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로 사는 호주 이민자 이야기
그때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까지 생생한 걸.
뭐야 이 XX, 이거 미친놈인가...
해리는 나의 레스토랑 수다의 초기 손님 중 한 명이었어. 지금은 4년 차라 어떤 손님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오픈 1년까지는 손님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엄청 일희일비하고 그랬거든.
오픈 후 얼마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해리가 친구와 함께 들어왔어.
나는 평상시대로 주문을 받으러 테이블에 갔지. 해리가 말했어.
저기...여기서 제일 맛없는 거 주세요.
나는 순간 발끈했어.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가게의 오너쉐프라 패기가 흘러 넘칠 때였지. 아니 지금 이 XX가 시비 거나 싶은거야.
네? 뭐요? 여기 맛없는 거 없는데요?
그런데 시비를 건다고 보기에는 상대편이 너무 당황하는 게 느껴지는 거야. 해리가 손을 내저으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어.
아니 그게 아니고... 진짜~ 진짜~ 맛없는 거, 아무 거나로 주시면 되는데...
나는 슬슬 꼬라지가 나기 시작했지. 이 XX가 장난하나, 아니 여기 맛없는 거 없다니까?
더러운 성질머리가 얼굴에 슬슬 나타나는 걸 보며 해리가 다급하게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어.
제가 사실은 바리스타인데요. 이번에 호주 바리스타 챔피언쉽 대회 준비 중이거든요. 제가 하는 게 컵테이스팅이라 맛을 구분해야 해서 혀를 예민하게 하려고 대회 준비하는 중에는 아무런 맛이 없는 음식만 먹어요...아무런 간이 안되어 있는 음식을 찾는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ㅠㅠ
그렇게 나는 해리를 알게 되었고, 우리는 금방 친해졌어. 다른 분야이지만 같은 요식업에 뼈를 묻고 있고 말이 잘 통하는 또래였으니까. 얼마 후 난 내가 정말 아끼는 친구를 해리에게 소개하여주었고, 2년간의 연애 끝에 그 둘이 결혼을 하면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지.
처음 그를 만난 날의 일화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해리는 열정적이야. 누구나 인정하는 노력파지.
대회 날 최고로 예민한 미각을 만들기 위해 대회 전 100일간, 정말 아무런 맛이 없는 음식만 꾸역꾸역 먹는 해리를 보면 혀가 내둘러질 정도거든. 오래간만에 만난 해리가 피골이 상접하면 '아, 바리스타 챔피언쉽 시즌인가보다'라고 생각하면 돼. 반대로 살이 포동 하게 오른 상태의 해리를 만나면 '아, 시즌이 드디어 끝났군.'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지.
그렇게 별난 노력으로 해리는 첫 도전하는 호주 바리스타 챔피언쉽에서 테이스팅 부분 호주 전국 1위를 하였어.
그렇게 호주 내셔널 챔피언이 된 해리는 종종 스웨덴, 중국, 파푸아 뉴기니 등의 나라에서 열리는 월드 챔피언쉽에 초청받아서 참가하기도 해.
'다 공짜로 간다고!?' 부러워서 죽으려고 하는 나에게 해리는 늘 웃으며 말해.
난 이상하게 세계 대회만 나가면 빛의 속도로 광탈이야~ 나는 국내용인가 봐. ㅋㅋ
그래, 겸손한 노력파. 해리는 겸손한 노력파야.
내가 왜 해리를 이렇게 평가하는지, 너도 조금은 알 거 같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멜버른에서 가장 바쁜 카페 중 한 곳으로 출근하여 손목이 시리도록 커피를 내리고, 틈틈이 대회 준비에, 대회를 준비하는 후배들 트레이닝에, 생두 회사에서 맡은 일까지 봄날의 꿀벌처럼 언제나 바쁜 해리를 이제 4년째 보는 나는 단 한 번도 해리의 찡그린 표정을 보지 못했어. 심지어 대회 준비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게 한정되어있는 해리 앞에서 내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아구아구 먹어대도 허허 웃는 해리야.
그런 해리를 볼 때 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바로 이런 거구나.
오늘은 그런 해리가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올해로 커피 경력 9년 차, 호주 생활 5년 차의 호주 내셔널 컵테이스팅 챔피언, 바리스타 고현석. HARRY GO.
