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공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뇌는 자신의 승리를 자화자찬하기 위해 성공한 세상의 오류를 끌어들인다. 운이 좋아 성공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일부 사람이 소득불평등에 무관심한 이유도 공평한 세상의 오류로 설명할 수 있다. 뇌는 부자들이 그럴 만한 행동을 했으니 부자가 됐을 것이고, 누구든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나 유명한 사람처럼 살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공평한 세상이라는 사고방식을 깨뜨리면 세상의 불행과 불평등을 고쳐야 할 책임이 그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할 존재에게 돌아간다. 바로 우리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들] 중에서
게다가 노후 빈곤은 고스란히 자식에게 전가된다. 세상엔 천하의 불효자도 많지만 효자도 많다. 자식이 부모의 생활비를 대기 시작하는 순간 자식의 자산 증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게 몇 푼 안 될 때야 상관없지만 액수가 커지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거꾸로 즐기는 1% 금리] 중에서
나의 선친은 무능했다. 한마디로 사회 능력이 없었다. 쉽게 말해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집 밖에서는 순한 양이었지만, 집안에서는 늑대요 승냥이 기도 했다. 밥상을 뒤집어엎었고, 어머니를 때렸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그나마 우리 식구가 그럭저락 살아가고 인간 노릇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음씨 좋은 사업가이신 작은 아버지 덕이 컸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들]을 보니 그런 성장기 환경이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나의 인격의 부족한 면을 본다. 낯가림 같은 부족한 사회성, 소심함, 움추러듦. 선입견을 갖고 봐서 그런가 어린 시절 나의 사진에는 그늘이 보인다. 그나마 나이 들어 많이 나아진 베경에는 신앙의 힘과 가족의 사랑이 있다.
나의 분위기, 인격과 성격은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회복하기 힘든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나의 주머니.
경제 능력이 전무했던 가장의 책임은 내 몫이었다. 내가 버는 돈의 상당한 금액은 연로한 어머니와 장애인 여동생을 위해 생활비로 충당됐고, 나는 또래에 비해 가난한 중년의 삶을 살고 있다. 거기에는 내 책임도 없다고 하지 못하겠는 게, 돌이켜 보면 나는 패배한 세상이 오류 속에 살았었다. 역기능의 가정환경 속에 갇혀 나의 자아는 나날이 작아져갔다. 그랬던 나의 내면에 희망이 생겼다. 청년 때 갖게 된 신앙과 중년에 알게 된 자본주의와 마케팅 공부 덕분이었다. 지금은 얼마든지 나의 삶을 변화시킬 도구가 많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걸 알기 전까지는 비교의식에 한 없이 초라한 나만 보였다. 특히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 많다. 삼십 대에 부동산 호황기에 눈썰미 있게 아파트를 사서 키워나갔다. 그렇게 부동산 덕분에 박봉에도 아파트 한 채, 갭 투자로 또 한 채. 최근에는 갖고 있는 빌라가 재개발 진행 중에 있다. 중년에 아파트 세 채를 갖고 있는 사람에 비해 나는 한 없이 초라하고 부족해 보였다. 그동안 나는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몇 개의 단계를 거쳐 지금은 마음에 평안을 찾았다.
우선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금의 세상은 악화를 양화로 구축할 수 있는 시대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받아들이자 열등감과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워졌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건 그가 갖고 있는 성공한 세상의 오류다. 성공한 세상의 오류 속에 도취되어 살면,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 착각한다.
동료 직장에 비해 그는 가진 게 있다. 잠정적으로 아파트 세 채 해서 약 15억 안팎? 대구공항 예정지와 가까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그리고 중형 SUV, 현찰 1억 원 정도?
그는 자신의 소유가 자신이 능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거기에는 부동산 상승기라는 운도 작용했을 수 있고, 나와 달리 넉넉했던 양가 부모의 경제력도 작용했을 텐데.
성공한 세상의 오류에는 부동산이라는 자산이 갖고 있는 생각의 오류도 있다.
위의 사진은 [심리계좌}라는 책 목차의 일부다. 이 책을 보면, 부동산의 가치는 어찌 보면 <장부상의 가치> 일뿐이다. 쉽게 말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내가 강남에 20억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지금 당장 현금화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 돈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종합부동산세가 올라 내지 못해 쩔쩔매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 마리화나를 맛본 사람들은 확증편향도 갖고 있다. 부동산은 오를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과거 20년만 봐도 장기간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시기도 꽤 있었다. 만일 자신이나 부모가 부동산 하락기를 경험했다면 어땠을까. 참고로 직원 중 한 명은 아버지가 주식으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는 바람에 동학 개미 열풍에도 주식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성공한 세상의 오류는 자신의 성공을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만 생각한다. 거기에 나의 배경이나 세상의 구조, 혹은 운이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갖지 못한 사람은 게으르고 무능하게만 보인다. 신을 바꿔 신으면 얼마든지 지금 자신의 처지가 나 같은 처지로 바뀔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 텐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에, 나는 다만 LATE BLOOMER를 꿈꾸며 살아갈 뿐이다. 자본주의와 마케팅을 공부하며, SNS에 나의 콘텐츠를 쌓아가고 있다. 아들에게도 복학하지 말고 내가 공부하고 가치를 깨달은 자본주의와 마케팅 공부를 권했다. 그런 그의 눈에는 지방 전문대에서 착실히 전문기술을 배우는 자기 자식에 비해 비전 없는 지방 국립대 일문과조차 복학 안 한다는 내 아들이 한심하게 보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