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도 산재 처리해주세요>, 안정현 지음
지금 (자동차에) 치이면 산재 처리해줘요?
가끔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시답잖은 농담을 하곤 한다. 회사에 기대어 조금 무책임해지고 싶어 지는 마음이 슬쩍 드러나는, 마음에도 없으면서 막 던져보는 직장인 조크. <월요병도 산재 처리해주세요>는 이런 회사원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하는 제목이다. 그래서 책을 열어보기 전부터 공감되는 내용이 많을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목차를 훑어보니 역시나 그동안 나를 숱하게 괴롭혔던 질문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섯 챕터로 묶여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자면 직장에서 마음 건강을 지키는 법, 그리고 내 일을 찾는 법이다. 주로 내담자의 상담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는 고민들이다. 회사 생활에 너무 지쳐버렸거나,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거나... 사람들 사는 모습이란 참, 비슷하다.
영주 씨가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이유를 ‘생물학적-심리학적-사회적 모델’로 보아야 합니다. 호르몬의 문제뿐 아니라 반복되는 일, 환경과 사회적인 상황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의미를 찾는 삶을 살지 못할 때 고통이 반복됩니다. 직장 생활이 힘든 이유는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기 때문이며, 주도권을 빼앗긴 이들은 쉽게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20p)
이 책은 상담 케이스를 해설하고 분석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상담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과 삶, 성장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내담자의 고민을 심리학적으로 풀이하면서 따스하게 공감해주고, 개인적인 경험담을 털어놓거나 도움이 될 만한 책과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이런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고 실제로 상담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작가 자신부터 일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많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 남기고픈 이야기를 풀어낸 듯한, 그래서 더 믿음이 가는 책이다.
N잡러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신을 규명하기를 거부합니다.(162p)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취미생활, 부업 등으로 2~3가지 정체성을 가지거나 한 가지 일만 하더라도 회사만으로 자신을 정의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소속보다 '일'로 나를 표현하는 시대. 이왕이면 제때 퇴근하고 내 삶을 즐기자는 워라밸 트렌드의 결과일까? 그만큼 돈 벌기는 불안정해졌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혼란을 더 다채롭게 살아갈 기회로 쓰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어느 스테이지에서든 결국 고민은 언제나 치열해야 하고, 그럴 때 우리는 그 과정을 도와줄 책을 찾는다. 이 글을 쓰기 전 몇 주 동안 회사에서 나는 일이 아주 바쁜 시기였고, 조직 개편 논의가 한참 오가고 있어 정신이 없었다. 여러 임직원들과 계속 면담을 하면서 주어진 일들을 해내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지, 회사와 나는 어떤 관계인지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첫 회사는 급여가 꽤 괜찮았지만 근무시간이 길고 종종 주말 출근을 했다. 그리고 직무상 더 배울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게 치명이었다. 그래서 이직할 회사를 찾을 때 조건이 '직무 성장성'과 '주말 출근 없음'이었다. 두 번째 회사는 급여도 무난하고 워라밸이 좋았지만 회사가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어떤 회사에 다녀도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스스로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이겨낼 수 있다. 이전 회사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걸 보면 돈과 워라밸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닌 모양이다.
맺는말에서 작가는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당부한다. 중요한 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고, 그 배움은 회사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회사 안에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어서 버티면서 살다 보면 성장에 필요한 '건강한 고민'에 집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작가는 그럴 때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나는 그 과정을 한 번 거쳐서 훨씬 더 만족스러운 삶을 얻었고, 그래서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특히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