순둥한 얼굴에 누구보다 독한 면이 숨어있고, 힘들게 높은 위치에 올랐어도 화려함을 쫒지 않는 겸손한 남자 고현석이 들려주는 '한국에서 온 바리스타가 호주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현직 바리스타 혹은 바리스타로의 진로를 계획하고 있으면서 해외로의 진출을 꿈꾸는 친구가 있다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꽤 될 것 같아서 편집을 하면서 나도 뿌듯했어.
오늘의 이야기도 재미나게 읽어줘!
A (앨리스) : 해리야 안녕, 자기소개 좀 해줘!
H (해리) :안녕 난 해리라고 해. 한국 이름은 현석. 고현석이야. 커피 업계에 종사한 지 9년 차가 된 바리스타고 호주에 온지는 이제 5년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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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넌 멜버른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
H: 현재는 멜버른 시티 FLINDERS LANE에 있는 DUKES에서 바리스타로 근무 중이야. 그리고 베넷이라는 커피 생두 무역회사에서 제품 샘플 로스팅, 그리고 퀄리티 체크를 하는 커퍼로 일을 하고 있어. 그 외에도 한국 커피 잡지에 객원기자로 기사를 쓰기도 하고 한국에서 커피용품을 수입을 해서 팔아볼 준비도 하고 있어. 바리스타 챔피언쉽 대회가 있을 때는 직접 출전하기도 하고 혹은 대회를 준비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트레이닝을 해주기도 해. 호기심이 많아서 커피에 관련된 일들이라면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일들을 해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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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아! 말만 들어도 정신없다. 커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H: 막상 한국에서 커피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까지 올 줄 몰랐어. 정말 별 생각이 없이 시작했거든.
내 인생은 보면 '무작정'으로 시작해서 '무작정'으로 끝나. 뭘 모르니까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꿈꾸고 무작정 들이대는 거야. 아무튼 어릴 때 나는 그냥 무작정 나중에 내 가게가 갖고 싶다는 생각 하나였어. 그래서 와인바랑 카페에다가 이력서를 넣었었어. 뭐 아무것도 없이 제주도에서 올라온 섬 촌놈의 그때 막연한 생각으로는 그런데서 일단 일을 열심히 죽자고 하면 나중엔 나도 그런 가게를 하나 갖게 될 것 같았던 거지. 진짜 현실감각도 없고 철딱서니가 없었어. (지금도 딱히 많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력서를 돌린 곳들 중에서 카페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나는 그래서 커피업계에 발을 들였어. 아마 그때 와인바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다면 아마 지금쯤 저기 저 프랑스에 있는 포도밭에서 열심히 포도 따며 와인을 빚고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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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래도 좋으니까 계속했나 보네. 커피일이 막상 해보니 좋고 잘 맞았어?
H: 응, 처음에는 마냥 좋았어.
커피일이 좋았다기 보다는 그때는 내가 만든 무언가를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는 사실이 좋았어.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사실 박봉이라 돈은 많이 못 벌어. 하지만 즐겁게 일했고 가진 것들을 고마워하며 행복하게 사는 법을 그때 나름 배웠던 것 같아. 그러다가 20대 후반의 어느 날 문득 ‘언제까지 이렇게 안주하며 살 수는 없겠구나 ‘란 생각이 들더라고. 여기서 멈춘채로 계속 '나름 괜찮네' 하면서 30대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어. 그때의 나에게는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했고 그게 호주워킹홀리데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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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렇게 호주에 왔구나. 호주에 와서 계속 바리스타 생활을 이어간 거야?
H: 무작정 와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5년이라는 시간을 호주에서 보냈네. 그중에서 4년 반을 오직 커피와 관련된 일을 했어. 정말 행운이지. 하지만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려서 바로 커피 일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어.
무작정이라는 말이 사실 쉬운 말은 아니잖아. 그런데 난 언제나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야. 저 말을.
이왕 떠나는 거 2년은 있어야겠다 싶었어. 세컨비자를 따려면 농장 일을 해야 하잖아. 그래서 찾아보니 커피농장이 호주에 있더라고. 사실 호주가 아니었으면 에티오피아에 있는 커피농장에 가려고 했었거든.
'오, 그럼 호주 커피농장에서 세컨비자도 따고 커피를 더 배워야겠다!'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정말 무작정 오자마자 커피 농장이 있다는 지역으로 향했어. 그런데 호주 커피농장은 직원을 많이 뽑지 않더라. 90% 기계식이라 사람 손이 많이 필요 없어서 아예 안 뽑다시피 해. 일을 못 구하니까 돈이 금방 다 떨어지고 갈 데도 없었지.
