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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nt Feb 16. 2023

캐나다 워홀가요 - 2. 못 갈 수도 있겠는데요?

일단 4월에 가보고 생각할게요

23.01.05


휴가도 다녀왔고 새해도 밝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심심찮은 결혼소식과, 친구들의 관심사가 연애를 넘어서 , , 결혼인 것을 보니 이젠 영락없는 20 후반이 는 것 같






사실 10월쯤부터 쓰기 시작한 2/3 점검 글을 탈고만 하다 발행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심경 변화와 고민들이 있었기에 아쉽지만 제쳐두고 지금의 생각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아닌 사람이 있겠냐만은 워홀을 간다는 것, 그리고 가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나에게 생각 이상으로 의미가 크다. 

흘러가는 대로만 살아온 P형 인간에게, 이것이 내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이며 살아온 내게,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로 해외에 못 가게 됐을 때도 '그래 내가 지금은 돈 벌 운명인가 보다'며 늘 쿨하게 넘겨온 내게, 

워홀은 수능과 같이 모두가 달려가는 장기적 목표가 아닌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가진 장기적인 목표이자 꽤나 진심이던 내 첫 개인 프로젝트였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따지자면 워홀 비자가 나온 그 시기부터 내 계획을 뒤바꾸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꽤나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었다. 

그리고 늘 내가 달고 사는 말인 '어떻게든 되겠지'처럼 진짜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좋은 쪽으로.


그런데 처음 내가 비자를 받았던 시점인 2022년 4월 초 코로나가 점점 사그라들며 인플레이션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왔고 연말에 접어들며 점점 그 파급력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23년의 키워드는 불경기라는데 아니나 다를까 연말부터 이어지는 미국에서의 대량 Layoff 소식, 캐나다에서의 고용 정체기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했고 안 그래도 구직난이던 채용시장은 제대로 얼어붙었다. 그래도 작년 10-11월 쯔음엔 나름 50% 확률로 Phone Call Interview까지 진행하고 통과한 것도 있었는데 올해는 정말 1/3이 지난 시점까지 Resume 제출 이후의 프로세스가 진행된 것이 단 한 건이 없다.


이런 현상이  세계적으로 불경기라 그런 건지 아니면 유독 캐나다의  시장이 문제인 건지를 몰라 링크드인으로 여러 나라를 뒤져보니 유독 다른 나라들에 비해 캐나다에 잡이 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영국, 호주, 독일 등과 비교했을 때 하나의 잡 공고에 몰리는 지원자 수가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공고가 올라온 지 한 시간이 갓 넘은 공고에 200명 이상이 몰리는 현 상황에서 내가 과연 로컬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더라.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내 성향 자체는 공돌이와는 거리가 멀다. 비록 지금은 공돌이스럽게 일을 하고 있지만 책 읽고 글 쓰면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 컨텐츠를 볼 때도 감정선을 따라가는 걸 좋아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나 인문학에 정말 관심이 많다. 기술로 사람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말 하나로, 글 하나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진중한 영향을 끼치는 일을 훨씬 더 좋아한다. 그렇기에 흔히들 떠오르는 너드 이미지도 아니고, 그렇기에 기술적으로 엄청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세계에서 어쩌면 스스로부터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현 상태로 해외로 이직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과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다들 이렇게 외국에 나갔다 오는 것이 젊으니까 해볼 수 있는 몇 없는 기회라고 하지만 이는 워홀을 어떤 기회로 이용하고 싶은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워홀을 통해 나처럼 커리어를 이어가는 게 목표일 수도 있고, 대학생 친구들에겐 외국인들과 부대끼며 살아보는 것이 목표일 수 있다.


사실 직장인으로서 외국에서의 삶이 한국에서의 삶에 비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헬조선은 남 일스러운 업무환경과 워라밸을 누리며 살고 있으며, 업무 시간 외 운동과 내 취미생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등 정말 잘 살고 있다. 사실 만족감은 사는 곳이 아닌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때문에 커리어를 이어갈 수 없다면, 한국에서 지금처럼 커리어를 쌓아가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경험들을 다채롭게 즐기면서 사는 삶 보다 캐나다에서의 삶이 가치 있는 삶일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물론 겪지 않은 미래이기에 어떤 우연한 경험들이 또 다른 나를 만들지 모르지만, 그 우연함을 위해 현재의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 내 현재는 꽤나 만족스럽다.


혹자는 겁쟁이라 할 수 있지만, 어쩌면 용기가 없다기 보단 무모하지 않은 것이고, 일을 벌이는 건 잘하지만 수습하는 데 있어선 꽤나 신중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도전에 있어 항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질러 왔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때 밀고 나가는 능력보단 다시 한번 한 발 멀어져서 무엇 때문에 내가 그 도전을 하려고 했는지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좋게 포장해 보자면 말이다. 


