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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코 Apr 10. 2022

2002-2022

 눈에는 숨길 수 없는 투명함이 들어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빛나는 우리 엄마의 눈에는 세상의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서려있다. 누군가의 눈을 마주치고 얘기하는 시간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요즘, 빛나는 눈을 볼 기회가 많이 없다. 하지만 엄마의 눈에서는 빛이 난다. 엄마의 그런 서린 눈을 마주치다 그 속에 홀로 떨어지는 눈을 보았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눈. 엄마는 기억하고 있을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들은 깊이 박히거나 사라져 버리고 만다. 눈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고, 떨어진 눈들은 사라지지 않고 차곡히 다시 위로 쌓였다. 사라질 것이면 애초에 쌓이지나 말지 야속하게도 아름답기 까지나 한다. 모든 것이 불안했던 나의 열두 살. 그렇게나 추운 것을 겪어보지 못했는데, 그날은 유독 추웠다. 기찻길 옆에 선 엄마는 폐결핵에 걸린 3살도 채 되지 않은 동생을 꼬옥 안고 있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지켜야 했다. 낯선 타지에서 엄마는 일을 구했고, 이른 아침 출근길을 나섰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일을 했다. 늦은 저녁, 캄캄해진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양의 눈을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신기함에 눈을 호주머니에 돌돌 말아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호주머니에 넣은 눈이 사라질까 손등에 고스란히 올려 눈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단단하게 뭉친 눈 뭉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이내 손등만 빨개질 뿐이었다. 손이 따끔따끔 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손으로 하던 눈 장난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두발로 총총거리며 쌓인 눈에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가족의 흔들린 생활은 엄마의 몫이었고, 엄마는 꿋꿋했다. 나 혼자 동생을 보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 동생을 유모차에 싣고 오르던 오르막길에서 유모차가 무겁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는 쉽게 끌고 가던 그 유모차가 왜 내 말은 잘 듣지 않는 건지. 동생은 엄마가 안아주면 울지 않는데, 내가 안아주면 왜 우는 건지. 부산에서 본 동생은 예쁘기만 했던 동생인데, 낯선 타지인 원주에서 엄마와 우리가 지냈던 그 작은 방에서 보는 동생은 왜 예쁘지 않은 건지. 엄마는 꿋꿋했지만, 12살의 나의 시선은 불안정했다.      


 기차는 초록 신호와 함께 늘 있던 자리에 약속이나 한 듯 엄마 앞으로 달려왔다. 기차가 몰고 온 바람은 코끝까지 빨갛게 만들었다. 눈은 더 세차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바람 덕분에 흩어질 수밖에 없던 눈들은 기차 위에, 길 위에, 엄마 머리카락 위에, 각기 앉아서는 소소한 무게를 더 해갔다. 나의 시선을 빼앗는 것들이 많은 기찻길에는 온통 흥미로운 것들뿐이었다. 그것들을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의 손등이 빨개지는 동안 엄마 품에 안겨있던 동생은 할머니 품으로 옮겨졌다. 동생이 할머니와 함께 아빠를 만나러 가는 부산으로 가는 날이었다.           


‘뽀드득뽀드득’           


 할머니와 동생은 기차에 올랐고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 눈물은 한참이나 고여 있다 기차가 출발한 뒤 엄마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차곡히 쌓여 있는 눈 위에 툭 하고 떨어졌다. 엄마의 눈물은 사라지지 않고, 그렇게 눈과 함께 쌓였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못 본 척하기로 했다. 계속 발자국 만들기 놀이를 했다. 엄마는 한참이 지나서야 차가워 빨 개진 내 손을 잡았고, 엄마와 나는 그 기차역 눈길을 걸었다.     


 2018년. 올해로 서른한 살이 된 나는 눈이 올 때마다 이 날이 떠오르지 만, 굳이 그때의 궁금한 것들을 되묻지 않는다. 왜 우리가 그때는 굳이 아빠와 따로 떨어져 지내야 했는지. 아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엄마는 그때 왜 눈물 참고 있다 기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서야 흘린 건 지. “우리 딸은 고생 많이 하면서 자랐지.”라고 엄마가 한 번씩 얘기할 때면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눈이 유난히 많이 왔던 기찻길에서의 그날의 장면을 나는 잊을 수 없다. 12살의 나의 감정들은 시간이 흘러 고스란히 커져왔고, 눈덩이처럼 불어 가슴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

     

 벌써 2022년이다. 자욱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숨죽인 채 이 글을 썼던 때도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렸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터널 같던 우리 가족이 견뎌낸 시간들이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가듯 지나가고 있다. 올해 나는 서른다섯이 되었고, 칠흑 같은 터널을 지나고 나니 또 다른 인생의 여정들이 남아있다. 어른들은 이제 시작이라고들 나에게 말씀하시는데, 한 번씩 나는 섬뜩하다. 언제쯤 이렇게 고단하고 쉽지 않은 인생이 끝이 날까. 우울한 생각들을 많이 해온 나지만, 그래도 요즘은 살다 보니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느낀다. 많은 상황 속에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곁에 둔 것. 그리고 주저앉지 않고 느리게 걸어온 고집들이 나에게는 단단한 토양이 되었다. 어려운 것이 많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가족과 동료들, 친구들이 적지 않다. 단순히 나 혼자 포기하면 되는 철부지 시절이 어느 정도는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많고, 좋은 일들도 많다. 모든 이들의 인생에는 스토리가 있다. 우리 엄마 인생도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엄마를 만나 수다를 떨었다. 엄마의 눈을 보면서 그 험난한 세월 속에서 지켜온 순수함과 따뜻함이 존경스러웠다. 안정감이 느껴졌다. 나도 저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직 딸린 자식은 없지만, 세월이 흘러 흘러 할머니가 되어도 그런 따뜻함을 간직한 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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