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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버른앨리스 Jan 04. 2018

리본 헤어 오빠의 호주 정착기 by 카이

미용인으로 사는 호주 이민자 이야기


호주에서 우리 같은 보통의 청년들이 

주로 선택하는 기술이민의 양대산맥은 요리와 미용이야. 요리사인 내 경험을 바탕으로 요리 유학과 이민 이야기를 많이 하였으니 이번에는  '미용'을 이야기해보자.  미용인으로 호주에서 살고 있는 리본 헤어의 원장, 카이의 이야기를 들어볼 거야.


카이는 40대 초반, 미용경력 18년, 호주 생활 10년 차인 오너 헤어디자이너야. 

현재 멜버른 시티의 2층짜리 헤어/뷰티숍 - 리본 헤어를 운영하고 있어. 


카이의 리본헤어는 우리 가게 쉐프 동생들의 단골 헤어숍이야. 나의 레스토랑 수다와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아무래도 남자 원장이 운영하시는 곳이라서 그런가, 남자 머리를 잘하기로 유명하거든. 개인적으로 카이와 친하진 않지만 멜버른 시티에서 각자의 가게를 운영하며 이웃으로 공존하는 동료 한인 사업가로서 무언가 유대감이 있어. 


오늘 들려줄 카이의 이야기는 그가 미용카페에 연재한 '후니의 호주 정복기'에서 발췌를 많이 했어. 카이와 이야기를 나눈 것을 정리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카이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써 내려간 호주 정착기에서 따왔지. 호주에서 적응하느라 힘든 와중에도 자는 시간을 쪼개서 꾸준히 본인의 경험담을 연재했을 카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더라.  뒤에 오는 후배들은 고생을 덜 했으면 하는 마음이 나한테도 느껴졌거든. 


미용을 하고 있는, 그리고 혹시 미용으로의 유학이나 기술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꼭 카이의 글을 잘 읽어보면 좋겠어. 오늘 읽을 짧은 글로는 카이가 전달하고 싶은 말들이 다 담겨있지 않을 테니 혹시 카이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미용 커플 (다음 카페)에서 후니의 호주 정복기를 검색하면 전 글을 볼 수 있으니 참고해!


그럼, 이제 멜버른의 자랑스러운 헤어디자이너 카이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A (앨리스) : 안녕 카이, 반가워! 나는 요식업에만 너무 오래 종사를 해서 이쪽 업계 사람들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 다른 업계의 청년 이민자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지 못해서 오늘 너의 이야기가 정말 기대돼.

우리 일단 아주 처음부터 이야기해보자. 넌 미용을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됐니?


K (카이) : 안녕, 앨리스! 나도 반가워. 

내가 미용을 시작한 것은 18년 전쯤의 일이야. 오래됐지? ^^ 나는 1999년 2월 군 제대를 했어. 

삼수를 하는 바람에 군대를 좀 늦게 갔거든. 군대에 있을 땐 전역하면 다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복무기간 동안 가세가 기울어버린거야. 크게 부유함을 누리지는 못했어도 가난한 환경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현타가 좀 왔었어. 돈이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참 많더라. 내가 뭐든지 너무 안일하고 편하게만 생각했구나 싶었지. 

그래서 전역하자마자 일용직으로 아무 일이나 하기 시작했어. 건설 쪽 잡부로 페인트 일을 배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오더라. 돈 많이 준다는데 뭐를 못하고 어디를 못 가겠어. 당장 여권을 만들고 출국할 준비를 했지. 그때의 내 나이는 24살이었고, 대학 진학은 이미 깔끔히 포기한 상태였어.

소식을 들은 이모가 밥을 먹자고 불러내셨어. 나를 보시고는 다짜고짜 물으시더라.


"너 리비아 간다고? 너 공부 안 해? "


"이모도 사정 아시잖아요. 저 그리고 공부하는 거 제 취향 아니에요. 저 그냥 기술 배울래요"


"그래, 알았고. 잠깐 이모랑 어디 좀 가야겠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이모를 따라 나셨어. 이모는 당시에 개인 헤어숍을 20년째 운영하시는 중이셨거든. 재료상을 몇 군데 들리시는 거 같더니 어떤 건물로 들어가시더라. 나한테는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나오셔서는 영수증 같은 걸 주시는 거야.


"이게 뭐예요?"


"너 기술 배우고 싶다며? 미용 한번 해봐. 일단 해보고 재미없으면 그때 리비아를 가든 니 맘대로 해."


"저 리비아 가야 하는데요..."


