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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Oct 13. 2024

선착순

@Aoyama


“선착순 세 명!” 


다시 뛴다. 햇살이 내려쬔다. 땡볕에 이게 무슨 생고생이람. 벌써 네 바퀴 째다. 사실, 달리기 하나는 자신있는 편인데, 골대를 돌지 않고 중간에 돌아오는 녀석들이 꼭 있다. 그러니 죽어라고 뛰어도 꼭 돌아올때면 몇 명씩 먼저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나까지 그렇게 하기는 싫다. 어디까지나 그건 반칙이니까. 


“선착순 한 명!” 


사실,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오늘따라 저 XX의 기분이 안좋은 것 뿐인지도. 모두들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남은 젖먹던 힘을 짜내거나, 아예 커트라인 안에 들기는 힘들테니 적당히 달리는 척을 하고 있다. 누군가처럼 반칙을 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꾀를 부리기도 싫은데, 몸에 힘이 빠진다. 그 때다. 


더위를 먹었는지 한 녀석이 반환점을 지나쳐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XX가 저 멀리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멍해진다. 새로운 심장이 뛴다. 그러고보니 왜 이 따위 뺑뺑이를 계속 돌아야되나 싶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반환점을 지나쳐 세상의 끝을 향해 달린다. 등 뒤에서 다른 녀석들의 스텝이 뒤엉키는 소리가 들린다. 이젠 ‘죽었다’는 생각과 함께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참 시원하다. 




‘경쟁’이란 참 익숙한 단어이다. 좁디 좁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다는 것은 줄곧 경쟁과 함께 한다는 뜻일테니. 학교에서는 더 좋은 성적과 더 좋은 학교를 위해, 사회에 나와서는 더 빨리 승진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다. 친구와 함께 술 한 잔 하며 웃고 있어도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 타고 다니는 차, 새로 장만한 아파트 평수 같은 것들이 신경 쓰이고, 카페에 잠시 앉아 잡담을 나누면서도 공부 잘 한다는 저 집 아이는 어떤 과외를 시키고, 어떤 학원에 보내는지가 마음에 걸린다. 


어릴 땐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는데, 알다시피 ‘절대 아니올시다’. 반환점을 통과한 순간, 우리는 또다시 순위 안에 들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좋은 날은 언제 오는건가 싶기도 한데, 풍문으로 듣자하니 어떤 녀석은 새롭게 옮긴 직장에서 고속 승진으로 고액 연봉을 거머쥐었다 하고, 또 누구는 크게 뛰어 오른 집값과 주식으로 한 몫 잡았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하니 늘상 순위 밖에 있는 까닭은 아직 노력이 부족하거나 정보가 부족한 탓이려니 하고 한숨 짓거나, 다시 한번 마음을 부여잡고자 멀쩡한 신발끈을 괜시리 동여매어 보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대체 저 반환점은 누가 정한걸까’, 하는 의문이 들때가 있다. 아니, 매일 따라야 할 이 수많은 규칙들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누가 결정한 것이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경기장 밖에서 가끔 휠체어를 타고 출몰했다 사라지는 저들은 대체 누구이며, 때로 게임의 룰을 바꾸거나 심지어 골대까지 바꿔버리는 이 알 수 없는 경쟁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는 쓸데없는 의문들 말이다.  


경쟁은 ‘의존’일 뿐이라고 했다. 만약에 선착순을 위해 미친듯이 달려가던 이들이 모두 제자리에 멈춰서 버린다면, 다른 이가 정해준 저 곳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사방 팔방으로 달려 나간다면 어찌 되는 것일까?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히지 않고 한번 뿐인 오늘과 눈부신 사랑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을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대신 달리는 일 따위에 허비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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