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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17. 2022

너의 이름은

@ Nowhere

Arnold Böcklin - Odysseus and Polyphemus


10년 동안의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Odysseus는 자신의 나라를 향해 출발한다. 출항한지 3일째부터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9일 동안 바다 위를 떠돌다 외눈박이 거인족 키클롭스Cyclops의 나라에 도착한다. 키클롭스의 나라는 풍요로운 곳이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그 섬에서 염소를 잡아 배를 채우고 치즈를 먹고 포도주를 들이켰다. 그러나 섬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 그들은 폴리페모스Polyphemos란 이름의 키클롭스에게 붙잡혔다.


폴리페모스는 훌륭한 양치기였지만 동시에 포악한 거인이었다. 오디세우스 일행을 자신의 동굴 속에 가두고 한 번에 두 명씩 잡아먹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거인이 잠들었을 때 그를 찔러 죽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럴 경우 그들은 폴리페모스가 거대한 바위로 막아둔 동굴 안에 갇힐 수 밖에 없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거인은 동굴 안에 불을 피우고 가축들의 젖을 짰다. 일을 마치고 오디세우스 일행 중 두 명을 잡아 아침으로 먹은 뒤 커다란 바위를 열고 가축들을 동굴 밖으로 몰았다.


오디세우스는 동굴 안에 있는 커다란 몽둥이의 끝을 뾰족하게 깎아 불에 달군 뒤 잿더미 속에 숨겨두었다. 저녁이 되자 폴리페모스는 가축을 몰고 돌아왔다. 그리곤 두 명을 움켜쥐고 바닥에 내리쳐 저녁으로 먹었다. 오디세우스는 거인에게 가죽 부대에 담긴 포두주를 권하며 자신을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고 소개했다. 포도주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거인은 그를 맨 마지막에 잡아먹겠다고 말했다. 폴리페모스가 거나하게 취하여 잠들자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불에 달군 몽둥이를 거인의 눈에 찔러넣었다.


고통에 찬 거인이 커다란 비명을 지르자 동굴로 모여든 키클롭스들이 누가 한 짓이냐고 물었다. 폴리페모스가 “아무도 아닌 자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외쳐대자 그 말은 “아무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어 모두 멋쩍어 하며 돌아가버렸다. 아침이 되자 폴리페모스는 가축을 먹이기 위해 동굴 문을 열었는데 오디세우스와 일행은 양들의 배 밑에 매달려 탈출에 성공했다.  


배를 타고 섬을 떠나면서 의기양양해진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너의 눈을 멀게 했냐고 묻거든 바로 이타카에 사는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라고 전해라.” 분노한 폴리페모스는 배를 향해 커다란 바위를 집어던지며 큰 소리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했다. 폴리페모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바다의 신은 아들의 기도를 들어주었고, 폭우가 몰아치고 바닷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후 10년에 걸친 오디세우스의 진짜 여행(오딧세이)이자 항해(생고생)가 시작되었다.




오디세우스는 누구인가?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어 10년에 걸친 트로이와의 기나긴 전쟁을 끝낸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런 그는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을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고 소개했다. 이는 다만 외눈박이 괴물을 속이기 위한 위장만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위대한 영웅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아니었다.


그리스 서쪽 변방의 작은 섬 이타카의 출신인 그는 고작 12척의 배를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다.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은 100척을, 트로이 전쟁이 낳은 최고의 전사인 아킬레스는  50척의 배를 몰고 참전했다. 위기 때마다 뛰어난 지략을 발휘했지만 <일리아드>에서의 그의 명성은 아킬레스와 맞서 싸운 트로이의 용장 헥토르에게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꾀로 폴리페모스를 속여 넘기고 위기를 벗어난 기쁨에 취해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닌 자”가 아닌 트로이를 함락시킨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오디세우스의 불행은 시작되고, 이후 10년에 걸친 바다 위에서의 모진 항해를 통해 그는 <오딧세이아>의 주인공이자 현대적인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서 이름을 받는다. 그러나 그 이름은 당신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진짜 이름은 우리의 삶을 통해 만들어진다. 


예술가 이우환은 말한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인간은 표현자가 되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믿지 않는다. 개성은 신비로운 것이다. 개성은 우리의 운명이다. 사람은 다 삶의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는 나름의 방법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꽃피우고, 그것과 사귀어야 한다." **


우리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일과, 우리의 집을 다시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의 저주를 받은 "바다의 항해자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자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는 유일한 길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 이우환, <만남을 찾아서>


** 조셉 캠벨, <신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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