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
몇 해 전의 일이다. 세상을 뜬 큰형수를 공원묘지에 안장했다. 봉분을 돋우고 묘비를 세웠는데, 형수의 묘비에는 <사모 김영숙의 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주변의 다른 묘비를 살피던 고등학생 조카가 물었다.
“작은아빠, 여기엔 학생 묘가 왜 이리 많아요?”
조카가 둘러보니 그 공원묘지에는 유난히도 학생의 묘가 많았다. 자기도 학생인지라 마음이 짠했던 거다. 조카의 말에 옆의 묘비를 보니 <학생 ○○○의 묘>라고 적혀 있다. 학생으로 시작하는 묘비는 조카 말대로 거의 절반은 되었다. 조카는 매우 안타까워하며, 이 많은 학생들이 왜 죽었는지 궁금해서 물은 거다.
조카는 묘비에 새겨진 <학생>을 자기처럼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생각한 거다. 조카의 짐작은 비록 틀렸지만 그 글자는 같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나 묘비석에 새겨진 '학생'은 둘 다 배울 학(學), 날 생(生)이다. 생전에 벼슬을 한 사람은 묘비에 그 벼슬의 품계를 적지만, 벼슬이 없던 상민은 벼슬을 못한 채 공부하다가 그만 저승에 갔다는 뜻으로 학생공(學生公)을 쓰는 것이다.
해마다 1월이면 난 학생들 앞에 선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 각 읍면동을 다니면서 농업인들에게 영농교육을 하는 것이다. 수업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쉰이 넘었고 여든이 넘은 어르신도 있다.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평생 교육을 받으신다. 배움이란 젊은이들만의 과정이 아니며, 사람은 모름지기 평생 공부하는 학생이다. 이런 의미에서 묘비에 학생(學生)이라고 새기는 것이다.
농업인 교육에서는 내가 선생으로서 학생 앞에 서지만, 다른 교육에서는 내가 학생으로서 수업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내 수업에 참가한 학생 중에는 다른 수업에서 선생으로서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도 있다. 논어에 실린 공자의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말씀처럼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듯이, 우린 모두는 선생이자 학생이다.
어떤 모임에서 대화를 하던 중에 지금까지 사는 동안 절망적인 상황은 언제였으며,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한 동생은 자신의 학생 시절을 얘기하다가 울컥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후 가정형편이 무척 어려워져서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어서 산업체 부설학교에 들어갔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자기는 정말 공부를 하고 싶은데, 그 시간에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하기에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다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굳이 그 이후의 말을 듣지 않아도 그녀의 감정이 충분히 전해졌다.
배움 자체가 눈물겨운 감격이자 벅찬 기대인 이들에게 공부는 희망사항이요 학생은 동경의 대상이다. 이들 앞에서 감히 공부하기 힘들다고 짜증 낼 수 있을까? 우린 여전히 학생이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든,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든, 은퇴한 퇴직자이든, 우린 평생 배우고 익히는 학생이다.
50년 동안이나 농사를 지으신 어르신이 농사 교육을 받으시려고 내 앞에 앉아 계신다. 학생으로서 말이다.
나 역시 그분들 앞에 서 있다. 선생 탈을 쓴 학생으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