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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Nov 22. 2020

나의 특이한 취향

함께쓰는 한 단어 『나의 특이한 취향』, 공교롭게도님의 글




나의 특이한 취향이라는 주제에 걸맞으려면, 생각건대 민트초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싶다. 맨처음 주제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민트초코였고, 그리고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는다든지, 깍두기 국물을 설렁탕에 끼얹는다든지 그런 것들이었다.



특이함은 단지 수가 적다를 넘어서 그로 인해 누군가 기함을 하는 그런 것들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특이하지 않은' 사람들은 민트초코를 보면 어김없이, 탕수육에 소스를 붓는 사람을 보면 어김없이, 깍두기 국물을 설렁탕에 끼얹는 사람을 보면 어김없이 아주 지랄발광을 한다는 것이다.비타협적인 사람들이다.



나의 특이한 취향이라 함은 이렇게 비타협적인 자들을 길길이 날뛰게 할만큼 자극적인 것이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나는 민트초코를 딱히 찾아먹지도 않지만 있는 걸 굳이 내팽개치지도 않으며, 탕수육을 부어먹는 걸 선호하지만 찍어서도 즐겨먹으며, 깔끔한 국물을 좋아하지만 깍두기 국물을 붓는 누군가의 손목을 뎅겅 자르지는 않는다.



대체로 취향에 민감하지 않아 맨송맨송한 고로 나의 특이한 취향이라 할 때 그리 논쟁적인 뭔가를 내어놓기가 참 애매하다. 주제를 보고 느꼈던 다소간의 곤란함을 뒤로 하고 주절대본다.



따지고보면 취향이란 본디 특이한 것이 아닌가. 어떠한 이는 탕수육에 짬뽕국물을 부어먹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물론 실수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위로받아 마땅한 이에게 귀하디 귀한 탕수육 고기에 그 따위 거를 부어서 처먹니하면서 따귀를 올려붙인다면 그로서는 오죽 억울하겠는가.



그러니 각자의 취향을 서로에게 윽박지르기보다는 절충하는 방향으로 중재함이 밥상의 평화를 온존하는 길이다.



그러한 점에서 반반이라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묘안이다. 짜장-짬뽕, 후라이드-양념, 물냉-비냉, 족발-보쌈, 둘 중 하나를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이러한 점에서 이 관계들은 '소맥'이라는 변증법적 대안이 있는 소주-맥주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니 각각 고유의 맛을 유지하되 절반씩 모두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반반은 그야말로 취향 위의 취향 아니겠는가. 나의 취향을 굳이 꼽으라 하면 언제나 화목하고 안전한, 바로 이 반반되시겠다.



또한 판매자 역시 싼것-비싼것을 조합함으로써 싼것을 비싼것에 준하여 팔 수 있으니 그만큼 이득을 볼 수 있다.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윈윈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잉여를 창출해내는 바람직한 취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타협적인 자들의 확고한 취향이 만나 포기가 애매할 때는 모두를 아울러 한데 모아 갖춤이 마땅하다.




그런데 이러한 중재와 절충이 있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각자 나름의 (확고한) 취향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최악의 (취향 아닌) 취향은 '아무거나'이다. 무색무취라면 갈등도 없겠지만 최선 또한 없다. '아무거나' 위에서 이뤄지는 선택은 언제나 그저그런 밋밋함뿐이다.



내가 분노하는 취향은 민트초코라든지 부먹이라든지 핏빛 뚝배기라든지, 그 따위 것들이 아니다. 나는 '아무거나'라는 '취향'에 작동하는 취향을 가진 것 같다. 무심결에 종종 밥을 사는 일이 있다. 사는 것도 억울한 판에 메뉴까지 고르려니 참으로 귀찮다. 그래서 받아먹는 이에게 으레 메뉴 선택을 떠넘기곤 하는데, 이 자가 글쎄 '아무거나'라고 하면 참 죽여버리고 싶다.



그래서 결국 내가 먹고 싶은 평범한 것을 먹는다. 이를테면 뜨끈한 국밥? 한번은 가까운 후배들과 저녁에 야심차게 고기를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무슨 논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자들이 고기를 먹으니 술을 마시자고 한다.



그래서 소주를 마실까 맥주를 마실까하니, 모두 괜찮다고 한다. 오,,, 스위치가 켜지는듯 했지만 이건 섞어마실 수 있으니 용인한다. 그래서 모두 시킨다. 소주는 의외로 쉽게 결정났다. 참이슬을 시켰다. 맥주는 뭐 마실까하니, 아무거나란다.



아.무.거.나. 스위치가 켜졌다.



냉장고를 바라보고 사장님한테 말했다. 음,, 그렇다면 저 맥주들을 일단 한 병씩 다 주세요라고 하였다. 카스, 하이트, 오비, 테라, 클라우드, 칭따오 죄다 깔아두고선 이것들을 구별한답시고 큼큼대며 마셔댔다. 그리고 맛을 다시 비교해보자고 한바퀴를 더 돌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저녁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아뿔싸, 특이한 취향을 즐기기 위해서는 적잖은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 취향 때문에 싸우는 것이라면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나마나하게 만들어야지.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면 취향으로 투닥거릴 일이 없다. 취향의 무화(無化) 또한 취향이라면 그야말로 특이한 취향이 아닐는지, 나의 특이한 취향이란 이런 것인가.



Written by. 공교롭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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