"못 간다고 해. 여기 4개월 과정 자격증 취득하는데야. 학원비는 전부 납입했으니깐 다음부터는 알아서 하고"


그날 집에 돌아와서 참 많은 생각을 했어. 미용이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거야. 그때 당시에는 이 업종의 종사자 중 여자의 비율이 지금보다도 훨씬 높았거든. 바보같지만 그 때의 나는 미용은 여자들이 하는 직업이라는 고정관념이 좀 있었어. 이 길이 과연 나에게 맞을까, 괜한 모험심으로 시간만 낭비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야말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고 설레더라. 첫 수강일이 기다려지는 거야. 불안한 마음을 누를 정도로.

에라, 모르겠다.  페인트 업체 사장님에겐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리비아행을 엎었어. 그렇게 나는 미용계에 첫발을 들였지.



-

A : 나는 언제나 가위를 들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너의 모습만 봐서 그런지 '미용실 원장'이 아닌 카이의 모습은 상상이 잘 안가.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가 우연히 미용을 시작하게 된거였구나!


K : 으응, 앨리스 네가 요리를 시작한 과정과 비슷한 것 같아. 딱히 다른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닌 와중에 우연히 미용기술을 배울 기회가 온거지. 아마 당시에는 어떤 기술이라도 배울 수 있었으면 배웠을 거야.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내 와이프는 어릴 때부터 헤어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열정적인 케이스야. 그래서 자기같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냥 좋아하지도 않는데도 시작한 사람들은 열정이 덜 한 것 같다는 말을 가끔 하거든.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야. 미용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없이 그냥 기술 배워서 먹고살려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 참 많거든. 그런 사람들은 기술적으로는 완벽할 수 있어도 손님과 소통해야 하는 그다음 단계에 가면 막혀버리고 미용의 기본을 잊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오래 하기 힘든 일이야.

나는 우연히, 사실 거의 강제로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용이 좋다 싫다조차 없었어. 처음 2년은 오기로 매달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일만이 가진 매력을 알게 되었고 점점 재미있어지더라. 재밌어지니까 자연히 더 열심히 매달리게 되고, 더 배우고 싶어서 유학도 다녀오고 하면서 점점 연봉도 늘고 어느새인가 내가 원하는 위치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 신기하게도.




-

A : 사실 호주에 오기 전의 너는 한국에서도 유학파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였잖아. 실력과 경력을 인정받아서 돈도 잘 벌고 있었고. 그런데 왜 갑자기 호주로 오게 된 거야? 이민을 생각하고 온 거야?


아니 전혀!

오로지 유학이 목적이었어. 그것도 나의 유학도 아니고, 여자 친구를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하려고 따라왔지. 

이민은 생각지도 못했었어. 그때 당시에는.

2006년 현 와이프인 여자 친구를 만났어. 결혼을 염두에 두고 진지하게 연애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녀가 미용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하는 거야. 그 마음은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어. 나도 힘들게 일본으로 미용 유학을 다녀온 후였으니까.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알아봤지. 그녀가 가고 싶어 하는 미국 시카고 피봇포인트 본사가 있는 곳을 알아봤는데 미국은 별로 가고 싶지가 않더라. 여자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 총기와 치안 문제가 가장 마음에 걸렸어. 알아보는 과정에서 피봇 분교가 호주 멜버른이라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유학생으로 가는 여자 친구를 따라갈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이 가능하기도 했어. 망설일 이유도 없이 멜버른행을 결정했어. 

이 곳에서 내가 이민자로서, 헤어숍을 운영하는 오너 미용사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인생 2막을 살게 될 줄 그때는 꿈에도 몰랐지.



-

A : 대단하다. 완전히 사랑꾼이네. 근데 이유야 어떻든 무작정 여기 와서 힘들지는 않았어? 영어를 할 줄 아는 상태에서 온 거야?


아니 진짜 한마디도 못했어. 헬로우, 땡큐 뭐 그런 수준.

나는 한국에서 미리 일할 곳을 찾아놓고 왔거든. 경력이 아무래도 빵빵하다 보니까 일하러 오라는 곳은 많더라. 호주 도착 3일 차에 첫 출근을 했어. 별로 영어에 대한 긴장감이 들지는 않았어. 한인 사장이 운영하는 미용실이라 스텝이나 손님들도 다 한국 사람들이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사장님도 경력자로 대우를 해주느라 그러셨는지 별다른 지침이 없이 나는 어영부영 첫 손님을 받았어.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 

나의 호주에서의 첫 손님은 코가 높고 통통한 숱이 매우 적은 금발의 호주 할아버지였어. 같은 아시아 계열이면 조금 나았을까, 처음으로 호주 현지인과 1대 1 대면을 하게 되니까 엄청 긴장되더라. 손짓으로 안내해서 샴푸대에 눕혔어. 스텝 시절 샴푸의 신이라 불렸던 나는 일단 첫 관문은 자신이 있었어. 가벼운 두피 마사지를 받으신 할아버지도 굿~ 하면서 엄지를 치켜주시더라고. 

