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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래 Jan 01. 2023

엄마손 파이

손은 신비롭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예민(?)한 편이었다. 그런 예민함 때문인지 무얼 하든 신중했다. 나의 신중함이 가장 크게 발휘되는 순간은 이름을 지을 때였다.


조별 과제의 조 이름을 지어보자. 우리 조의 목표를 연상시키면서도, 조원들의 특징을 열외 없이 포함해야 한다. 다른 팀과 차별화되는 요소도 필요하고, 적절한 유머가 담겨 있어 피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이름이 무엇일까 따지다 보면 적절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번뜩이는 작명 센스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내 머릿속의 후보를 스스로 탈락시켜 버린다. 떠오르는 걸 쉽게 말하지 못하니, 조원들의 생각을 덧붙일 기회도 놓쳐버린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름 짓기를 유독 어려워했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과자 이름이 있다. 바로 '엄마손 파이'.


마트에서 '엄마손 파이'라는 과자를 처음 보았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내 까다로운 '작명 원칙'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름은 아니었다. 다만 '초코파이', '새우깡', '홈런볼'의 과자 이름 세계에서 보기 드문 감성적이고 도전적인 이름이라 그것 자체로 마음에 들었다.


'엄마손' 이라는 표현은 '손맛'과 같은 단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엄마의 손이 재료가 되는 과자가 떠올라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은 배고픈 아이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고 싶은 정성이 담긴 파이를 떠올린다. 엄마라는 단어가 쓰여 조금은 진부하지만, 어떻든 '엄마손 파이'는 뇌리에 남았다.


'엄마손 파이'를 기획하신 분은 '여러 겹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과자라는 이미지를 엄마손이라는 단어를 통해 전달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을 기획안에 담지 않았을까? 나는 이름 짓기 초보이지만, '엄마손 파이' 기획자분께 이름 참 잘 지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판도라의 다른 생명체와 큐를 연결하여 교감한다. 결속되면 정신적으로 연결되고, 서로의 물리적 감각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나비족처럼 샤헤일루(Tsaheylu) 할 수는 없어도, 정성스러운 손길로 밀가루 반죽에 사랑을 담을 수 있다고는 믿는다.


손은 이렇게 중요하다.



우리는 손을 통해 바깥의 우주와 교류한다.




외계인 E.T.와 검지를 맞닿아 이별을 위로하고,

인간은 양손을 맞잡은 채 신께 기도하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에 봉인된 음악의 신과 건반을 통해 대화하며,

먼 길을 찾아온 친구의 손을 양손으로 포개 반가움을 전달한다.


손이 신비로워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손으로만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목에서 입을 거쳐 언어의 형식으로 귀에 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바타>의 나비족처럼 서로의 마음을 알기 위해 손을 잡아야 했다면 어땠을까? 언어가 달라도, 말주변이 없어도, 표현이 서툴러도 손을 맞잡아 생각을 알 수 있었다면 오해도 거짓도 꾸밈도 지금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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