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느슨 타임을 위하여

[열일곱 번째 진담]

by 소담


지난 2월은 무척 바쁜 달이었다. 보통의 내 일 년 스케줄 상으로는 가장 한가하여 가히 ‘보릿고개’를 지나는 정도의 달로 여겨져왔지만, 이상하게 여러 곳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날마다 일정을 쪼개가며 바쁘게 일하면 일할수록, 느슨해지는 시간이 간절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술 한 잔이 그리웠다는 얘기다.

신혼 때부터 결혼 8년 차에 이른 지금까지, 우리 부부에게는 일종의 ‘회식의 날’이 존재했다(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우린 그날을 '회식하는 날'로 부르고 있다). 일정에 따라서 바뀌기도 하지만 보통은 금요일 저녁. 이날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맥주와 소주 등등을 곁들이며 논다.

족발이며 곱창, 아귀찜, 회, 치킨 등등의 메뉴가 돌아가며 선정되고, 어느새 ‘이번 주 회식 때는 뭘 먹을까?’를 생각하며 월요일을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루틴이 되었다.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인 회식은 어떤 때에는 주2회, 심한 때에는 주3회로 늘어나곤 한다. 그럴 때면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동네 슈퍼를 피해 일부러 편의점에서 술을 산다. 동네 슈퍼에서 맨날 술만 사 가는 부부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서다. 아무튼 회식의 날이 늘어나면 서로 간에 ‘자중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결단코 회식을 거른 주는 없다.

직장에서 (아마도) 유대감 형성이나 단합을 위해 회식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회식의 날 또한 마찬가지다. 평소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던 일 얘기나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괜히 TV에 대고 농담을 빙자한 조롱을 날리기도 한다. 돈독한 정을 쌓아가는 시간이다.

한 잔 두 잔 더해가면서부터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감성에 젖는다. 이때 듣는 음악은 주로 옛날 음악. 술이 더해지면 음악이 더욱 가슴 깊이 들어온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내향인으로 바깥에서 에너지를 쏟고 집에 들어오면 꼼짝없이 충전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에너지의 그릇이 남들보다 작아서 금방 소진되고 만다. 그리하여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보낸 한 주의 끝에, 느슨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정에 맞추려고, 깜빡하지 않으려고, 무리 없이 일을 해내느라고, 바짝 곤두섰던 긴장을 풀고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들이켜는 것이다. 이만큼 행복을 주는 시간이 또 있을까 싶다.

‘이번 주에는 언제 회식을 할지’ ‘회식 때 무엇을 먹을지’를 신중하게 고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조금 웃기다. 하지만 그 작은 일이 우리에게 느슨한 행복을 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작가의 이전글인간의 목소리는 가끔 내 신경을 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