2023년 나의 목표는 '80%의 낭만과 20%의 현실감각'이다. 현실감각이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라 적어도 나의 낭만을 이룰 조금의 현실감각은 가져보자 (= 내 주식도 좀 복구해 보자..)라는 의도인데, 남들보다 적디 적은 현실감각으로도 지금 캐나다 현지 상황과 나의 객관적 상황을 보았을 때 지금 당장 떠나는 것이 살아보는 게 목표가 아닌 이상 정말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고 있다. 


사실 인생 길게 봤을 때 지금 1년 분명 별거 아닐 거다. 정년도 길어지는 마당에 앞으로 30년 이상을 더 일해야 할 인생인데, 거기서 1년 잠시 일탈하는 것쯤이야. 그런데 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임에도 이러한 이유로 나갔을 때 과연 행복할 것인가? 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인간의 심리라는 게 참 웃겨서,  오히려 공백과 소속감의 부재로부터 오는 불안감이 나의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 인생을 풍요롭게 살고 싶을 뿐이다. '다양한 경험'엔 커리어 외적인 경험과 내적인 경험 모두를 포함한다. 커리어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경험 또한 충분히 diverse 하기도 하고, 사실은 올 한 해 하게 될 일이 내가 해 보고 싶었던 일이기에, 이 시점에서 커리어 외적인 가치를 쫓으려 도전을 하는 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 맞을지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apply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그동안 내 인생에서 실패라는 것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없었다"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하리만큼 모든 일이 순탄했다. 적당히 좋은 대학에 가자, 적당히 좋은 기업에 가자, 교환학생을 가자와 같은 어떤 과정에 대한 목표이지, 어떤 학교 이상을 가고 싶어! 어떤 기업에 가고 싶어! 하는 정량적인 목표가 아니었기에 실패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과정에 목표를 두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 뭐가 됐던 달성은 할 수 있긴 하거든.


이번 목표도 역시 Faang에 갈 거예요! 아닌 캐나다에 있는 아무 회사나 다니고 싶어요! 였으나, 내/외부적인 여러 요인들로 인해 실패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목표를 이루지 못해 생기는 '무력감'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껴보는 것 같다. 꿈꿔왔던 일이 한 번에 흐지부지 될 때의 무력감. 


사실 호주 다녀오고 나서부터 이전의 나를 아직 되찾지 못한 기분이다. 이전의 나는 하루를 굉장히 알차게 살고자 했고 그렇게 하루하루 나아지는 스스로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이번 1월은 뭔가 한 없이 늘어져 있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차피 해도 안돼'라는 패배감에 휩싸인 느낌이랄까. 그래서 지금 글을 쓰며 '못 이뤄도 괜찮아'라며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자 함도 있다. 이번 설에 굳이 본가에 내려가지 않았던 것도 무력감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원래의 나를 다시 찾고자 함도 있었다.




플랜비 따위는 없는 내 인생에서 요새 플랜비라는 처음 세워보고 있다. 이 마저도 안될 때 어떤 또 다른 무력감이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당장의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꽤나 플랜비가 만족스러워 금방이라도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딱 한 달 정도 지난 지금은 완벽히 회복했다ㅎㅎ) 


지금으로선 혹시 모를 나의 변덕을 대비하여 4월 말 여행을 빙자해 비자를 살리러 갈려고 한다. 비록 IT 쪽으로 취업을 못하게 되더라도 알바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거기에 살아보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꽤나 후회할 것 같아 1년을 다 채우지 못하더라도 몇 개월이라도 살아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 혹시 누가 알아 그 사이에 계약직 잡이라도 구할지.


사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동안의 준비 내용과 마음가짐들을 구구절절 썼던 것도, 혹시나 내가 지금처럼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 흔들리기 싫어서 적었던 것도 있다. 

그런데 그 당시 내가 간과했던 점은, 나만 잘하면 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는 부족한 내 경력과 능력을 채우는 데에 급급했고 이 과정들이 모두 미래를 향한 준비라고 생각했다.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 상황이, 취업 시장이 이렇게까지 악화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누가 이렇게까지 되리라 예상했겠냐만은 적어도 염두에 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나, 한 달 후의 나, 4월의 나, 또 이번 년도가 끝나갈 쯤에 나, 언제의 나 이든 분명 그 시기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고, 그 최선의 선택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란 걸 안다. 쓸데없이 이런덴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아마 괜찮을 거다. 앞으로 해야 하는 것은 무력감에서 얼른 회복하여 다시 이전처럼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리고 너무 맹목적이기보단 조금은 여유를 가질 것, 아쉽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는 마인드를 가져 볼 것.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이번 방법이 실패하면 또 다른 방법을 찾겠지.

늘상 같은 말을 하는 것만 같은 '캐나다 워홀가요' 시리즈인 것 같다. 어쩌겠어, 내가 푸념하려고 쓰는 글인데ㅎㅎ 다음 글에선 불 확실한 무언가가 아니라 확실한 무언가를 가지고 끄적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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