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3
문화자본을 획득하여 사회적 상승을 이루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제아무리 금욕적인 노력으로 교양이나 예의범절을 익혀봤자, ‘노력해서 익혔다’는 점에서 그 문화자본에는 처음부터 ‘2류’라는 꼬리표가 붙고 만다.
이는 부조리하리만치 굴욕적인 경험이다.
그런 굴욕을 계속 맛봐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 그 불만을 해소할까. 이를 상상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그들은 문화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사람, 혹은 노력했지만 자기네만큼은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깔봄’으로써 그 굴욕을 해소하려 할 것이다.
‘타고난 귀족’은 ‘서민’을 깔보지 않는다(애초에 안중에 없으니까). ... (반면) '벼락 문화귀족'은 반드시 부지런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 <거리의 현대 사상>, 우치다 타츠루, 39~40p
'타고난 문화적 귀족'의 우위성은 그것을 '질시하는' 사람이 끼어듦으로써 비로소 성립한다.
"이 와인은 저거보다 맛있네" "정말이네"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문화가 되지 않는다.
"오오, 당신은 같은 샤토에서 난 1989년산과 1990년산의 맛 차이를 식별할 수 있나 보군요. 과연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저것보다 이것이 맛있다'라고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문화자본으로 인정된다. - 42p
문화자본으로의 접근은 '문화를 자본으로 이용하려 하는 발상 자체'를 회의하게 만든다. 반드시 그리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애초에 '문화'라고 부를 가치가 없는 물건이다.
내가 '일본은 문화자본의 편재로 인해 계층화될 것이다'라고 알려드리는 이유는, 이 말에 놀란 사람들이 문화자본을 획득하려고 앞다투어 몰려가면(내가 주장하는 '1억총 프티 문화자본가' 구상이 이런 것이다) 결과적으로 계층사회의 출현을 뒤로 미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전략이라서 죄송하다.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전략이겠지만 이 세상이 그런 곳이다. - 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