지나고 논과 밭을 지나자 표지판이 나왔다. 우회전을 하면 호수가 나온다는 표지판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물이 있는 곳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인도에서 깨끗하고 풍족한 양의 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수영을 하고 있었다. 호수는 댐에 의해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최대한 없는 곳을 찾다 남자 한 명만이 놀고 있는 곳으로 들어 가기로 했다. 물에 들어가서 보니 생각만큼 깨끗한 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발만 담갔다가 물이 꽤 시원해서 배가 잠길 정도의 위치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물에 들어간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게 없었다. 난 그냥 서있을 뿐이었다. 이왕 물에 들어 왔으니 그냥 수영을 하기로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에서 힘차게 팔을 휘저었다. 그러다 더이상 힘이 없어서 팔 휘졌기를 멈추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려고 땅을 딛고 발로 서려고 했다. 그런데 별로 깊어 보이지 않았던 호수는 끝을 알 수가 없었다. 발이 닿지 않았다. 나는 당황해서 다시 수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끝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다시 발을 차고 팔을 돌렸지만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점점 공포가 밀려왔고 힘은 풀려갔다. 허우적대며 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약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길래 필사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헤엄쳤다. 팔과 다리를 돌리고 찼다.  어느 순간 딱딱한 게 손 끝에 만져졌다. 나는 가까스로 돌을 잡고 육지로 왔다. 그리고 살짝 정신을 잃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떴고 두통이 몰려왔다. 물을 많이 마셔서인지 배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일정한 시간동안 분명 나는 죽을 뻔 하다 살아났는데 그 공간은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수영 하고 있던 한 사람의 남자도 그대로였다. 그 남자는 뒤돌아서 놀고 있어서 날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내가 허우적거리는 게 혼자 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날 왜 구해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그 남자뿐만 아니라 파란 하늘도 뜨거운 태양도 일렁이는 물도 똑같았다. 단지 나만 어떤 순간을 지나온 것이다. 그 남자는 물에서 나와 내 옆에 앉았다. 


- 난 알빈드라고 해요. 야후에서 일하고 있어요.


- 전 한국에서 왔고 학생이에요. 저 금방 물에 빠져서 죽을 뻔 했는데 보셨어요?


- 아, 그랬어요? 못봤는데. 페이스북 해요? 페이스북 아이디 교환할래요?


그는 내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건 상관 없는 것 같았다. 살았으니까.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지만 살아 있어서 이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야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커서 뭘 하고 싶은지 등을 묻고는 이제 밥을 먹으러 가야겠다며 일어섰다.

그 사람이 가고 난 후에도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생각하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웃겼다. 일렁이는 물을 바라보다 어두워지는 것 같아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나면서 웃음이 났다. 아까는 그렇게 싫었던 태양을 내가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삶이 고통이고 희망 없는 지옥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죽기는 싫었나보다. 나는 살고 싶었다.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어서 이렇게 고민하는 거였구나. 그렇다면 살아야지. 악착같이 살아야지.

오토바이를 돌려주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식당과 함께 운영되는 곳이었다. 밤이면 거기서 세계 명화들을 보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사람들과 게임을 했다. 나는 소파에 기대 앉았다. 다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나에게 메뉴판을 가져다 주던 알빈드는 축축히 젖은 상태로 울고 있는 날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물에 빠졌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민트차를 가져다 주었다. 잠시 후 주인이 다가왔다. 그는 낮이고 밤이고 손님들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 사람이었다.


- 물에 빠졌다며? 그런데 넌 살았네. 그럼 된거야.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야. 그런 경험을 통해서 넌 큰 어른이 되어가는 거야. 조금만 더 울고 이제 그 경험에 대해 웃을 준비를 해. 이 따뜻한 민트차를 마시고 말이야.


그 감동적인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눈물이 났다. 민트차는 추운 나의 몸을 녹여주었다. 아직도 그 민트향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말에 나는 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어졌다. 물은 나를 죽을 뻔하게 만든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살게 해준 공간이었다. 이런 저런 경험 중의 하나로. 난 단지 호수를 보면 웃을 뿐이다.

민트차를 마시고 하누만 사원에 일몰을 보러 갔다. 함피에서 본 마지막 태양이었다. 인간이 태양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거라도 분명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달랐다. 내가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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