무모했던 그 '무작정'이라는 단어에 책임을 져야 할 때, 바나나 농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 커피랑은 상관없지만 뭐 어쩌겠어. 감사히 6개월간 일하고, 드디어 2012년 5월에 커피의 수도라는 멜버른에 오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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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자마자 커피 일을 바로 시작한 건 아니었구나. 나는 호주에 커피농장이 있는지도 지금 알았어! 뭐 알아본 것도 없이 호주에 커피 농장이 있다는 것만 보고 거기서 일하려고 호주에 오다니, 너도 참 대책 없다. 그래서 멜버른에 와서는 커피 일을 다시 하게 된 거야?
H: 난 그러려고 했지. 솔직히 한국에서의 짬이 있으니 바로 취업이 될 줄 알았거든. 근데 또 착각한 거야, 또!
영어는 한참 딸리지, 그렇다고 커피를 완전 누가 봐도 막 감탄할 정도로 잘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한국이랑 다른 멜버른의 커피 스타일도 잘 모르던 나는 평범한, 아니 평범조차 안 되는 흔한 바리스타였어. 내가 배우고 공부했던 것들이 커피 지식의 전부인양 자만하고 좀처럼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는 이 작고 평범한 아시안 바리스타를 누가 좋다고 뽑아줬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입장을 바꿔 보면 나라도 나를 안 뽑았을 거야.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좋은 바리스타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력서를 돌리고 돌려도 연락이 없었어. '무작정' 이력서를 열심히 돌리면 나 정도면 쉽게 일 구 할 수 있겠지 라는 순진한 생각을 책임져야 할 때가 온 거야. 바나나 농장에서 벌어온 돈은 금세 바닥을 보이고 나중에는 잠도 안 오더라. 이제는 정말 다 포기하고 돌아가야겠다 할 때쯤에 연락이 왔어. 면접을 본 곳들 중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견습생부터 시작하겠다고 한 데가 있었거든. 그곳에서 연락이 온 거야.
견습생이라 돈도 정말 적게 받았고 허드렛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나는 다시 커피 머신을 잡을 수 있었어. 로망이었던 외국에서의 바리스타 라이프가 드디어 시작이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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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 그랬구나. 처음부터 잘 나가는 바리스타로 호주에 와서 계속 쭉 잘 나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일은 어땠어? 멜버른에서의 바리스타 생활이 너한테 잘 맞았어?
H: 아마 아는 사람들은 알 거야. 멜버른이 커피와 카페 문화로 굉장히 유명하다?
난 사실 전혀 몰랐어. (A : 나도 몰랐어!) 일을 하면서 보니까 커피 소비량도 많고 유명한 카페들도 많고 호주의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도시이더라구. 내가 유명한 것도 아니고 여기가 커피로 유명한건데 내가 막 자부심이 생기고 그러는 거야. 멜버른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커피 잡지에다가 멜버른의 커피 문화를 알리는 칼럼을 썼고 호주에 있는 바리스타들과 교류를 하고 정보를 주고 받게 됐어. 그리고 서로 일자리를 소개하고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멜버른 한인 바리스타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면서 점점 멜버른의 커피업계에서 발을 넓히게 된거지.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점점 커지는 게 맞긴 맞나 봐. 예전엔 내가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더 좋은 곳,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 그리고 그 전에는 생각도 못해봤던 바리스타 대회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들었어. 그때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바리스타 챔피언 형들이 있었거든. 그 형들한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대회를 준비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우승을 하게 된 거야. 스웨덴에서 월드 챔피언쉽이라는 세계무대을 처음 경험해보는 것을 시작으로 연달아 중국과 파푸아 뉴기니도 초청을 받아 다녀왔지. 그렇게 나는 멜버른의 커피인으로서의 경력을 차근차근 쌓았어.
멜버른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정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흔한 바리스타였어. 하지만 멜버른에서 본격적으로 내 커리어를 넓혀나갔고 그동안 치열한 성장기를 겪으며 지금의 경력을 얻은 거지.
한국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신감과 넓은 시야를 얻었어. 나는 멜버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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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국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과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 것 같아?
H: 먼저 가장 두드러지는 건 하면 확실히 임금이 차이가 나.
그리고 한국에서 바리스타라고 하면 서비스업에 가깝지만 호주에서는 기술직 대우를 받거든.
