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다르게 적힐 말들, 23년 4월
「씁쓸한 3월」 , 김심슨
누군가 취미를 물어볼 때 산책을 빠트리지 않고 얘기하곤 한다. 보통 취미에는 뜨개질, 악기 연주 등 업무와 연관성은 적고, 돌아오는 결과물보다 행동을 하는 그 자체에 집중하는 일들을 얘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난 취미를 이야기할 때 얘기를 하든, 하지 않든 산책을 떠올린다. 특히 볕이 너무 강하지 않고 미풍이 살살 부는 날 가볍게 푹신푹신 걷는다고 하나, 그런 산책을 좋아한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햇빛에 조금씩 반짝이는 것도 좋다. 그 가운데 좋은 사람 혹은 편한 사람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걷고 있자면, 어제까지 사정없이 흔들리고 동요하던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중요한건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 순간들이 모여 일상의 곡선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뾰족하게 높고 낮아지는 일상의 이벤트들을 곡선으로 이어주는게 나에게는 산책인 것이다. 실제로 햇빛 좋은 날에 산책하는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글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꼭 거창한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산책을 런닝하듯 앞만 보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걸을 수도 있고, 주변에 자연의 미물과 영물을 보며 걸을 수도 있다.
누군가와 얘기하면서 산책은 대화를 거들 뿐인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은연중에 본인을 위한 길을 찾아가게 되는거다. 정처없이 길을 걷고, 산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본인 자신을 위해, 혹은 가까운 사람을 위한 길을 찾아가게 된다. 그걸 무의식에 심어주는게 산책일거라고 짐작한다. 운이 좋으면, 생각지 못하게 귀여운 다람쥐를 보게 될 수도 있고, 해맑게 나를 보는 동네 강아지를 볼 수도 있다.
산책을 하러가는 길이 아니었는데 산책이 된 적도 있다. 분명 목적을 가지고 이동하는 중에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정류장에 놓여있던 길쭉한 나무의자에는 주황색 원색의 옷을 입은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날씨가 꽤 좋은 날이었는데 그 모습이 꽤 평화로워 보였다. 평소라면 서서 버스를 기다렸겠지만, 의자 반대편에 괜히 앉아보았다. 강하지 않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도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날씨 좋은 날 걷다가 잠시 쉬어가야지’ 하고 생각을 했다. 이내 할머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가며 길을 걸어갔다. 버스를 기다린게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 할머니는 여전히 그 발걸음으로, 그 속도대로 걸어가는걸 봤다. 그 이후 일하러 카페로 가는 길도 나에겐 산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