여전히 긴장된 상태로 커트 준비를 했어. 영어는 일단 익숙해질 때까지 걱정 말라고 하시던 사장님이 어느새 옆에서 통역을 해주시더라. 들리지는 않는 와중에도 '넘버 원~ 넘버 투~"라는 단어들이 들어왔어. 무슨 소리지, 서열을 말하는 건가. 나는 넘버 3이라서 나한테는 커트를 받기 싫다는 말인가? 내 머리 속은 엉키기 시작했지.

손님과 대화를 마치신 사장님이 내게 말했어. 


"옆에는 넘버 1로 해주시고, 위로 갈수록 넘버 2로 하시고 윗머리는 그냥 조금만 잘라주시면 돼요."


흠... 그러니까 넘버 1이 뭐냐고 ㅠㅠ


경력자로서 기본적인 질문은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사장님에게 물어봤어. 넘버원 넘버 투가 뭔가요? 사장님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으로는 그것도 몰라? 하는 눈치로 설명해주시더라.

넘버 1은 3미리, 넘버 2는 6미리, 고로 넘버 3까지 있대.


"아~네 알겠습니다"


경력 8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어. 처음 만져보는 서양인의 머리카락은 한국 사람들과 비교도 안되게 얇고 힘이 없었어. 거기다가 숱도 없는 금발인지라 조금만 비뚤어져도 확 비어 보이는 거야.

주체할 수없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빗을 대며 커트를 했어. 남자 커트는 최대 25분을 넘겨본 적이 없었는데 40분이 걸렸어. 평가를 앞두고 그렇게 떨렸던 적은 디자이너를 달고 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아. 

할아버지가 거울을 보며 뭐라 뭐라 하셨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칭찬인 것 같아서 그때서야 긴장이 풀렸어. 작지만 팁도 받았지. 더욱더 공부해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다시 서비스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어. 

땡큐! 를 외치며 그렇게 첫 손님을 보냈던 기억이 지금도 나.


그 날 사장님에게 미용실에서 필요한 영어 - 손님이 들어온 순간부터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까지 - 를 죄다 적어달라고 했어. 그리고 그 종이가 너덜너덜 헤질 때까지 달달 외우는 것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 문법도 회화도 중요하지만 일단 나는 나의 일에 필요한 생존 영어가 가장 절실했거든. 이 일이라는 게 손님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면 결코 손님을 만족시킬 수가 없는 일이니까.



-

A : 그래, 요식업도 미용도 결국에는 고객과 다이렉트로 소통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참 중요해. 같은 나라 말도 오해가 생기고 소통이 어려울 수 있는데 하물며 생판 모르는 언어로 고객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 말 나온 김에, 너는 영어는 어떤 식으로 극복했니? 


워홀 다녀와서 영어를 자유자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야. 일 년은 택도 없어!

회화도 문법도 엉망진창이었지만 업무에 관련된 영어는 매일매일 반복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하루가 다르게 늘기는 하더라. 그래도 워낙 다문화국가라서 새로운 억양을 접하는 경우도 많고 특이한 손님들도 많아서 가끔 응대가 힘들기도 해. 지금은 샵을 운영하니까 다양한 클레임에 대처해야 하고 스텝 교육도 해야 해서 꽤 수준 높은 영어실력이 필요하지.


나는 어학원은 한 번도 다니지 않았어. 커트와 펌 등에 필요한 문장들은 그때그때 캐치해서 무조건 달달 외웠어. 내 나름대로의 패턴을 만들어서 연습도 하고, 패턴 영어 책과 시디를 사서 매일 출퇴근 때 들었지. 지금까지도 차에서 틀고 다닐 정도로 습관이 됐으니까.  첫 직장에서 사장님께 기초문법을 배웠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 외국 손님들을 매일매일 만나면서 문장을 조금씩 외워서 써먹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허물어갔어. 다행이도 이 직업은 세상 어디에도 통하는 기술직이라서 영어가 물론 중요하지만, 기술만큼 중요하지는 않거든. 그리고 언어도 중요하지만 실전에서는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하는 자세와 센스가 더 중요해.


