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열차
열차를 탄지 72시간이 지났을 즈음
점점 변해가는 몰골을 거울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호차로 넘어가서 금액을 지불하고 샤워를 살 수 있지만, 굳이 꼭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뭐 가끔은 이렇게 자연인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하하
오늘은 열차칸에 조용한 손님이 찾아왔다.
50대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차려입은 투피스와 구두 그리고 단정한 머리까지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에 압도됐다고 표현을 해야 할까?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번 여정은 쉽지 않겠구나...."
잠시도 가만히 있는 걸 못하는 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간단한 인사를 한 후 그렇게 각자의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분위기에 압도당해 통성명을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답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 과는 다르게 나의 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한참 보다 보니 나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난 지 10일 만의 일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흘려보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그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만남이든 의미 없는 만남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만남조차도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만남이었다.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고, 이 여행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마치 앞으로의 긴 여정을 위해 지금 잠깐 숨을 고르라는 무언의 메시지 같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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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크고 작은 역들을 지나간다. 그중 큰 역에 설 때면 30~40분 정도의 정차 시간을 가진다.
그 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상인들이 바구니에 이것저것 가지고 기차 앞으로 다가온다.
기차에 있던 사람들은 오랜만에 밟는 땅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상인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물건을 팔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열차 생활 3일차 쯤 되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이 역은 오래 서겠구나.. 혹시 몰라 역무원에게 시계를 가리키며 시간을 재차 확인 후 우리는 모자란 식량을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빵과 과자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도 즐겨먹는 한국 컵라면 “도시락”
타지에서 만나는 한글은 어찌나 반갑던지.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 한국인들도 만나고, 다른 열차에 있던 사람들과도 인사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열차는 다시 달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 삶의 패턴이 조금씩 변했다.
잠이 올 때 자면 되고, 깨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된다.
그날도 여느 날이랑 다르지 않았다. 늦은 시간 모두가 잠에 든 시간
기차 안은 적막만이 존재했다.
인터넷을 하기엔 부족한 데이터 용량...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e-book을 켰다. 적은 테이터 용량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e-book 만한 게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흘렀을까 문득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40분
생각보다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진 않았구나 생각하며 다시 책에 집중했고, 졸음이 몰려올 때 즈음 시계를 한번 더 확인했다.
내가 확인 한 시간은 12시 40분
혹시 너무 졸려서 잘못 본 것이 아닐까 눈을 비비고 다시 휴대폰을 봤다.
순간 내가 진짜 너무 졸려서 정신이 나갔나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이내 곧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
우리는 9288km의 긴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변하는 시차는 5번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지금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는 여행을 하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