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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 HUH Jun 07. 2024

묵직한 나를 일으켜주는 요가 그리고 단정한 실패

요가에세이 ‘단정한 실패’를 통해 바라본 퇴사후 나의 삶

1.

나는 경험충이다.


뭐든 직접 겪어보고 부딪혀 보며

내 피부에 닿았던 경험(실패 포함)을 기준 삼아

실행 방향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편이다. 


그래서

'어느 영역의 전문가가 되려면

책은 최소 몇 권을 읽어야 한다더라.' 등의 얘기는


현실은 1도 모르는 학자들의 말처럼

고리타분하게 들리던 때도 있었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도서관 3분 거리에 살아서일까.

지금의 나는 책으로 배우고, 문장으로 위로받는다.


오늘은 이석원 그리고 무라카미하루키 외

나의 트리플 인생 작가님이 된

'정우성 님의 단정한 실패'라는 책 속


내 마음을 묵직이 또는 가볍게 울린 문장과,

그 문장을 통한 퇴사 전/후 내 마음을 고백해 본다.



2.

(지난 글에 기재했듯)

아침요가를 다녀온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은 질적으로 너무나도 다르다.


아침요가를 하지 않는 날이 무서워질 지경.


이러한 궁금증을 품으며 살아가던 중,

우연히 도서관에서 귀여운 요가 이미지가 담긴

'요가 에세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편안한 색채 그리고 편안한 핏의 옷을 입은 사람이

부드럽게 취하는 요가 자세.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말캉해지는 듯했다.


이 책의 디자인은 마음을 참 평안하게 해준다.


3.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3개.


1) '내가 좋아하는 국수 재질이다.'

단숨에 맛있게 후루룩 읽혀버리는 책.


2) '내가 처한 상황이고, 내가 느낀 마음이네.'

공감 가는 문장들을 찍다 보니 수십 장.


3) '문장이 너무도 따뜻하고 부드럽다.

작가는 참 배려 깊고 섬세한 사람이구나.'

그에 반해,  뾰족하고 거칠기도 한 내 글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마음을 품게 하진 않았을지

나를 반성해 보게 만들었다.



4.

오래간만에 너무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한 데다,

마음을 풀어내는 방식과 표현이 너무도 내 취향이라

인스타그램에도 아끼는 문장을 올렸다.


그리고 전 회사 동료에게 받은 DM.

'매니저님이 쓴 글이랑 느낌이 비슷해요.'


문득 저자가 나와 MBTI가 같나 싶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이토록 내 취향의 문장을 만들어낸 사람이

쓴 책과 쓸 책은 앞으로 모두 읽으리라 다짐했다.



5.

특히 내가 너무도 애정했던 문구 몇 개와,

그 문장에 연결된 나의 삶 그리고 나의 생각.   


1)

회사를 떠나니 사람이 보였다.

떨어져 나오니 개별 존재가 보였다.

일이 사라지니 관계가 드러났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깨달았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실 지옥이었던 것도.


내내 사랑받는 줄 알았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은 모두 과거가 되었다.

유능했던 동료, 좋았던 사람들도 모두 과거가 되었다.


나는 또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

퇴사 후, 내가 느끼는 마음이 담긴 문장.  


결국 좋아했던 일과 사람들 모두

'과거 또는 현재 완료'가 되었으니

'현재와 미래'는 내 힘으로 쌓아 올려야 한다는 것.


이것이 당연한 퇴사의 대가이나 벅차다는 것.

그래서인지 '나는 또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라는

문장은 내게 유독 무겁게 다가왔다.


2)

어디 여유 있게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부아가 치밀었다. 저 여유가 왜 나에게는 없냐는 마음.

:

퇴사 전 내가 느꼈던 속 좁은 마음이었다.


나는 정말 미치도록 바쁜데,

일은 많고 역량도 부족해

주변 사람들까지 고생시키는 현실이 괴로운데


일이 확연히 적어 보이는 사람들의 불만을 들을 때면


'저 사람도 자기만의 상황이 있겠지'라는 마음은커녕.


