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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Jan 05. 2021

30대 여성 비혼주의자,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김민정 지음


자기 집이 있어…? 멋지잖아…?



눈길이 멈출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다. '결혼은 모르겠고'까진 마찬가지인데, 나는 '남의 집'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 집을 새로 꾸미면서 거의 잊고 있었던 사실이라 속이 쓰렸다. 올해 10월, 해외 취업한 동생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방 두 칸을 혼자 쓰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별러 왔던 침대와 책상을 침실에 들이고, 작은 방은 서재로 만들었다. 러그를 깔고 커튼까지 달고나니 이전과는 그냥 다른 집이었다. 완전히 내 취향대로만 꾸민 나만의 공간. 하지만 사실 여기는 내 집이 아니다.


서울 집값은 내일 또 오를 텐데 야속한 이 도시는 나에게 한 뼘의 자리도 내주질 않는구나. 망해라, 서울. 망해라, 지구촌. 저주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집 마련'이란 허황된 꿈에 매달려 인생을 갉아먹을 수는 없었다. 집 없이도 잘 살아가려면 남의 집이라도 내 집인 것처럼 잘 돌보고 꾸미며 사는 수밖에. (25p)


과연, 사람 사는 모습이란 별다를 것 없구나. 나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인간답게 살 만한 월세집은 너무 비싸고, 안 그래도 귀한 전셋집은 내 예산에 맞추려니 더더욱 없고. 남의 집 빌리는 일에도 이렇게 허덕이다 보니 집을 산다는 옵션은 마음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작가 역시 그랬다. 자신과 동갑인 동료 방송작가에게서 집을 샀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고.


능력 있는 자가 얻는 게 아니라, 얻고자 하는 자가 얻는다. (45p)


너무 멋진 말이라 내심 멋쩍었는지 작가는 이 뒤에 장난스러운 표현을 덧붙였지만("우리나라의 한 방송작가가 한 말로, 음… 내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문장에 마음속으로 밑줄을 쫙쫙 쳤다. 그래, 인생은 결국 우선순위야!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길을 만들면 돼! '내 집 마련 로드맵(42p)'을 보고 작가가 어떤 기준으로 집을 구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허황된 꿈'을 붙잡으려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구나.



그러나 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자기 부담금은 어떻게 한 걸까. 30대, 싱글, 비정규직이면 대출도 많이 나오지 않을 텐데. 그녀의 답은 쓸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일로 채우는 것이었다. 모자라는 6천만 원을 모으기 위해 투잡, 쓰리잡, 포잡, 파이브잡을 불사하며 주 6일 일하면서 이를 악물고 2년을 버텼다고 한다. (아… 어떻게 이렇게까지 온 힘을 다할 수 있지?)

하지만 과정이 힘들수록 사람은 결과에 기대게 된다. 목표를 이루면 고통이 해결되리라 믿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취 그 자체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만족감이 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집을 산 후 1년 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자기 시간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일들을 잘라낸 후, 공백 안에서 자신을 돌보았던 그때가 지금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자기만의 방'을 온전히 갖기 위해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93p)



'느슨한 시간 속에서' 순간을 길게, 느리게 쓰는 재미를 알아가는 요즘이라 이 말이 더 와 닿았다. 온갖 모임에 다 끼고 하루에도 두 번씩 약속을 잡을 만큼 집 밖을 나돌던 나였는데, 처음으로 '아, 좀 더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조금 놀랐다. 혼자 있어도 외로울 새가 없는 내가 아직 어색하다. 서재에 앉아 낡은 CDP에서 돌아가는 추억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지금이 영원할 것만 같고, 하얀 종이 같은 나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내 색깔이 더 선명해지는 그 기분이 참 좋다.

이 책의 반 이상은 작가가 1인용 삶을 알차게 채워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예쁘지만 품이 덜 드는 살림은 어떻게 꾸몄는지, 페미니즘이 자기 긍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양이들과의 일상은 어떤지, 무슨 마음으로 유튜브 채널(1인2묘가구)을 열었는지, 혼자 살면 곤란한 점, 어디서 친구를 사귀었고 어떤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등. 그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중받는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삶을 세상에 드러낸다고 한다. 마치 아는 언니한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혹시 이 모습이 내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술술 읽히는 책이다.




렛'S 출근길 책읽기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김민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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