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애타는 여름날은, 얼음집 다녀온 날이었다.
바게쓰에 담아온 얼음을 소금 뭍은 칼로 서걱서걱 썰고 백사장 모래처럼 쌓인 얼음가루를 한움큼 입에 집어넣은 다음, 할아비의 사기그릇에 얼음 두어덩이를 담아 내면, 어여어여 나오라며 나를 재촉하는 할아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그릇을 쥐고 조심스레 걸어가면, 평상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나를 맞이하던 할아버지. 그 애탄 모습 뒤에 서있는 두꺼비 한 병. 할아비의 애타는 목마름은 얼음위에 쏟아질 무색무취의 소주를 연상시켰고, 덩달아 내 애간장을 태우곤 했다.
그 날도 그러한 날이었다. 재빠른 손놀림과 유쾌한 소리들로 채워진 할아비의 술자리. 나또한 여느 날처럼, 할아버지 흉내를 내며 흥을 돋우었다. 냉차 한 모금에 “캬-” 한번. 또 한 모금에 “조-오타” 한번. 아쉽게도 그 날은, 나의 냉차가 먼저 동이 났다. 유흥거리를 잃고 할아비만 쳐다보는데, 더운 날씨에 목 타는 손주는 아랑 곳 않고 이슬 송송 맺힌 소주만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어찌나 얄밉던지.
“요게 바로 여름 맛이다, 여름 맛.” 이라 연신 읊어대는 할아비. “여름이 뭐꼬- 뜨거븡게 여름아이가. 이기(두꺼비) 30도, 딱 여름 날씨다.” 두꺼비는 여름 온도 30도랑 맹- 한가지라 뜨거븡 여름 맛 고-대로라는 둥, 독-한 인생사와 또오-옥 닮았는데, 나 같은 꼬마는 나이묵기 전에는 요 달부리하고 씹은 인생 맛을 저얼-대로 모린다 하였다.
“내도 안다! 내도 한잔 주-바라” 신이 난 할아비 앞에서 애닳은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보채어도 꿈쩍도 않는 할아비의 모습이 얄미워 으앙- 울음이 터졌다. “이마이 컸으머 내도 인제 마셔봐야할거 아이가” 버둥버둥 거리고, 꺽꺽 거리는 나를 어르고 달래는 할아비 앞에서, 나는 더 세찬 울음을 쏟아 내었다.
그리고, 그 여름의 승리. “아-따. 니 한잔 무바라.” 울음이 뚝 그쳤다.
나는, 승리의 두꺼비 한잔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