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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Apr 13. 2023

아르바이트생과 이별하다

아르바이트생의 인사 발령 이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주문 발주, 관리, CS 처리 등 업무 중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모르는 건 없었다. 주 업무 외의 부가 업무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주 업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업무 지시를 하기로 하면서 가장 먼저 노션에 직원용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하는 업무를 하나하나 기록하게 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실수가 없을 때까지 아침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는 모든 업무를 작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발주를 하기 전에 최종으로 파일을 내게 보여주기로 했다. 며칠간은 모든 발주 건을 그렇게 처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바빠졌고, 아르바이트생은 점차 실수가 줄었다. 안심하고 있던 중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발주를 하는 사이트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일부는 충전을 해야 한다. 은행 업무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길 수가 없어 직접 처리하는데, 동업자가 OTP를 안 가져온 것이다. 그날따라 오전에 일이 있어 나는 출근을 늦게 했다. 동업자는 사무실에서 나왔고, 나는 그때 도착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서로 인수인계 할 틈이 없었다.



오전 내내 아르바이트생은 본인의 업무를 했고 나 역시 얼마 남지 않은 행사 준비에 바빠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이 지나갔고 동업자가 사무실로 돌아와 모두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나는 아침에 다른 일에 신경을 쓰느라 주문 관리 프로그램을 열어볼 시간이 없었다. 점심시간 후에 동업자는 이미 발주가 끝났어야 하는 주문들을 발견했다. 


“이거 왜 아직 발주가 안 된 거죠?”

“사이트 충전이 아직 안 됐어요.”

“옆에 있던 대표에게 물어봤나요? 충전해 달라고 얘기했어요?”

“아니요…”


‘아….’

이거구나. 그 순간 나는 지난 6개월간 동업자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이해가 됐다. 내가 다시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여러 번 했던 말이 있었다.


“스스로 결정하는 건 개인 사업을 하거나 본인 일을 할 때 하셔야 하는 거고요. 회사에서는 물어보세요. 혼자 지레짐작으로 판단하지 마시고요.”



바로 한 발 거리에 앉아 있는 아르바이트생과 나. 4평 남짓 사무실에서 긴 책상을 같이 쓰고 있다. 아침부터 발주를 해야 하는 홈페이지에서 적립금이 보이는 화면의 ‘새로고침’만 계속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입금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1시 전에 발주해야 오늘 출발하는 품목들이 있었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나는 그제야 한 마디 했다.


“아시죠?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 배달이 엄청 빨리 되는 거요. 사람들은 하루만 늦게 배송되어도 다시 그 가게에 주문을 하지 않거나 반품, 구매 취소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늦게 발주하는 건 꽤 치명적인 실수일 수 있어요.”


동업자는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아르바이트생에게 다시 한번 얘기했다.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스스로 임의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지 마세요. 그 판단에 대해 책임지실 수 있으세요? 여기에서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아르바이트생을 보면서 과거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마지막으로 풀타임 근무를 했던 잡지사에 입사했을 때였다. 온라인 마케팅 담당이었는데, 홍보물이나 콘텐츠를 만들어 업로드하는 업무였다. 처음에 이상하게 내가 만든 것을 최종 결정권자인 편집장님에게 보여주기가 싫었다. 어쩔 수 없이 보여드렸지만,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어떤 의견을 주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그때 생각했다.


'뭐지, 왜 이렇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거지?'


어릴 때부터 지적받는 걸 몹시 싫어했다. 오랜 시간 나름의 책임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하는 업무를 주로 맡아 오다가, 하나하나 다 컨펌을 받아야 하는 회사에 정말 오랜만에 출근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불편한 마음을 계속 비우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 일에 대해 책임지기 싫지? 책임은 편집장님이 질 거야. 나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되, 책임은 편집장님에게 넘기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부터 내가 한 일에 대해 하나하나 확인받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의견을 주는 것이 꽤 즐거운 일이 되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쳐 쓰되,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뿌리 깊은 이 마음의 습관은 쉽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월요일, 화요일은 명상요가센터에서 일을 하는데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물어보고 결정해야 될 때 ‘뭐 이런 것까지?’하는 마음이 일어나곤 한다.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내가 경험했던 마음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 사건이 있고, 다음 주 월요일. 아르바이트생은 다시 4번의 실수를 연달아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동업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제가 실수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일주일만 더 해 보고, 일을 계속할지 판단을 하겠습니다.”

짝꿍은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람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알아서 척척척 일을 해 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동업자가 자주 통화를 하는 다른 대표님도 직원이 3명인데, 그중 2명은 일을 참 잘하고 한 명은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이 오면 그 업무를 하지 않는 만큼 시간이 늘어나고 다른 주요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실수가 잦아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업무 하나하나를 계속 챙기고 있어야 하니, 오히려 내가 일을 처리할 때보다 신경도 시간도 두 배로 쓰였다.


결국 우리는 미안하지만 아르바이트생과 이별하기로 결정했고, 어제 아침에 통보를 했다. 다행히 아르바이트생은 그동안 많이 배웠다고 얘기해 주셨다.


우리는 당분간 고정적으로 업무를 맡길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은 뽑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비용으로 우리가 직접 할 때보다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업무는 외주로 맡기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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