'진짜 바빠봐라. 그런 말 나오지도 않는다.

설사가 나오는데 휴지로 똥꼬 막고 뛰는 심정을 아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속도 더럽게 좁아졌던 것이다.


3)

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있었지만

순서는 내가 정할 수 있었다.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는 하루.


어떤 일을 먼저 하고

어떤 일을 나중에 할지를 고민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소중한 감각이었다.


:

내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를 대변해 주는 문장이었다.  


평소 놓인 상황에 조금씩 적응하며,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나인데,  


마지막 회사생활엔

감을 잡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고

그냥 미친 듯이 끌려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끌려다님을 멈추기 위해선

빠른 속도로 달리는 나라는 차를 세우기 위해선


액셀을 잔뜩 밟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유턴을 감행해 차의 방향을 바꾸고 싶었고

그 생각에 반 미쳐있었다.


그 유턴이 내겐 퇴사였다.

당시 내게 유턴은 정말 꼭 했어야 하는 것이었고,


퇴사 후 1달이 되어가는 지금,

회사 밖에서도 여전히 완벽주의 성향에 버거워

(관련 책을 읽고 있는) 난


그 당시 내가 선택한 퇴사가

'완벽주의자'가 자신의 한계와 실패에 부딪혔을 때

하는 압도적 중단이었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선택을

옳고 그름으로 단순히 판단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겐 내 미래를 다시 세워야 하는 책임이 새롭게 지어졌을 뿐이다.


3)

사바사나 이후의 가벼움과 사뿐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수련은 나만 안다. 나한테만 쌓인다.

내가 하는 요가는 나만의 것이다.


누구와 함께 하기 전에 온전한 개인이 되는 일.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될 줄 알아야 한다는

정갈한 다짐.


:

나는 사바사나 시, 때때로 꿈을 꾼다.

정신은 어느 정도 있는데 꿈이 나오는 기이한 현상.


예전에는 사바사나가 너무 달콤해

요가는 센터 아닌 집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바사나 하고 바로 침대로 뛰어가 쿨쿨 자려고.


하지만 지금은,

사바사나 후 회복된 몸과 마음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주는 만족감을 안다.


4)

요가라도 다녀와야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요가 후) 넓어진 마음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누군가에게 커피를 마시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오후

나는 한 뼘 정도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딱딱하게 굳은 마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 맞다. 요가를 다녀와야 제대로 된 하루를 산다.


나는 

타고난 마음과 속이 좁은 건지?

타고난 마음은 넓은데 힘들면 잘 좁아지는 건지?

몰라도


나도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 전엔

집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넓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싶다.


5)

가야 하는 일이라면 부단히 가는 게 옳았다.


: 부러운 문장이었다.


퇴사 후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어디일까.

그리고 성공으로 가는 방법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그곳으로 부단히 갈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은

회사 다닐 때만큼의 수입을 벌지 못해도

수입과 무관하게 단번에 성공하지 못해도,

도전하는 자체로, 내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안분지족 할 수 있는 사람일까?


6)

한 달 동안 모든 수업을 원할 수 있는 멤버십을 샀다.

제한이야말로 우리가 피하고 싶은 단 하나의 단어였다


: 나도 요가일정이 가득 담긴 여행을 떠나리라.


7)

참 균형이 좋았던 그 소박하고 능숙한 식당.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문장.

소박한데 능숙하다는 표현에 울림이 있었다.


나는 화려하고 능숙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소박한데 능숙할 수 있을까?

능숙한데 소박할 수 있을까?

소박한데 능숙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6.

만약

지금의 삶이 지치고 버겁거나,

과거의 삶이 지치고 버거워 현재 휴식을 택한 사람


하지만 선택한 휴식 속에서도 버거움을 마주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사람 없는 한적한 여행지에 간듯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을 추천한다.


참고로,

뜨겁고 부글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폈던 나는,

책을 다 읽고 시원한 사과와 달달한 망고를 먹으며

주 3회 아침 요가를 더욱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끝.


더욱 사랑하고 싶어지는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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