같이 일했던 한 디자이너 선생님은 영어는 조금 부족했는데 손님들이랑 참 소통을 잘했어. 

그 선생님 옆에서 머리를 하고 있으면 막 이런 대화가 들렸거든.


" 여긴 이렇게 저긴 이렇게 잘라주세요~" (손님)


"이프유 히얼(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숏!!   띠용~"


머리를 너무 짧게 자르면 막 뻗칠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말이 안 나가니까 의성어가 나오는 거지.

또 한 번은 뒷머리를 깔끔하게 깎아달라는 손님에게 뒷거울을 보여주면서 손뼉을 막 치는 거야. 노우 노우, 안된다며 손으로 그러면 뒤통수가 절벽 같아진다는 것을 표현한 거지. 그런데 그 손뼉을 못 알아듣는 손님이 없더라. 진지하게 고개를 끄떡하면서, 그러냐고... 옆에서 나만 웃겨 죽어.

또 한 번은 왁스로 손질하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 디스 파트 유 해브 투.. 츅츅  비코즈 유어 헤어 베리베리 스트롱 슉슉 


세상 진지한 얼굴로 츅츅 슉슉하면서 온몸으로 왁스를 바르는 것을 보여주는데 손님은 감동한 얼굴이야. 머리가 두껍고 삐쭉삐쭉하니까 왁스를 이렇게 발라,라고 한국말로 말하면 간단한데 언어가 안되니 온몸을 사용해서 시범까지 보이고 나서는 기진맥진한 모습이라니..

안 되는 영어지만 진지하게 상황에 임하고, 스텝들 앞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체면보다는 손님과의 소통에 초점을 둔 그 동료 선생님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기보다는 용감하고 멋있게 느껴졌어. 영어는 내가 손님과 소통을 즐기게 되면서 저절로 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 후로는 영어에 대한 노력은 놓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는 줄이고 손님과의 대화를 즐기는 쪽으로 방향성을 두고 근무를 하였어. 




-

A : 맞아 익숙해질 때까지 영어로 손님을 받는 건 정말 긴장되고 어려워. 나도 처음에는 엄청 긴장하고 실수도 많이 했어. 그 때는 뭉개진 발음의 따따따 말하는 호주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섭던지.

네가 만난 호주 손님들은 어땠어? 기억에 남는 사람 이야기 좀 해줄래?


그렇게 미용실에 일한 지 얼마가 됐을까, 참 날씨 좋은 오후였는데 호주 아주머니 한 분이 샵으로 들어오셨어. 늘 하던 대로 샴푸 후 자리로 안내를 하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원하시는지 여쭸지. 여전히 서툴렀지만 손님과의 소통이 가능한 정도로 나의 영어는 향상되어 있었어.


"깔끔하게 다듬어주시고 제 얼굴형에 맞는 길이로 잘라 주세요.."


어깨 정도 오는 어중간한 길이, 사각턱이 두드러져있고 서양인치고 모발이 두껍고 숱이 많았어. 컬러는 기본 6 레벨에 하이라이트를 여러 번 넣은 상태로 모발의 건강도 좋지 못했어.

나는 고민하다가 롱봅을 추천했으며 앞이 길어지는 컨케이브 스타일을 권했어. 서툰 영어로 진지하게, 손님이 내 말을 잘 알아들이실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설명을 했고 손님도 인내심 있게 내 말을 경청해주셨어. 전문가가 더 잘 알 거라면서 나의 어드바이스를 전적으로 신뢰해주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책임감으로 더 열심히 커트를 했던 것 같아. 짧은 영어로 나눈 대화로 그분은 타즈메니아에서 오셨고 멜버른에 사는 동생을 만나러 오셨다는 것들을 알게 되었지.


그렇게 손님은 가셨고 또 정신없이 일을 하며 보내고 3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샵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어.


"카이쌤 편지 왔어. 카이쌤 앞으로. 타즈메니아 에서 온 건데?"


"네? 저 아는 사람 없는데요..." 


온통 영어라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어서 사장님께 번역을 부탁했어. 내용을 듣고 난 나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스럽다는 말이 어떤 감정인지 실감했지. 3주 전에 왔던 타즈매니아의 그 아주머니였어. 나의 서비스에 정말 감동했고 고마웠다는 말, 머리 스타일이 여태까지 한 어떠한 모양보다 마음에 들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며 2주 후에 멜버른에 사는 자기 동생이 결혼식을 하는데 식구들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맡기고 싶다고 예약해 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어. 단정한 손글씨로 써 내려간 마음이 담긴 편지에 얼마나 마음이 따뜻했는지 몰라. 

