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살아 계실 적에 아빠와 5분 이상 대화를 나눠 본 적이 거의 없다. 사진첩에는 할머니 옆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던 나를 아빠가 무척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진이 있다.
‘하긴. 아빠도 첫째인 나를 많이 사랑했겠구나.’
내가 태어나고 2년 뒤에는 여동생 그리고 또다시 2년 뒤에 남동생까지 태어났다. 아빠는 화물 트럭 보조석에 나를 태우고 사촌이 있는 포항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그때는 아빠와 함께 조잘조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고3 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치킨집을 하던 엄마와 맥주를 한 잔씩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매일 우울증 약을 복용하던 아빠는 그 시간에 늘 꿈나라에 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을 서울로 와서 한 번씩 집에 내려갈 때마다 아빠는 내게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늘 나는 단답식으로 아빠의 대화를 차단해 버렸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해. 그 해에도 그런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남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잘 떠나셨습니다 아버지.’
라고 생각할 뿐.
2008년 첫 직장 상사와의 갈등으로 힘든 시절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책 <The Boss>. 이 책으로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 선생님을 만났다. 당시 교보 문고에서 하는 강연회에서 선생님을 멀리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접속해 선생님의 ‘연구원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2009년 5기 연구원에 지원했다. 하지만 1차에서 떨어졌고, 1년을 기다려 2010년 6기 연구원에도 지원했다. 2차 레이스까지 갔으나, 탈락했다. 그리고 또다시 1년을 기다려 2011년 7기 연구원에 다시 도전했고, 마침내 선생님은 나를 연구원으로 뽑아주셨다.
연구원 지원은 20페이지 이상의 개인사를 써야 하는데 그중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이 있다.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가장 가슴 아픈 장면 1가지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기술할 것’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늘 같았다. 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가장 가슴 아픈 그 장면.
평생 마음속 깊이 쌓아온 아버지에 대한 분노. 아마 아빠가 계속 살아 계셨다면 여전히 분노로만 꽉꽉 채워졌을 거다. 하지만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아빠가 살아온 만큼의 나이를 먹으며 사람이 싫고, 관계에서 실망하고,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을 정도로 힘든 마음 상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직후 교통사고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우울증이란 감정에 사로 잡혔던 아빠의 그 마음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비로소 아빠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시도하는 모든 대화를 차단하는 큰딸에게 상처를 받았을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생전에 분노뿐이었던 감정은 미안함으로 조금씩 대치되고 있었다.
세 번째 연구원에 도전한 해인 2010년은 내 생에 어둠이 시작된 시기였다. 연구원 활동을 한 2011년 역시 잦은 이직, 엄마와의 갈등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너, 요즘에도 광화문에서 있냐?”
“네, 선생님!”
“그럼 내일 점심을 사주마.”
“우와~ 정말요?? 저야 정말 좋죠!”
그리고 다음 날 선생님은 광화문 사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내게 맛있는 스테이크를 사주셨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하는 스테이크라니. 미래의 언젠가 애인이 생기면 한 번쯤 경험해 볼까. 상상만 하던 일이었다. 20대 아르바이트생 월급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점심을 사주신 그때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혼식장에서 외에는 그런 스테이크를 사 먹으러 가 본 적이 없다.
얼마 후 선생님이 내게 점심을 사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동기가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사부님~ 왜 저는 점심 안 사주세요???”
“너는 아버지가 있잖냐.”
옆에서 사부님의 대답을 듣던 나는 그만 울컥하고 눈물이 고였다.
‘아.. 그런 마음으로 점심을 사 주셨던 거구나…’
그제야, 사부님의 깊은 마음을 이해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19년이 되었다. 매해 아빠의 제사에는 아빠가 살아계실 때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해서 올린다. 올해는 짝꿍이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올해는 사부님이 떠나신 지 1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사부님은 떠나셨지만 여전히 책으로 사부님을 기억하는 독자들과 만나기 위해 10주기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바보 같지만. 늘 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뒤늦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같은 나의 스승님.
photo by on Pix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