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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 HUH May 08. 2024

회사가 잘 맞다고 생각해 13년을 다녔습니다.

1.

지난주, 새 집으로의 이사를 잘 끝마쳤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창문을 최대치로 제쳐 환기를 시키곤

서울숲 산책 또는 7시10분 요가를 간다.


샤워 후 집까지 싸악 치운 후,

순도 100%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가운데 마음속에 특정 단어들이 떠오른다.


내가 과거 좋아했던 것,

그리고 내가 현재 좋아하는 것들.



2.

나는 내가 회사가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3년 동안 같은 회사를 출근하는 것이

내겐 그리 고역은 아니었다.


사람들과 부대껴 일을 하는 것이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았고,

일을 하며 좋은 사람까지 덤으로 얻는 것은

내 가슴을 꽉차게 하는 행복이었다.


그런 시간을 오래 보내서였을까.

2개월에 걸친 퇴사면담은 잘하고도

퇴사를 앞둔 마지막 3주는 무척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퇴사가 좋은 선택이 맞을지?

성질이 급한 탓에 섣불리 질러버린 건 아닐지?


스스로 그리고 이미 결정한 문제에

매달리고 매달렸다.


그 과정에 화도, 눈물도 났다.

그리고 나와 연관된 사람들이 아니꼽기도 했다.



3.

나의 퇴사일은 4/22(월)이었고,

그 전날인 4/21(일) 나는 답을 찾았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고 생각하지 말고


"그동안 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것과

일을 쉴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한 일“로 받아들이되


“이전 회사는 정말 더욱 발전하길,

그곳의 사람들은 더욱 행복해지길“

바라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마음을 먹고 진심으로 바라니

내 마음속 불안도 신기하리만큼 깨끗이 사라졌다.



4.

타인이 내게 실시간으로 주었던 일을 하려면

나의 신체와 정신은 모두 그 일에 사용되어야 했고,

대가는 월급이었다.


내 템포, 내 생각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주니어까지.

시니어로 접어들고 마지막 팀장 역할을 할 때는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는 듯,

브레이크 없이 비탈길을 내려가는 자전거를 타는 듯,

한껏 올라간 바이킹이 내려갈 때 느껴지는

장기가 밑으로 쑥 빠지는 듯 헐거운 기분이었다.


(오죽하면 퇴사 전달에는 나이 37살 먹고

바지에 생리를 묻히는 참사까지 일어났으나,

묻은 걸 알고도 처리할 힘이 없었다는 웃픈 얘기.)


당시엔

그 와중에도 정신줄을 잘 잡아야만 한다며

이 조차 나름의 묘미일 수 있다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매주말 백화점에 가,

얼굴이 벌게진 채로 물건을 사며 스트레스를 풀어댔고

뭐라도 하나 사지 못하면

마음속 들끓는 감정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예뻐서 반해서 구매한 나의 집에서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주말이 되면 여기저기 발발거리며 돌아다녔고

지쳐 잠 들어야 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면,

또 월요일 오전부터 비탈길을 내달렸었다.


5.

그런데 지금은 희한하게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이,

홀로 산책하며 스스로 대화하는 시간이,

아무것도 사지 않고

오히려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비워내는 행동이

날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


이젠 생각한다.


해야 하니 했었고

이왕 할 거 잘해보고자 했으며

몸과 마음을 최대한 갈아 넣어야 일이 돌아가니

(내심) 힘들어도 했었나 보다.

 

억눌러왔던 부담감과 어려움이

몇몇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잘해왔던 걸 보면

나 꽤나 나이스한 사람이다 싶다.



6.

브런치 작가를 포함하여

퇴사 후 하고 싶은 일들이 지속 생긴다.


어제는

내가 정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깨닫게 되었고

그 생각에 몰두하다, 심지어 그 일을 하는 꿈까지 꿨다.

꿈에서 깨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새벽 5시에 일어나,

거실 조명을 켰는데 새집의 바이브가 참 좋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템포대로,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이렇게 멋진 일이었구나 “


새집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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