그 날 이후로 호주에서 내가 미용인으로 살아간 다는 것에 더 큰 자부심을 느꼈고 내 일을 더 사랑하게 됐어.



-

A : 우리가 살고 있는 멜버른이 아무래도 엄청난 다문화 도시이다 보니까 정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다 손님으로 만나잖아. 전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레스토랑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거든. 나 못지않게 너도 너대로 고충이 많을 것 같아. 모발 상태나 선호하는 스타일 같은 게 한국이랑 다르지 않아? 그런 것들은 어떻게 읽어내고 따라가고 있어?


호주에 오기 전에 나는 한국과 일본에서 미용을 오래 했잖아. 동양인들의 모발만 만졌던거지.

두 나라는 사회 특성상 유행을 많이 타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거든. 8년 동안 그런 한국과 일본 미용문화에 익숙해져있다가 여기 처음에 와서는 적응하는데 참 많이 힘들었어. 

호주 미용 문화는 우리나라나 일본보다는 유행이나 퀄리티 면에서 약간 뒤처져 있다고 생각해. 호주 안에서도 아시안 계열 사람들이 더 꾸미는데 관심이 많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야. 한류 열풍 때문에 호주 내 아시안계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을 보고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있거든.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들이 6개월~1년 정도의 갭을 두고 유입되는 패턴이야. 한국이 겨울일 때 이 곳은 여름, 계절 차이도 딱 6개월 정도이고 한국 드라마가 종영되고 수출되는 기간이 보통 그래서 그런 것 같아.

한국보다는 훨씬 따뜻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벼운 스타일이 대세야. 남자들은 대부분 짧게 정돈된 머리나 투블럭을 선호하고. 아직도 모히칸 하는 사람들도 많아. 더운 나라라 시원해 보이는 헤어스타일을 선호하지.

여성 헤어는 조금 더 다양해. 컬러에서 차이가 많이 나지. 블리치를 많이 하고,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 인도, 남미, 아프리칸 계 사람들은 곱슬이 워낙 심하고 컴플렉스가 많아서 스트레이트를 많이 해. 힘들기도 하지만 돈이 되는 손님들이기도 하지. 하하. 정말 모든 기술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거든.


어느 날은 백인과 흑인 혼혈인 듯한 건장한 체격의 호주 남자가 들어와서는 머리를 잘라달라고 하는 거야.

머리는 완전히 마이콜, 전형적인 흑인 곱슬이더라고. 어떻게 잘라줄까 물었더니 머리에다가 손으로 사각형 모양을 만들면서 옆을 짧게, 위로는 사각형으로 만들어 달래. 그야말로 깍두기 머리를 호주 버전으로 해달라는 거야. 옆은 클립퍼로 밀면 되는데 위가 문제였어. 또 머리가 짧으면 안 된대. 8센티로 잘라도 고불고불하게 말려들어가서 2센티밖에 안 되는 머리를 붙잡고 나는 내가 가진 모든 테크닉을 쏟아부었어. 이런 머리도 다듬을 줄 알아야 호주에서 탑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최선을 다했지. 

머리를 겨우 자르긴 했는데 무언가 아쉽더라. 완벽한 사각형이 아니었거든. 그 남자가 갑자기 손질은 자기가 한다고 하면서 드라이로 머리를 털더니 빗질을 하기 시작했어. 눈을 의심할 정도였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곱슬들이 그 남자의 빗질에 정리가 되면서, 완벽한 사각형이 되더라. 정말 신기했어! 머리를 자르기는 잘 잘랐는데 그런 극곱슬을 다듬는 기술이 나는 부족했었던 거지.

그 후로 나는 그의 전담 미용사가 돼서 내가 그만둘 때까지 사각형을 빚어줬어. 내가 자리에 없거나 휴가일 때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맡겨보기도 했는데 본인이 원하는 사각은 나만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나만 찾더라고. 

기억에 정말 남는 손님 중 한 명이야. 너무 특이해서 잊으래야 잊을 수도 없어!


또 한 번은 브라질에서 온 여자 손님이 왔어.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러 오셨다는 거야. 

눈이 번쩍 띄일만큼 아름다운 전형적인 남미 미녀였는데 샴푸를 하고 난 후에는 완전 딴판이라 나는 깜짝 놀랐지. 사각형 아저씨가 문득 떠오르더라고. 사자 한 마리가 의자에 앉아있는 거야. 엄청난 곱슬에 숱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모발도 매우 두꺼워서 손을 어디부터 대야 할지 모르겠더라. 한국에서는 이렇게 두꺼운 모발이나 이렇게 심한 곱슬은 만나볼 수도 없거든.


