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이불 28화

이불

편함이 불편한 어머니

by 시골뜨기

"내 평생에 이렇게 편하게 살 날이 있을까 했었다."

거실에서 마늘을 까고 계시는 어머니가 말했다. 시골에서 늘 일만 하시는 어머니에게 농한기만이라도 잠시 쉬시라고 우리가 불렀다. 보름 이상 지내실 요량으로 준비하고 오시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오래 시골집을 비우신 적은 없었다.

도시의 우리 집에 오신 지 닷새 째다.

"나 내려가련다."

뜬금없는 어머니의 말에 신문을 뒤적이던 나는 어머니를 돌아봤다. 계속 마늘을 까시는 어머니의 얼굴에 그을음이 가득하다. 세월의 더깨, 듬성듬성 돌이끼 낀 야산의 바위처럼 어머니의 얼굴엔 검버섯이 많이 꼈다.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고 계셨다. 머뭇거리며 내게 다가오시며 묻는 어머니는 내가 화를 내면 어쩌나 하는, 마음속에 방패를 앞세우고 다가오는 병사 같았다.

"내가 이런 말 한다고 화내지 말고 들어라. 너 전에 친구에게 꿔준 돈은 받았냐?"

나는 이미 생각지도 않은 주제거리를 어머니는 기억하고 계셨다. 이태 전 추석인가 집에 내려갔을 때 우연히 내 입에서 나왔던 얘기였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비록 말은 부드럽게 했으나 내 대답에는 철저한 외면이 깃들어 있었다. 내 친구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데 왜 그리 걱정을 사서 하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나올 것을 애써 삭였다. 어머니의 이런 물음은 나를 언짢게 한다. 이미 전에도 몇 번이나 물어본 적도 있거니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꺼낸 것은 어머니의 노파심이다.

내 기분을 감지한 것인지 어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난 또다시 부아가 치밀었다. 어머니를 이해 못 한 내 처신에 대해. 물론 어머니의 삶을 내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릴 적에는 전혀 몰랐고 어른이 된 지금도 어머니의 심정을 추측할 뿐이다. 그건 단지 수박 겉핥기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 지 사흘째 되는 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베란다에 신문지가 펼쳐져 있는데 거무튀튀한 뭔가가 널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전에 먹다 남긴 닭고기, 오징어, 돼지고기다. 아내가 음식물쓰레기 통에 버린 것을 어머니는 다시 꺼내서 일일이 씻어다가 말린 것이다. 시골에 있는 개에게 먹일 거라는 어머니의 대답이 옹색했다. 며느리는 깔끔해서 이런 것 싫어해요라며 아내를 핑계 삼아 어머니의 행동에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아파트에서는 시골 마당처럼 그런 것들 말리는 게 아니라고도 했다. 실은 나도 그런 걸 싫어한다. 시골뜨기인 나도 이미 도시문명의 대명사인 아파트 편안한 생활에 길들여졌다.

"어머니, 그냥 편히 쉬시다가 가세요."


어머니에게는 편안함이 불편함이다. 편함보다는 불편함에 몸에 더 밴 탓이리라. 어쩜 불편한 생활이 어머니에게는 생존의 방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모르는 내가 아니지만 난 어머니의 극성스러움이 싫었다. 이미 어릴 적부터 보아온 어머니의 옹색한 삶이다. 자꾸 과거의 암울함이 떠올라 짜증을 부리지만 그러고 나면 내 맘 한편이 켕긴다. 어머니의 그런 처신 덕에 그래도 지금의 내가 이렇게 번듯하게 자랐는데 난 어머니의 처신이 마뜩잖다.

어머니6401.JPG


위 글을 언제 썼는지 날짜가 없어 알 수 없지만 내가 결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하니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어느 날에 쓴 글이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어떤 노트에 이 글이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 관련 이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없지만 이 글이 남아있어 기억을 더듬어 본다. 글은 그때의 감정과 느낌을 사진처럼 남겨놓았다.


제목이 '이불'이다. 왜 이불이라고 제목을 적었을까? 도통 모르겠다. 나중에 이불과 관련한 이야기를 적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미완성의 글을 읽으며 낯선 나를 본다. 내가 쓴 글이 분명하지만 마치 남의 글을 읽는 듯한 이 이질감은 뭘까? 그 사이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감정도 무뎌졌다.


이 글의 제목을 왜 이불이라고 지었을까 며칠 동안 곰곰 생각해 봤다. 어머니와 이불, 퍼뜩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너를 그곳에다 두고 떠나는 내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더구나. 정문을 나서면서 얼마나 머뭇거렸는지 모른다. 네게 이불만 사 주었어도 내 발걸음이 그렇게까지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일은 그만 말씀하세요. 별로 춥지도 않았어요."


또 20년을 더 거슬러 올라 간 내 고등학교 입학 즈음, 어머니는 이불을 이고 아들이 머물 학교의 기숙사로 오셨다. 그리 비싸지 않은 돈을 내면 개인 침구는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구매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구매를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던 나는 이불값을 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멀리 유학 보내며 이불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십리 길 신장로를 걸어 면소재지에서 버스를 타고 고창을 지나 정읍에 도착하신 후 다시 기차를 타고 익산의 학교까지 오셨다. 2월 말이었지만 건물 그늘진 곳에는 아직도 빙판이 있던 추운 해였다. 추운 기숙사에 아들을 두고 발길을 떼는 어머니는 송아지를 두고 떠나는 어미소의 심정이었다. 어머니는 그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고 이따금 얘기를 하셨었다.


글 중에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고 계셨다는 부분에서 눈물이 왈칵했다. 자식의 눈치를 봐야 하는 어머니라니!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그때의 내가 한심스럽고 어머니께 죄송할 따름이다. 이제는 내 눈치를 볼 어머니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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