그리고 손님과의 관계가 확실히 다르지. 한국에서 이 쪽 직업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영어는 아무래도 언어의 성격 자체가 상호존중이라 손님과 반말로 동등하게 소통을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보니까 호주에서의 손님들을 대하는 것이 훨씬 편한 감은 있어. 그렇지만 아무래도 한국인만의 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어서 한국에서는 한번 친해진 손님들과는 엄청 끈끈하게 친해졌거든. 호주에서도 친해져서 가끔 밥도 먹고 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친했던 손님들이 기억에 더 많이 남기는 해.
결론적으로 나는 커피 일 자체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양국에서 일하는 것 다 좋았어. 하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비전으로 본다면 한국보다는 호주가 아무래도 조건이 더 좋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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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매년 대회를 준비하는 너를 보면서, 진짜 순하게 생겨서 독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무슨 곰도 아니고, 백일 동안 먹고 싶지 않은 음식만 먹으며 미각을 단련하는 고해리. 너를 처음에 그렇게 만나서 그런지 나는 너를 생각하면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 호주 국가대표로 바리스타 챔피언쉽을 준비하고 하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어?
H: 솔직히 대회를 앞두면 정말 힘들어. 주변에서 도움도 많이 주고 응원도 넘치게 해줘서 힘이 나지만 그 것과는 별개로 당사자가 느끼는 외로움은 오롯이 본인의 몫인 거야.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노래 틀어놓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 그나마 그런 노력이 입상으로 보상받으면 그 고생들은 다 잊히지만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낼 수는 없잖아. 나의 노력에 비해 성과가 안 나왔을 때 그 허탈함은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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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런데 왜 계속하는 거야? 그렇게 힘들면 안 하면 되잖아.
H: 그러기에는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은 걸.
나도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대회를 하면서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자꾸 도전하게 돼.
전 세계에서 날고 기는 바리스타들이 눈앞에서 보여주는 기술들을 내가 익힐 수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선수, 심사위원 등 관련 직종의 사람들과 좋은 네트워크도 만들어 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소명감이 성취되면서 오는 희열 같은 것을 끊기가 힘들어.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나에게 사실 이 업계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거거든. 커피맛과 테크닉같은 실력을 갈고 닦기 위해 계속 정진을 하다보면 스스로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 내 안에 쌓이는 것을 느끼게 돼.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 질문들을 천천히 고찰해 보는 시간들을 갖고 내 나름의 답이 나왔을 때 그걸 선보이는 순간이 나에게는 대회의 무대 위 인거야. 심사위원들에게, 대중들에게 나의 메세지를 전하는 기회인거지. 컵테이스팅은 사실 이제 졸업했어. 올해는 진규라는 동생이 자랑스럽게도 우승을 했거든.
나는 지금 새로운 분야에 도전 중이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맛이 필터커피라서 브루어스 컵을 준비하고 있어 .브루어스는 작년 호주 4위를 하였고 그리고 올해에는 멜번 예선 4위, 전국 6위의 성적을 내서 내년에 열리는 본선 대회를 준비하는 중이야. 나보다 훌륭한 친구들이 많아서 역시 우승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 소기의 목적은 운이 좋게도 항상 달성하는것 같아.
그래, 네 말대로 대회 준비는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들 정도로 힘들어.
하지만 아마 펑펑 울면서도 나는 계속 새로운 대회를 준비하고 도전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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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바리스타 챔피언쉽 우승자가 되고 나니 뭐가 막 달라지고 그런 거 없어?
H: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3년 전 처음 챔피언이 됐을 때 내 경력과 지식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졌던 것 같아. 나는 컵 테이스팅을 열심히 연마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우승자가 되었는데, 다른 선수들은 컵 테이스팅만 잘하는 게 아닌거야. 대단한 경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엄청난 사람들이 많더라. 나도 내 딴에는 노력을 한다고 했지만, 과연 내가 챔피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자문을 많이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주어진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도록 내실을 다시고 내공을 쌓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지.
월드 바리스타 대회를 출전할 때는 챔피언이 아니고 그냥 또 한 명의 국가대표 선수일 뿐이야. 각국의 국가대표 타이틀로 참가한 선수들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지.
우승을 해서, 챔피언이 돼서 뭐가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어. 그냥 조금 더 내가 하는 말에 신뢰가 생겼달까? 내 의견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은 사실이야. 나는 이제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 구만리니까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당분간은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해.