연화 30분 정도 본 후 늘어난 것 같길래 일단 헹궜어. 머리를 말리는데 느낌이 안 좋아. 열심히 피고 중화 작업을 하고 다시 헹구고 머리를 말리는데,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거야! 머리가 거의 그대로 더라고. 분명히 체크 잘했는데 무슨 일인지 나도 어리둥절했어. 다시 연화를 하고, 중화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장장 6시간이 걸렸어. 나는 안절부절못하겠는데 정작 손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더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는데도 쿨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주셔서 다행이었지. 시간과 들어간 약이 많아서 일반 스트레이트보다 돈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어.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

찝찝하게 그녀를 보내고 나서 나중에 다른 디자이너들한테 설명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어.

원래 오던 손님인데 평소에는 8시간 정도 걸리는 머리래. 돈도 훨씬 많이 들어가는 머리인데, 내가 6시간 만에 저렴한 가격으로 잘 해줘서 엄청 기분이 좋아서 나갔다는 거야.

어쩐지 점심이며 간식이며 다 싸와서 느긋하게 앉아있길래 좀 특이하다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더라고. 그 후로 석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와서 나한테만 시술을 받았어. 나도 극곱슬을 대하는 노하우가 생겨서 점점 더 능숙하고 빠르게 서비스를 해줄 수 있었어.



-

A : 진짜 재밌다. 레스토랑만 재미있는 손님이 많은 줄 알았더니 헤어샵도 흥미진진하구나.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특히 인상 깊었던 게 있어. 호주에 와서 영어를 익히고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하고 재능을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 그 이야기 좀 해줄래?


봉사라는 게 사실 대단한 게 아니야. 미용사 분들 중에는 미용 봉사를 하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 나도 한국에서 봉사를 했었어.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스스로를 돌보기가 힘드시니까,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 펌과 컷을 해드리고는 했었지.

이 곳에 와서 적응하는 동안에 이곳저곳 도움을 많이 받아서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봉사를 꾸준히 하다가 쉬려니 허전하기도 해서 교회를 통해 봉사활동을 다시 시작했거든. 처음에는 멜버른의 노숙인들 식사를 위한 밥차 봉사를 했는데 그때 여기 노숙자 분들을 보니까 식사도 문제이지만 모발 위생상태가 참 심각하더라. 그래서 목사님에게 뜻을 전했고 미용봉사를 멜버른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어.

나와 와이프가 매주 3시간 정도 봉사를 하기로 했어. 노숙자 분들이 70명 정도니까 욕심 없이 각자 매주 10명씩 도와드리기로 했지. 그런데 여기서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더라.

첫 봉사하는 날, 각자 10명은 커녕 두 명도 겨우겨우 마무리했어. 얼마나 당혹스럽던지. 이유는 이 분들이 머리를 몇 년은 감은적이 없어서 빗은 커녕 가위도 안 들어가는 거야! 떡이 있는 대로 져서는 완전 자연 드레그 상태였어. 빗이 두 개나 부려졌다니까. 첫날에.

컷을 희망하시는 대기자 분들에게 다음 주에는 머리를 꼭 감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어. 그 다음 주에는 조금 더 수월하게 다섯 분의 머리를 말끔히 정리해드릴 수 있었지. 

처음에는 낯선 동양인인 우리가 호의를 베푸는 것이 못 미더워서 멀찌감치 구경만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 그러다가 우리에게 커트를 받은 분들이 깔끔해져서 기분 좋게 돌아다니니까 노숙인 무리에서도 변화가 일더라고, 정말 신기했어. 나중에는 목사님이 번호표를 만들어서 나눠주셔야 할 정도로 인원이 늘었어. 

화장실에서 머리를 이쁘게 감고 빗질까지 해서 착하고 얌전하게 기다리는 노숙인분들에게 봉사를 해드리면서 나 또한 호주 사회에 대한 벽을 많이 허물었어. 서로 장난도 치고 친해지면서 영어도 많이 늘었지. 일주일에 하루 겨우 쉬는 날 봉사활동까지 하려니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충만한 시간들이었어.

나의 샵을 운영하는 지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봉사까지는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나의 손이 필요한 곳에 가서 꼭 다시 그런 충만함을 느끼고 싶어.




재기발랄한 카이의 리본헤어 피플들, 할로윈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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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요리사는 많이 먹어보고 만들어 본다는 정공법이 결국은 진짜 실력과 이어져 있다고들 해. 책을 보고 공부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은 요리는 기술이지 학문이 아니니까.  미용 업계는 어떠니? 필드에서 진짜 실력을 늘리는 카이만이 노하우 같은 것이 있어?


