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어야 하는데...
“앗, ㅇㅇ 했어야 하는데.”
짝꿍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에 하나는 바로 “했어야 하는데”다. 그 말을 들으면 가슴 깊이 답답함이 몰려들면서 이 말을 해 주고 싶어 진다.
“지금 당장 그 일은 하던지, 계속 그렇게 못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해.”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괜히 마음 상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일을 하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참는다.
짝꿍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 나는 저 말을 안 하려고 노력 중이다.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지금 처리’하고, 매일 출근하거나 출근하기 전날 저녁에 플래너에 할 일 목록을 만들어 두고 당일에 대부분 해내는 편이다.
새해 둘째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또 그 말을 들어 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했어야 되는데’ 이 말 2023년 금지어야!”
“엇, 나도 그 생각했는데.”
짝꿍은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그 말할 때마다 만원! 내가 한 달 용돈 다 가져가 줄게.”
그렇게 우리는 얼떨결에 약속을 했다. 그다음부터 차에서, 회사에서, 집에서 ‘했어야 하는데’라고 할 때마다 ‘만원!’을 외치고 있다.
살면서 많은 습관을 만들게 된다. 그중 하나가 언어습관이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예스맨>은 매사에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주인공이 “YES”라고만 대답하기로 약속하면서 인생이 180도 달라지는 이야기다. 말이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꽤 클 수 있다.
<자존감이 쌓이는 말, 100일의 기적> 책을 쓴 일본의 내과의사 이마이 가즈아키 교수는 일을 하다가 실수를 했는데 ‘나는 안되는구나’라고 말을 내뱉으면 더 의기소침해져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지고 또 다른 실수를 하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자신 없던 일도 ‘어떻게든 되겠지! 한번 해 보자!”라는 긍정적인 말로 도전하거나 상사의 격려를 받으면 의외로 상상 이상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평소에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얘기해주고 있다.
나는 일단 ‘하고 보는’ 스타일이다. 일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도 볼 수 없다. 뭐라도 시작하면, 어설픈 결과라도 그 결과를 반영해 ‘더 나은’ 다음 행동으로 넘어갈 수 있다.
특히 자신 없는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그만둔 회사에서 여러 가지 기획을 했다. 하지만 디자인 감각이 전혀 없는 내게 대표님은 관련 교육 링크까지 보내주며 제발 디자인 감각 좀 키우라고 얘기했다. 잘 하든 못 하든 일단 하고 보는 스타일이라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입사 몇 개월 만에 갔던 워크숍에서 각자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대표님이 내게 말했다.
“이팀장, 디자인 감각이 언제 이렇게 좋아진 거예요?”
못한다고 얘기를 들어도 마음이 꺾이기보다는 ‘그렇다면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워크숍 자료는 ‘미리캔버스’라는 디자인 툴을 활용해 만들었다. 전문가가 만든 디자인에 나는 사진과 문구만 바꾸면 됐기 때문에 내가 직접 만든 것보다 훨씬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2년 전, 짝꿍과 같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답답한 점이 정말 많았다. 무언가 배우겠다고 비싼 교육을 받고 오는데, 실행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꾹 참고 기다렸다. 기다렸더니 배운 것 중 일부를 적용해 성과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오래 걸리는 사람이구나.’
말하면 즉시 실행하는 나와 달리 짝꿍은 배운 것 하나를 적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짝꿍을 이해하게 되자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다.
이런 짝꿍이 2023년 금지어로 ‘했어야 하는데’로 정했다. 무척 감동적인 일이다. 짝꿍에게 짐 캐리처럼 마법 같은 일이 생길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