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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15. 2022

하나의 질문

@ 싱가폴 동물원 


싱가폴 동물원의 나이트 사파리. 어두운 열대 우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낯선 야생 동물들을 보았다. 동물과 사람 사이에 벽이 없으니, 동물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녀석들의 집에 무단 침입한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수달, 바비루사, 하이에나, 날다람쥐 등을 구경하며 마치 영화 속의 탐험가라도 된 듯, 어둠 속을 걸었다.


빛이 없으면 색도 없다. 무채색의 어둠 속에 있으면 시각에만 의존하던 몸의 다른 감각들이 깨어난다. 눈은 우리를 한없이 게으르게 만든다. 보통의 우리는 눈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 속 이미지를 본다. 나무는 초록이고,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하얗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쉽게 보기 때문에 오히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다. 인적이 드문 나무 흔들 다리 위를 지나다 (몸과 함께 마음이 흔들렸을까?) 조셉 캠벨의 깊은 질문이 떠오른다. 


"나를 지탱해 주고 견디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지탱해주고 견디게 해주는 무언가를 나는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지탱해 준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나를 넘어지게 하는가? 이것이 신화, 즉 내 삶을 구성하는 신화가 내놓는 실험이다."


갑자기 이 어두운 정글이 하나의 거대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자신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자신의 영혼을 밝히는 빛은 바로 자신의 깊은 어둠 속에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들>이란 책에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여러 신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들이 사실은 아주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베다 경의 말을 빌리자면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이를 드러낸다.” 그 구조는 크게 출발, 입문, 귀환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 


영웅 신화는 본질적으로 모험 이야기이다.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은 어떤 문제와 부딪히게 되고,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현대의 신화인 <스타워즈>에서 주인공인 루크는 레이아 공주의 절박한 구조 요청이 담긴 홀로그램 메시지를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다른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스카이워커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는 단지 신화 속 위대한 영웅들의 여행에만 해당되는 구조가 아니다. 인류의 위대한 영적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와 싯타르타도 이런 여정을 따랐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 오즈의 마법사, 연금술사, 반지의 제왕, 어린 왕자, 라이언 킹 등 - 또한 이런 과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우리의 인생 또한 탄생, 삶과 죽음으로 이뤄져 있으니 이는 아마도 삶의 비밀에 대한 전인류적 메타포인지도 모른다. 
 

복잡하기 그지 없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런 신화 속 단순하고 일관된 구조가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우리가 자신의 신화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듯 늘 혼란스럽고, T. S.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노래하듯, “약간씩 견디어 내면서”, “살아 있는 우리는 지금 죽어”가는 것이다.  
 

거대 서사가 무너진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셀 수도 없이 무수한 우주의 별들 중에서 아주 작디 작은 푸른 지구라는 별에 태어난 놀랍고도 기적과 같은 생명체이다. 이 놀라운 우연의 연결 고리를 잠시나마 음미해본다면 지금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왜 이 곳에 있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바로 자신 안에 있다. 자신의 삶이 하나의 물음임을 인식하는 순간, 또 하나의 삶은 시작된다. 나는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의 삶이 신화에서 태어난 물음임을 깨닫는 순간, 두번째 삶은 시작된다. 삶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당신은 당신 삶의 이야기꾼이며 당신만의 전설을 창조할 수 있다.” - 이사벨 아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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