내가 처음 미용을 시작할 때는 스탭 출신이 많았어. 직업전문학원 같은 곳에서 나처럼 단기과정을 수료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샵에서 샴푸나 청소 같은 잡일부터 묵묵히 몇 년씩 하는 방법으로 이 업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정석이었지. 대학교에서 정규과정으로 미용을 가르치고 하는 것이 보편화되기 전이었거든. 한국에 가끔 들릴 때면 참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많은 대학 내에 미용학과가 있고, 제대로 된 교육학원도 즐비하고, 유학을 가는 길도 많이 쉬워졌잖아. 후배들한테 더 많은 길이 열린 것 같아서 기쁜 마음이야.


아무튼 우리 때는 학력으로 먹고 들어가는 부분이 별로 없었으니까 무조건 몸으로 때워야 했거든. 샴푸부터 적어도 3년은 배워야 겨우 준디자이너로 가위를 잡을 수 있었어. 그러다 보니 다들 몸으로 미용을 익히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 지금처럼 학교에서 공부로 미용을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으니까.


어떤 것이 더 낫고 아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미용은 몸으로 부딪히는 실전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많이 보고 공부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내 손에 익힌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진짜가 아닐 수 있거든. 예를 들어서 운동을 생각할 때, 모두가 티브이로 경기나 퍼포먼스를 볼 때는 쉬워 보이잖아. 아주 쉽게 훈수를 두게 되지. 왜 저렇게 해?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나였으면 이렇게 하겠다.

그런데 막상 직접 해보면 절대 못하거든? 운동하는 사람들 진짜 몸으로 피나게 노력하고 연습해서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하는 거잖아. 우리가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막상 몸으로 익히는 건 쉽지 않다는 거지.

미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영상으로, 책으로 배운 기술들은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도 그냥 머리에 남을 뿐이야. 그 머리에 있는 것이 정말 내 손에 달라붙어 익숙해지기 전 까지는 진짜 내 재산이라고 볼 수 없거든. 연습과 노력으로 내 몸과 손에 스며들게 한 후에야 조금씩 빛을 발하는 거라고 생각해.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는 스탭 시절에 가장 많을 거야. 스텝일 때는 나의 실수도 책임져주고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옆에 있잖아. 그때 미친 듯이 연습하고 노력해서 모든 걸 흡수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그래야 내가 디자이너 위치에 있을 때 책임을 질 수 있거든. 또 그 위치에서는 그때에 맞는 공부와 노력을 해야겠지만 말이야.

기계처럼 찍어낼 수 있는 단순한 직업이라면 이런 노력까지는 필요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의 일은 마네킹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잖아.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직접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더 정교한 기술과 그 기술을 위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시간이 조금 더 걸려서 답답하더라도 나중을 생각하면 스탭 시절과 준디자이너 시절에 집중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나중에 분명히 빛을 볼 거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야. 디자이너 빨리 달고 진급해서 그때부터 좋은 급여받으면서 경험 쌓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그것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돈을 받고 시술을 받는 손님들은 누구나 멋있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전문가의 손길에 나의 헤어스타일을 맡기는 거잖아. 나의 기술의 퀄리티에 자신이 있을 때 디자이너로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해. 

지금 내 말을 듣고 꼰대 같고 고지식하다고 욕하는 후배들도 있을지 몰라도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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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요리사들도 보면 오래가는 사람들은 직업윤리와 직업 철학이 확고한 사람들이야. 사실 노동계층으로 산다는 것이 그렇잖아.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노동 자체가 비루하게 느껴질 수 있거든. 

나는 오늘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카이라는 미용사는 긴 시간 동안 본인만의 직업철학을 많이 고민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18년 차 미용인인 너에게는 좀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카이 너는 어떤 미용사가 되고 싶니?


처음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망설임 없이 돈 잘 버는 미용사라고 답했어. 미용을 배우기 시작하고 디자이너가 된 초반에는 말이야. 다음에는 손님 많이 받는 1등 미용사가 되고 싶었지, 막연하게 1등이 되고 싶었어.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그다음에 생각했던 것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어.

어느 가게를 가던 그 가게에서 만큼은 최고로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내 목표였어. 내가 일하는 가게에 애정을 가지고 그 가게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매일 출근을 했지. 내가 생각해도 그 때 참 독하게 노력했던 것 같아. 

고백하자면 탑 자리에 오르려면 나는 남들보다 두배로 노력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거든미용인들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 미용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본 요소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두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아.