그래도 이쯤이면 됐다고 자만할 수는 없지. 냉정하게 말하면 챔피언은 매년 나오는 거잖아. 앞으로 정진하지 않으면 이런 타이틀도 금방 잊힐 거라고 생각해. 결국에는 화려한 타이틀보다는 진짜 내공이 중요한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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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회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아.
호주에서 자리를 잡으며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어?
H: 이민을 결심하던 시기 쯤이었던 것 같아. 2년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기였어. 일하던 카페에서는 자리를 잡았을 때였지. 호주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막막한 생각이 들었어. 내가 커피를 계속할 거라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한국보다는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한 호주에서 계속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거야.
내가 여기서 살아볼까? 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일하던 곳이랑 스폰서 비자를 놓고 협상을 하면서 서류를 준비했어. 호주 생활 겨우 2년 차인 나와 규모가 크지 않은 곳이었던 일하던 카페는 호주 이민성이 원하는 자격요건을 맞추는 게 아슬아슬했거든. 그래서 어쩔 수없이 일단은 학생비자를 신청해야했어.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금전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 인생에 중요한 순간인데 자의 보단 타의에 의해서 굴러가는 느낌이었달까. 무력감도 많이 느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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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국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친구들 중에 호주로의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
그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H: 많은 한국 바리스타들이 매년 호주로 오고 있어. 무식하게 '커피농장에서 일해야지~' 하고 덤벼든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다들 너무 실력도 좋고 준비도 많이 하고 오는 것 같더라. 대단한 것 같아.
인터뷰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항상 같은 말을 하거든. 내가 몸으로 부딪혀보니까 알겠더라고.
영어는 정말 아무리 준비해서 와도 지나침이 없어. 영어를 꼭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하고 왔으면 좋겠어. 커피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로 면접을 봐야 커피 실력을 보여줄 기회도 생기는 거잖아. 바리스타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은 기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 한국인의 무기인 성실함에 실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겸비하면 분명히 좋은 성과를 거둘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실패를 많이 하고 많이 넘어질 각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각오가 중요해. 운이 좋아서 일이 잘 풀릴 수도 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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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으응, 해리 정말 고생도 많이 했고 많은 걸 느끼면서 성장했구나. 이 누나가 마음이 뿌듯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면?
H: 얼마 전 나는 멜버른 커피업계에서 유명한 회사에서 로스터로 같이 일해보자는 오퍼를 정중히 거절했어. 너무 좋은 기회였지만 아직 한 군데에 묶이기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많은 걸 경험하고 싶거든. 대신 멜버른에서 가장 바쁘고 커피 잘하기로 유명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를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병행하고 있어. 그리고 내년 3월에는 호주 바리스타 챔피언쉽에 다시 한번 출전할 생각이야.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무작정' 하며 앞으로 걸어갈 것 같아. 세세한 계획을 짜지 않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마음에 닿는 선택을 해왔지만 다행히도 대체로 좋은 선택들이었던 것 같아서 감사해. 물론 다 좋은 선택은 아니었고,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지금 큰 문제가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택한 길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도 전혀 답은 없지만 그래도 크게 두렵지 않은 이유는 앞으로도 내 선택을 믿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야. 대신 맹목적으로 믿지 않고 꾸준히 나의 일을 열심히 해야겠지. 또 다른 기회를 만나려면.
생각해보면 결국 멜버른에서 커피를 하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이 나를 여기로 이끌어왔어. 한국에서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나였는데,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걸 통해 내 반려자를 만나고, 여기까지 기회를 받고 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행운이라고 나는 생각해. 아직까지는 호주라는 땅에서는 조금만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다면 좋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 같아. 그걸 믿고 나도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내 긴 글을 읽어 줘서 너무 고마워. 만약 혹시라도 멜버른에 오게 된다면 내 커피를 마시러 꼭 와 주었으면 해. 어떤 커피업계에서 일을 하던, 손님과 대면하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
항상 응원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친구들! 커피는 맛있게 준비해놓을게!!
https://soundcloud.com/livinginmelbourne/livinginmelbourne-s02
놀러와, 인스타그램을 타고!
해리 : HARRYHSGO
앨리스: ALICEINMELBOURNE
SUDA: SUDAMELBOURNE (멜버른에 있는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NEMO: NEMOMELBOURNE (멜버른에 있는 앨리스 팀 두 번째 레스토랑)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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