 기술, 말빨, 그리고 외모. 


나는 사실 못생겼어. 외모로 어필할 수 있는 기대는 버린 지 오래야. 말빨도 내세울 건 못돼. 입 발린 소리 잘 못하고, 낯도 많이 가리고. 거기다가 손도 둔해서 손재주도 특출 나게 좋지 못해. 참 컴플렉스 투성이었어.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것밖에 내가 할 수있는 것이 없었어. 아침 6시에 출근해서 파마 말고, 저녁 12시까지 드라이 연습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고, 연애도 안 했어. (못한 거일 수도 있지만..)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탑 자리에 올라있고 연봉 1%의 디자이너가 되어있었어. 결국에는 꿈에 그리던 나의 샵까지 내게 된거야. 그러고 나니까 어느새 또 생각이 변하더라. 

이제는 손님과 소통을 잘하는 미용인이 되고 싶어. 

여태까지 내가 가진 목표들 - 1등이 되겠다. 돈을 많이 벌겠다. 샵의 탑 자리에 오르겠다 - 는 목표들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거야.  내가 더 잘나가고 더 돋보이고 싶은 내 중심적인 목표들 안에는 '손님'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었어. 

이제는 내 화려한 기술을 뽐내고 나의 목표를 위해 많은 손님을 유치해서 달려가는 것보다는 손님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손님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만족시켜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새로운 목표야.


참 정답은 없는 게 이 미용인생인 것 같아.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미용인의 모습은 계속 바뀌어 가고 있어. 그걸 따라가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꿈이라는 것, 내가 아직도 되고 싶은 미용인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 나를 참 즐겁게 해.  20년의 미용인생에서의 나의 무료함이나 나태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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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요리사들이 호주로 많이 오는 것처럼 한국에서 미용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호주로 많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 호주행을 꿈꾸는 미용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미용을 세 나라에서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이 미용사라는 직업은 한계가 없다는 거야.

어느 나라를 가던 기술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는 전문직이니까! 

언어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사진 한 장이면 모든 것이 통하는, 정말 신기하고도 멋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나는 아직도 해. 그 이야기를 후배들한테 꼭 전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도전하라고. 무모하고 대책 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한국의 미용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막상 해외에 나오면 일을 하고 먹고사는 것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으니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어.


한인 샵, 혹은 현지 샵에서 일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가며 2년 미용전문학교 코스를 밟는 케이스도 정말 적지 않아. 물론 많이 힘들지만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유학을 마치고 호주에 자리를 잡은 동료 미용사들을 나는 수도 없이 알고 있어. 나와 내 와이프, 나의 친동생, 그리고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그 길을 걸었고 현재도 열심히 걷고 있어. 


도전하고 경험하고 노력하면 길은 열릴 거라고 생각해.  우리 일은 기술직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일하고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곳이 세상에 정말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이 곳 호주는 한국보다 아직 기회가 많은 땅이잖아. 학비 때문에 생활은 궁핍할 수 있어도 몸만 건강하고 부지런하다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을 수있을 거야.


후배, 동료 미용사들에게 내가 감히 하고 싶은 말은 일단 해외로 오게 되면 억지로 라도 긍정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스스로를 믿고, 이 멋있는 직업을 믿어보라는 말이야. 

자주 생각하면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분명히 미용인으로서 빛을 볼 거라고 격려해주고 싶어. 


이 미용이라는 거, 너무 사랑스러운 직업이지 않아? 나는 이 직업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 

사람의 마음과 외면을 치유해주는, 너무 사랑스러운 미용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니까 스스로 더 당당하고 용감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제넘지만 꼭 전하고 싶어.


여태까지 내 이야기 들어준 후배님들, 정말 고마워! 

주제넘은 충고에 불편했을지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면 좋겠어.

세상 어디에서든, 네가 원하는 미용인의 길을 걷기를. 

항상 응원할게!





놀러와, 인스타그램을 타고!

카이: RIBBON_HAIR_KHAI
앨리스:   ALICEINMELBOURNE

SUDA:  SUDAMELBOURNE  (멜버른에 있는 앨리스 팀 첫 번째 레스토랑)
NEMO: NEMOMELBOURNE (멜버른에 있는 앨리스 팀 두 번째 레스토랑)



 *답글은 원래 하던 대로 반말로 주고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나도 그게 편하고, 언니 거나 오빠 거나 친구 거나 동생일 너도 그게 편할 거야, 하다 보면!! 물론 존대가 편하면 그렇게 소통해도 좋아 :-)


**공유는 출처를 밝힌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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